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중생의 눈물을 닦아줄까

그대 중생이여.
실상의 모순에 대한 의심을 일으켰는가.
그 안의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자아를 보았는가.
나와 경계하는 색 성 향 미 촉 법의 성품이 어떠한가.
무상하여 무아인 공조차 공인 것을 알았는가.


티베트력으로 신년 보름날 동이 트기 전. 출가 수행자들의 포살법회가 열리고 있는
남걀사원 법당은 나지막한 기도가 울려 퍼지고 있다. 마음의 갈애를 씻고 참회하는
2시간 동안 사부대중은 광장에 모여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1)의 위용이 드러나기를
기다린다. 3월 중순의 다람살라는 봄 직전의 심한 몸살을 앓기라도 하듯이 느닷없는 한 겨울의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법회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은 털모자에 침낭까지 동원하여 나름대로 든든히 무장한 모습이지만 옷깃에 스미는 한기는
살을 엔다. 최대한 몸을 움츠린 채로 달라이라마의 본생담 신년 법회를 듣기 위해
모인 인파는 이내 남걀사원의 광장을 가득 메웠다.


달라이라마는 인도에 망명한 이후에도 매년 신년 보름 법회를 봉행해 왔다. 건강상의 이유로 지난 해 단 한 차례 법회를 열지 못했기에 올해의 본생담 법회에 거는 대중의 큰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이번 법회에는 지난 보드가야 깔라차크라 법회에 참석하지 못한 티베트 본토의 불자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망명정부 안보부 산하 보안 요원들은 신변 보호의 이유를 들어 티베트 본토에서 온 이들의 직접적인 사진 촬영을 제제하기도 했다.


성지 순례 차 인도를 찾았던 티베트인들은 지난해 12월 중국정부로부터 일방적인
공지를 받았다. 지난 1월 개최된 보드가야 깔라차크라를 앞두고 지난 해 12월 15일까지 티베트로 복귀하지 않으면 여권 회수 등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것에 대한 일방적인 엄포였다. 인도를 찾은 2천명에 달하는 티베트인들 가운데 대부분이 중국으로 되돌아갔지만 5백여 명의 티베트인들은 델리 중국 대사관 근처에 머물면서 상황이 호전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당시 관련 소식을 접한 달라이라마는 깔라차크라 법회에 참석하지 못한 티베트 본토 국민들을 위한 특별한 기도를 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티베트 새해 2월 27일을 기점으로 보름날인 3월 12일. 티베트 망명정부가 수립된 다람살라의 겔룩빠 산하 남걀사원 광장에 인도를 떠나지 않은 티베트인들이 달라이라마의 법회를 듣기 위해 모두 모였다. 달라이라마는 깔라차크라 당시 법문 주제로 삼았던 까말라실라의 수행의 단계와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을 다음 날 13일에 설법하였다. 그리고 14일에는 삼동린포체를 위시하여 부동불 관정과 우바새 우바이 계를 내렸다.
티베트 민중봉기 58주년을 맞은 3월 10일. 망명정부는 지난 해 6월 중국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 명령이 내려진 중국 쓰촨성에 자리한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학당 오명불학원 라룽가르와 야천가르의 존립 중요성을 세계 인권 단체에 호소하고 중국정부와 망명정부의 실질적인 대화의 모색을 촉구했다. 그리고 18일, 티베트 동부 캄 나롱에서 24세의 청년 빼마걀첸이 146번째 소신공양 했다는 소식이 망명정부 난민 사회에 전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외친 한 마디는 ‘티베트의 자유와 달라이라마의 티베트 귀환’이었다.


윤회하는 연기법의 중생을 그림으로 묘사한 불화를 보면 새 뱀 돼지에 비유하여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은 세 가지 독을 일깨웁니다. 우리가 괴로움을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시 괴로운 것은 근본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개개인은 나라고 하는 사상에 강하게 휩싸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념이
공존하는 가운데 석가모니 붓다의 법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깨어있는 불자들은 내가 지각하는 대상에 대해 실제성을 발견한 바가 있는지 스스로 의문을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불교도는 일체의 무자성에 대해 연기의 공성에 근거하여 매사를 해체하여 사유하는 수련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수시로 ‘나’와 ‘나의 것’에 대한 반연의 관계성에 대해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장구한 티베트불교의 역사에서 겔룩빠의 전통이 계승된 이래 티베트력 신년 법회에서는 석가모니 붓다의 전생담을 주제로 항시 대중과의 법석을 마련해왔습니다. 공양으로 치러지는 차와 단밥을 나누며 붓다의 전생을 통한 교훈을 새해 각오로 다짐하고 저 마다의 신념으로 새기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본생담 가운데 35장을 주제로 삼고자 합니다.
붓다는 처음부터 깨달은 분이 아닙니다. 우리 중생과 다름이 없이 고난을 극복하셨고 지속적인 정진력을 통해 궁극의 깨달음을 구하였습니다. 일체 중생이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그들과 머물며 세세생생 서원을 일으켜 다양한 모습으로 화현하여 중생의 필요에 응한 바가 본생담에 담겨 있습니다.
언제나 타인을 위하는 행을 하셨으니 지금의 이야기는 공작새의 모습으로 생하였을 때의 설화입니다. 어느 날 숲의 중생을 살피며 걷고 있던 보살은 괴로워하고 있는 사자를 발견하고 연민심을 일으켜 그 연유를 묻고 도움을 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새 중에 가장 존귀하고 또한 선한 새이시여. 저는 짐승의 뼈를 잘못 삼켜 그 가시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으니 제가 어서 편안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사자는 외부의 원인이 아닌 스스로의 과욕으로 벌어진 일을 실토하고 보살의 선행을 간청합니다. 보살은 막대기를 지지대로 삼아 사자의 입을 벌려 깊숙이 박힌 동물의 뼈를 빼내고 사자를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자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운 보살에 대해 중생이 원하는 바를 적시에 알아 성취하도록 도왔음을 비유로써 일컫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러 보살은 막 살생을 범해 피 범벅이 된 사자를 보았습니다. 보살은 두려움 없이 사자에게 다가가 당부를 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사자는 비아냥거리며 보살을 비꼬았습니다.
도움을 받았음에도 그의 이득을 깨닫지 못한 사자를 보며 보살은 되돌아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천신이 보살에게 간청하며 물었습니다.


“악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자를 왜 그대로 두셨습니까.”


그러자 보살이 답하기를,


“타락한 이들에게 선한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나의 유익함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가 알지 못하더라도 나의 선행은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도움을 줬다고 하여 보답을 바라지 말 것입니다. 복을 지은 것을 증오할 이가 어디에 있을까요. 보답이 없다고 그에게 해를 가한다면 정작 도운 것에 이득이 없습니다. 덕을 베푸는 자는 교만함 없이 항시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