보살菩薩의 행行으로 살아가는 불자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원정올림픽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리면서 국민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메달을 딴 선수들은 물론이고,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찬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여래사 사시기도에 참여한 소임자 스님들이 불자들과 함께 백팔대참회(百八大懺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구룡사에서 5년동안 매년 한 스님씩 백 명의 고승(高僧)을 청해서 화엄경산림 백고좌법회(百高座法會)를 할 때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백고좌법회 기간 내내 백팔대참회를 3독(讀) 또는 열번씩 할 때마다 항상 저를 격려해 주고 울타리가 되어 주시고 그늘이 되어 주셨던 분들이 현장에 함께 있었던 불자들입니다. 그분들은 백팔대참회가 끝나고나면 언제나 한결같이 박수로 기뻐하고 격려하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통도사 주지 소임을 마치고 올라온 지도 어느덧 1년이나 지났는데, 그 사이에 승복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그 옷들을 포교당의 소임자 스님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가사장삼(袈裟長衫)이 한 벌 있습니다. 그동안 땀에 절어서 낡을 대로 낡은 가사와 장삼입니다. 그것은 내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고 확인하는 증표이기도 해서 늘 옆에 두고 바라보고 있는 옷이기도 합니다. 땀에 절어 낡아있는 가사를 상상해 보십시오. ... ... 젊은 시절의 소상입니다.
세상은 그냥 이루어지는 게 없습니다.


저의 불명(佛名)은 한자로 정수리 정(頂)자에 집 우(宇)자를 써서 정우(頂宇)입니다. 출가해서 은사이신 홍법(弘法)스님께 법명을 받았을 때 경봉(鏡峰)노스님께서 이름을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 머리 위에다 집을 짓는다. … 손오공이 난다 긴다 해도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니놈 은사 홍법이가 욕심이 많구나. …  “정우 (頂宇) 라고 ___. 그렇게 큰 이름을 지어주었어…허허허󰡓
은사스님께서는 이렇게 제 불명을 주실 때 부처님 이마(머리) 위에다가 절을 지어드리라는 것 이였을까?.
월하(月下)노스님께서는 32년전 싹틔울 아(芽)자에 뫼 산(山)자를 써서 아산(芽山)이라고 법호(法號)를 내려 주셨습니다.
산은 세상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처처(處處)에 심산(心山)이 다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보면 여래사는 정발산(頂鉢山)에 있고 구룡사는 구룡산(九龍山)에 함께 있고 통도사는 영축산(靈鷲山)에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싹을 틔운다는 것은 불종자의 촉수를 틔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노스님께서 저에게 주신 법호도󰡐대중들에게 불종자를 부처님 법으로 전하라는 말씀이셨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아마 현대불교사에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을 많이 지어 드리지 않았나󰡑하는 자부심도 가져 봅니다. 여래사 법당만 해도 1만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구룡사에도 1만 부처님이 계십니다. 또 이곳저곳 포교당에도 많은 부처님이 계십니다. 이름값을 하려고 절 지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값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수행자(修行者)는 덕목(德目)으로 드러나는 안목(眼目)으로 느끼는 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불자 여러분에게 불명을 지어드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적도 없는 불자들이지만, 그냥 포괄적으로 느낌을 가지고 불명을 지었드렸는데도 그 증서를 드릴 때 보면, 어쩌면 그렇게 이름을 잘 지어드렸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 새벽에는 여래사를 가면서 느꼈던 생각입니다. 직접 운전을 하면서 고속도로를 타고 88도로를 지나 가양대교를 건너서 자유로로 해서 왔습니다. 새벽 3시 30분에 88도로를 지나는데, 그 이른 시간에도 그 많은 차들이 어디를 갔다가 저렇게도 몰려가는지…, 우선 이른 시간에 많은 차들이 왕래를 하고 있는 것에 놀랐습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차들이 왕래하고 있는 모습에 놀라면서 88도로가 제한속도가 80km이었지만, 경제속도인 60km로 속도로 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뒤에서 오던 차들이 내 차를 다 추월합니다. 그래서 70km, 80km로 속도를 올려 보다가 100km까지로 가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경제속도로 낮춰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어느 순간 내 차가 맨 앞에서 가고 있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뒤쳐졌던 차들이 내 차와 나란히 가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내 차가 맨 뒤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 인생도 이런 것이다. 앞섰다고 영원히 앞서는 것도 아니고, 뒤에 있다고 항상 뒷쳐져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앞서거니 뒷 서거니 할뿐...


근자에 구룡사에는 한국난이 몇 그루가 들어왔습니다. 그 난초에서 두가지 사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구룡사가 가건물 법당이던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엄동설한(嚴冬雪寒)의 한파가 하룻밤을 스치고 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예불 시간에 보니까 가건물 법당에 4~5개의 난초 화분이 올려져 있었는데, 거의 똑같이 한 포기의 꽃만이 살아있고 나머지 꽃들은 다 시들어 있었습니다. 아마 각자의 화분에 있던 그 꽃들이 서로 살겠다고 양분의 에너지를 가고자 했었다면 그 난초들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다 시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난초들을 방으로 옮겨와서 그 해 겨울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봄에 꽃을 키우는 분에게 건네 드리면서 당부하기를, 󰡒이 서양란들을 가져 가셔서 꼭 꽃을 피워, 구룡사 부처님 전에 화분 하나만 공양올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식물도 스스로의 욕심을 부리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 난초가 만일 욕심을 부렸다면 그날 밤을 못 넘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따뜻한 방에서 그 해 겨울을 못 지냈을 것
입니다. 또 한, 시들어버린 꽃들을 보면서 󰡐내다 버려라. 다 시들고 죽었는데…. 서양난이 별거냐? 하였을 것이니... ... 역시 그 서양난들은 그 해 겨울을 못 넘겼을 것입니다.
우리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우리 인간이 스스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지니지 못한다면 그 존재를 무엇으로 쓰이겠습니까?
몇일전, 구룡사에 한국난들이 들어왔는데, 꽃망울 진 그 난꽃을 2~3일의  관리소홀은 곧바로 내게 무언(無言)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난초는 평소에는 일주일에 한 번쯤 물을 흠쁙 주고 아침저녁으로 잎에 조금씩 물을 흩뿌려 주면 됩니다. 
그런데 꽃대롱이 올라오고 있는 그 난초를 잠시 소홀히 대했더니 그 난초들이 꽃필 자리를 잡은 꽃대에게 수분을 양보하고 스스로는 말라죽어가는 작은 꽃대들이 보이는 것 입니다. 그래서 세면장으로 가져가서 물을 흠뻑 준 뒤 하루에 서너 차례씩 촉수를 적셔주었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주자 지금까지도 꽃이 만개해서,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난초향기가 방안에 가득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 인생도 이와 같거니 다시 한 번 드려다 보게 됩니다. 애민심(哀愍心)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어찌 난초뿐이겠습니까?


법정스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매화는 반쯤 피었을 때,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 복숭아꽃은 멀리서 봤을 때, 배꽃은 가까이에서 봤을 때 그 꽃이 아름 답드라. ’ 하신말씀.
역시 법정스님 답습니다. 이를 사람에 비추어 보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까이 지내면서 가까운 사람도 있고,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사람이 있고, 멀리 있으면서도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10대 때, 은사 스님이 입으시던 누더기옷을 주시라고 보채서 물려받은 옷을 입은 뒤 송락갓을 쓰고 육환장(六環杖) 들고 지리산으로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경봉 노스님께 “스님 저도 화두 하나 주세요.” 했습니다. 그러자 노스님께서 “어딜 도망가려고 하느냐?” 걱정하시면서 화두(話頭)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렇게 주신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의 화두를 큰 스님께 받기는 받았는데, 노스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 가봐야 한 철도 못 버틴다. 그러했습니다. 저녁마다 무섭고, 가위 눌리고... ...󰡓
지리산이 국립공원이 되기 전, 완행열차 타고 가던 그 시절만 해도 지리산에는 도 닦아서 도인되겠다는 움막집이 간혹 있었습니다. 그렇게 은사스님 옷 물려 입고 갈 때까지는 좋았지만, 가서 애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후학들에게는 내가 해본 일은 하지 말라고 경계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과거에 어떤 수행자도 이런 고행을 할 수 없었고, 미래의 어떤 수행자도 이런 고행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머리를 만지면 파뿌리 뽑히듯 하고, 얼굴을 쓰다듬으면 덜 익은 오이 쥐어뜯어서 그늘에 말려 놓은 것 같고…󰡓
이는 부처님께서 훗날 6년간의 고행을 설명할 때 하신 말씀입니다.


선(善)한 업(業)을 지어서 설혹 천상(天上)에 태어났더라도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이라는 삼악도(三惡道)의 세계를 벗어났다고 해서 윤회(輪廻)의 세계 자체를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육도(六道)라는 곳은 나 스스로의 업장(業障)이 소멸되지 않아서 육도를 윤회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나고 죽고, 죽고 나고 하는 인생을 반복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영가들 또한 고통과 괴로움을 겪지 않는 천상락을 얻었다 하더라도 이승에 대한 미련을 아주 버리지 못하고 집착을 하기 때문에 번뇌에 시달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 법당에 모셔져 있는 영가가 아직도 삼악도에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연 있는 이들이 내 스스로 판단해서 내가 괜찮은 사람이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되어 진다면 우리들이 천도하고자 하는 영가들도 좋은 세상에 살아계실 것입니다.


유마거사(維摩居士)도 『유마경(維摩經)』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생사(生死)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고, 또 대열반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나고 죽음의 바다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보살(菩薩)의 행(行)이다.󰡓
어딘들 어떻습니까. 생각생각이 올곧으면 처처(處處)가 안락국(安樂國)이고 생각생각이 번뇌망상에 찌들어 있으면 처처가 삼악도(三惡道)인 것을요. 아무리 좋은 세상에 살아도 지난 시간들에 흔들림 없는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집착(執着)하지 않는 보살행(菩薩行)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먼저 가신 영가들이 뒤에 남겨진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계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49일 동안 백중기도를 올리면서 그 공덕으로 각자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자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