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벗 찾는 지도 ‘입보리행론’

“티베트는 반세기가 넘도록 난민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실을 비관적으로 여기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전 세계의 친구들과 교감을 합니다. 현대과학과 불교를 교류하는 것 역시 의미 있는 가치행이라고 자부합니다. 나란다승원의 법통을 잇는 티베트불교는 시대의 문제들이 처한 현안에 대안을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티베트가 고립된 상태로 여전히 히말라야의 지붕아래 있었다면 저는 포탈라궁 안에서 망원경으로 본 세상만이 지구의 전부라 여겼을 것입니다.”


오사카는 흐리고 비가 내렸다. 인도 델리를 출발하여 일본 도교 나리타공항에 5월 8일 도착한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0)는 다음날 9일 정오 12시가 되어서야 오사카 소재 리가로얄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정문에는 티베트 국기가 게양되지 않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환영 인파는 엄청났다. 달라이라마를 향해 “워아이니(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중국어도 들려 왔다.
달라이라마는 10일부터 13일까지 오사카 부립 국제회의장에서 적천보살(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을 설법하고 문수보살 관정 법회를 가졌다. 중국 본토를 비롯하여 몽골 대만 한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와 러시아와 칼미키아공화국에서 2천700여 명의 불자가 이번 법회에 참여했다. 14일 한국의 부처님 오신 날에도 불구하고 불교TV BTN, 삼학사원 그리고 한국티벳불교사원에서만 90여 명의 불자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진언종 총 본산 고야산 승가대학 학장님을 비롯하여 카나자와현의 달라이라마의 오랜 벗 레이꼬바바상도 눈에 띄었다.
법회 내내 달라이라마는 타인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즉, 이타심의 발현이야말로 이 시대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인류의 자세임을 강조했다. 입보리행론을 강설하는 내내 달라이라마는 종교를 넘어서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삶에서 실천하는 21세기의 불자가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14일 이른 아침 오사카를 출발한 달라이라마는 15일 오전 11시경, 티베트력 부처님탄생 기념일에 맞춰 다람살라에 도착 16일 사시 기도를 집도했다.


불교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입니다. 타인을 이롭게 함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불교의 진정한 가르침이지요. 붓다께서는 선함을 지혜로써 일시적인 만족을 넘어서는 행도로써 성취해 가는 삶을 직접 실현해 보이셨습니다. 원치 않는 대적 관계를 만들지 말아야할 것과 증오가 일어나는 즉시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것을 기억해야 함을 설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은 증오에 기인합니다. 이익과 불이익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쉬운 예로 특정인을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 것이 번뇌입니다. 번뇌를 제어하고 없앰으로써 탐 진이 허물임을 알고 지혜를 통한 이성적 사고로 분석해야 합니다. 그 성과는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으로 스스로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공포 두려움 분노와 같은 감정은 인간의 면역 체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사유란 실제 심리 다시 말해 마음의 실상을 헤아리게 합니다. 마음은 면밀히 연구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지금 현재의 인생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행복은 물론 사회의 평화와 더불어서 함께 고민을 해야만 가능합니다. 이에 3천년 이전의 선지식 논사들의 논서는 지금의 불제자들에게 큰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티베트어에서 법, ‘췌’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단순한 귀의가 아닌 인간이 지닌 이성을 통해 변화를 성취해 가야 한다고 정의합니다. 이를 문 사 수라고 칭합니다. 그 가운데 수는 닦음 즉 원인과 이치를 통해서 이것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는 확신을 통해서 이뤄가는 것입니다.
붓다는 법륜을 굴리셨습니다. 결코 기적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붓다께서 바라나시 사르나트에서 초전법륜을 설법하실 때 고통의 원인을 알아 원하는 행복을 구현하도록 하는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원하지 않는 불행과 원하는 행복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인과의 연기를 통해 실천해 가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로서 불교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구상의 불교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바는 바로 ‘사성제’입니다.
항상 이치적으로 사유하려면 깊은 신심과 함께 귀의처의 귀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관장엄론과 같은 논서는 이 법을 공부하는 이유와 이익의 궁극을 사유하게 합니다. 이로써 논서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일시적으로 마음에 도움이 됩니다. 이어서 궁극적으로 번뇌장과 소지장을 없애는 대치법을 사유함을 통해 종국에는 붓다의 과를 성취하도록 조력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가피를 받는다고 하면 굉장히 귀하게 여기는 풍토가 있습니다. 불법을 수학하는 것 보다 특별한 복을 받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21세기의 불자들은 정확하고 합당한 설득력이 사유와 실천에 동반되어야 합니다. 맹목적인 신심만으로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붓다께서 반야경을 비롯한 무상법륜을 설하신 것이 중전법륜입니다. 깊은 이해와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근기의 단계입니다. 유식학파 세친보살의 입장과 중관학파 용수보살의 견해에 이견이 있는 것을 규명하는 것과 같이 붓다의 설법에도 의문을 가지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법을 대함에 금을 연마하는 바와 같이 다루도록 해야 합니다.
입보리행론 논서는 공성과 보리심을 핵심으로 전체 10장으로 구분이 됩니다. 보리심을 발현하여 성취해 감에 공성으로서 실상을 깨우치도록 합니다. 그 시작으로 1편을 보면 육바라밀의 모든 방편은 지혜를 일으키기 위해 설하신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과 실상의 진면목을 일깨우도록 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과 달리 대상의 진면목을 직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논합니다.
보리도의 경계 역시 지혜도가 그 기준이 됩니다. 방편만을 통해서는 결코 깨달음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바라밀이라고 하는 방법적 측면의 길은 공성의 지혜를 중점으로 다룹니다. 궁극의 깨달음 역시 진소유성과 여소유성을 아는 지혜를 사유하도록 합니다. 입행론에서는 보리심과 공성의 반야바라밀을 궁극의 의제로 삼습니다.
공성을 이해할 때 비로소 일체 종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정진력으로 불가를 이루는 잠재력을 발견하고 지혜를 통해 깨우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습니다. 지혜는 공성으로 향하며 자비는 중생에게 향하도록 해야 함이 그 방법입니다. 대승의 근에는 두 가지의 근이 있다. 보리심을 먼저 발하는가 공성을 먼저 발하는가의 차이입니다. 닦음을 통해 수행해야할 바를 명확히 하고, 마음에 지닌 확신을 사유하도록 하는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앎을 통해서 이뤄가야 합니다.
입행론의 수행법은 자타상호 수행법으로서 즉, 이근의 수행법입니다. 이근이 아닐 경우에는 칠종인과법을 통한 수행 역시 가능합니다. 자타상호 수행법과 동시에 수행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9장에서는 공성의 지혜를 다룹니다. 60공론과 70공론 등을 사유하면서 공성을 점차 세밀화 합니다. 불호보살 붓다빨리따의 논서는 내용은 짧지만 핵심적인 공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월칭보살의 입중론 그리고 현구론 역시 공성의 탁월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번역서를 십분 활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쿠눌라마 린포체로부터 입행론을 사사 받았습니다. 수행 지침서로 굉장히 유익하다고 매번 느꼈습니다. 입행론을 통해 이생의 많은 변화와 확신을 경험하였습니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입행론 가운데 6장 인욕품을 즐겨 볼 것을 권유합니다. 그 핵심인 자타상호 교환법을 통해 수행한다면 마음의 증오심이 일어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하루에 한두 장씩이라도 의미를 파악하면서 읽어 보기를 바랍니다. 보리심의 공덕과 칠지작법을 통한 보살계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하되, 삶에서도 구현하도록 하면서 마지막 10장에서 일컫는 바와 같이 회향하여 마음의 힘이 점차 증대되도록 해야 합니다.
70억 인류 가운데 달라이라마라고 하는 저 역시 동일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여러 가지 기도를 합니다. 수없이 많은 중생의 평안을 위해 기도를 함에 지구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보았을 때, 스스로가 기도 이외에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아차립니다. 저 역시 어머니의 자궁에서 성장하여 태어난 인간임에는 여러분과 동일합니다.
얼마 전 과학자들과의 대담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태어난 지 4개월 정도 남짓 된 아이에게 서로가 사랑하며 돕는 그림을 보여줬다고 하는군요.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이는 맑게 웃으며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사랑이 충만한 그림은 갓 태어난 아이도 웃음을 짓게 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선함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마음의 사랑이 풍요로우면 인간의 5대 요소가 균형을 이루고, 실제로 눈에 보이는 신뢰가 쌓여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미움과 불편한 감정이 지속될 때  외부의 물질적인 풍요에도 만족을 알지 못하고 그 어떠한 행복감을 느낄 수조차 없습니다.
인간은 의지해서 존재하는 관계 속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첫 관계가 형성이 되듯이 일체는 사람과 사람에게 의지한 것입니다. 친구가 중요한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에 대한 애정 역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친구란 내가 어려울 때 기꺼이 곁에 있어주는 이입니다.
티베트의 일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난할 때는 친구가 없었다가 어느 날에는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모였지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돈에 귀의를 하니 친구가 생기는구나.” 부디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친구를 만나도록 하세요. 이는 종교적인 관점을 넘어 인간이 더불어 행복하기 위한 바탕입니다. 오늘 그와 같이 신뢰할 수 있는 벗이 가까이 있다면 당신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