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증장시킵니다

불기佛紀2561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역사에 근거하면 부처님은 2640세이십니다. 왜 그럴까요? 불기는 부처님께서 열반涅槃하신 때를 연호年號로 삼기 때문입니다. 열반은 번뇌煩惱가 일어나지 않는 자리를 의미합니다.
몸은 있으면서도 번뇌가 없는 것을 유여열반有餘涅槃이라 합니다.
무여열반無餘涅槃은 다 내려놓은 상태, 사대육신四大六身으로 이루어져 있는 몸을 본래 자리로 되돌려주고 청정법신淸淨法身, 원만보신圓滿報身,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으로 돌아감을 의미합니다.
불기佛紀는 부처님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열반일로 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올해는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지 2640년이 되는 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2640년 전 4월 초파일에 지금의 네팔 카필라국에서 어머니 마야부인과 아버지 정반왕 사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40세요 어머니는 45세였습니다. 그리고 풍습에 따라 친정으로 출산하기 위해서 가시다가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게 되신 것입니다.
그 룸비니동산은 외할머니 이름이며, 훗날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의 지명을 기념하기 위하여 외할머니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룸비니 동산에는 저녁마다 수천, 수만 마리의 새들이 백만 평도 넘는 초원으로 날아와 잠을 잡니다. 아침에는 새들이 얼마나 노래를 불러대는지 늦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룸비니 동산은 누구도 살생하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국 뉴욕에는 우리 절 원각사가 있습니다. 사찰 부지만 해도 30만 평에, 그 안에는 2만 평이 넘는 아름다운 호수도 있습니다. 그곳에는 기러기며 야생 사슴과 노루들이 초목을 누비며 살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동물들을 함부로 잡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는데, 사순절 무렵에는 야생 칠면조를 잡아도 된다고 합니다. 하루는 원각사에 칠면조 20여 마리가 모여 있는데, 스님이 밖으로 나와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어느 봄날, 호숫가에 갔더니 기러기도 도망을 가지 않습니다. 혼자 꿈을 꾸듯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자비심이 많아서 저 기러기도, 저 칠면조도 그 마음을 느끼고 도망가지 않는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날은 다른 곳에서는 총을 쏘는데 우리 절에서만 안 하는 것을 칠면조가 알고 있었습니다. 기러기도 그 옆에 알을 낳은 둥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기러기는 내가 자신의 알을 해칠까봐 둥지 옆으로 오지 못하도록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비문이나 조각상을 보면 부처님의 탄생도를,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 걸으면서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삼계개고三界皆苦하니 아당안지我當安之하리라.”라 하였습니다.


삼계三界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입니다. 욕계는 욕심의 세계, 색계는 물질의 세계, 무색계는 비물질의 세계입니다. 욕계는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른 세상, 색계는 냄새만 맡아도 배부른 세상, 무색계는 생각만 해도 배부른 세상이라 합니다. 어느 세상이 제일 좋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밥을 먹어서 배가 부른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생각만 해도 배부른 세상이 있다면 그곳이 더 나을 것 같고, 또 냄새만 맡아도 배부른 세상이 있다면 거기가  좋은 세상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욕계 색계 무색계는 좋은 세상이 아닌 불안전한 세상입니다.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의 28천이 있는데, 새벽예불 시간에 대종을 칠 때 28번을 치는 연유는 28천에 전달되어 중생들이 무명에서 깨어나도록 하기 위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게 이 땅에 오셔서 80여 성상을 우리와 함께 하셨던 부처님이십니다.
초파일날, 룸비니 동산을 떠올리면서 찬탄의 글을 쓰다가 끝에 가서는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이었다.”는 시詩로 끝을 맺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꽃보라 휘날리는 룸비니 동산
한줄기 찬란한 빛이 우주를 덮고
거룩한 고담 고호타마 싯다르타 태자 태어나실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 큰소리 온 누리에 퍼지네
사방 칠보 사뿐히 자욱마다 비치는 연잎
태양보다 밝은 등 높이 드높으시고
태, 란, 습, 화 사생四生의 모든 고난 녹여 주신 분
이 세상 오신 날 사월초파일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이었다.


35년 전, 30세의 나이로 혼자서 인도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많은 스님들이 걱정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우는 비행기 표도 있고 돈도 3천불 가지고 떠나려고 하는데, 1300년 전, 혜초스님은 배를 타고 가셨다가 결국 돌아오시지 못하고 중국에서 돌아가셨다. 그러고도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라는 기행문을 남기기도 했다.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북동쪽에 있는 신라 계림을 떠올리면서 기러기에게 안부도 물었다고 하셨다.’


순례길에서 인도 바닷가 백사장 모래를 밟으며 강원도 눈길을 밟을 때 나는 뽀드득 소리를 들었고, 조개껍질이 부서져 모래가 된 것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찰싹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 물결은 남지나와 동지나를 지나, 태국과 베트남을 지나고 홍콩과 타이완을 지나 제주도와 부산 앞바다로 오다가 낙동강 강줄기를 타고 양산천으로 들어가면, 통도사 골짜기 자장동천을 보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영축산까지 오는 시간은 불과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대양 육대주는 함께 있습니다. 찰싹거리는 그 물길이 통도사 계곡하고도 이어져 있었습니다. 순례길에서 늘, 그렇게  통도사를 다녀가곤 하였습니다.


인도 순례길을 떠날 때 월하, 벽안노스님께서 5만원씩을 주셨습니다.
그 돈을 달러로 바꾸면서 소중한 곳에 쓰이도록 할 것을 다짐하며 비닐봉지에 싸서 따로 넣어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네팔 보카라에서 만났던 어린 사미들의 머리에 생긴 기계충을 보고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일주일정도 치료비로 4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다른 지역에 갔다가 보름쯤 뒤에 돌아왔을 때, 그 사미들의 머리는 딱지만 남아있고 기계충은 깨끗이 나아 있었습니다.
그 때 노스님께서 주신 소중한 보시금을 쥐어드린 그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어린 사미들은 중진스님이 되어 지역발전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룡사와 한가족처럼, 최근에는 스스로 학교도 짓고 한 층으로 되어 있던 요사채를 3층으로 올려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이 35년 동안 맺어온 인연 속에서 꽃피워지고 열매 맺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얼마 전, 지진 피해지역 에베레스트 쪽으로 다녀왔습니다. 면장갑 60kg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 절에서 일곱 살 어린 사미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곳은 큰스님이나 어른스님이 오시면 꼭 법상으로 모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절의 법상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 절 대중스님들과 그 지역의 불자들이 모두 전통복색을 입고 와서 환영인사를 하였습니다.
티베트 절에서는 참석 대중들이 법상에 오른 스님에게 보시와 축복의 마음을 담아 공양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꽃을 바치기도 하고 실크천에 보시금을 올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시한 공양물은 모두 불전에 놓고 왔지만, 어린 사미가 놓고 간, 실크와 보시금이 있었습니다. 어린 사미의 꼬깃꼬깃한 돈은 접고 말아서 놓고 간 100루피였습니다. 우리 돈 1천원의 돈이었습니다.
대중에게 물어보니 어린 스님은 돈이 없으니까, 그 절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연세 드신 스님에게 2백 루피만 빌려달라고 하드랍니다. 그래서 스님이 어린 사미에게  백 루피를 줬다고 합니다. 50루피 두 장이었습니다. 그 돈은 낡았습니다. 새 돈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돈입니다.
네팔 돈으로 바꿔 간 공양금 중, 3만 루피의 돈을 30여 명의 어린 스님들에게 보시금으로 전해주게 하였습니다. 그러고도 벅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학교 짓는데 그 사미 이름으로 만 배를 보시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1천원을 보시한 어린 스님의 마음에 만 배를 보탠 미화 1만 불입니다.
그 어린 스님은 원하는 바에 대한 확신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념을 물질적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더라도 보시하던 그 간절한 마음이 감격스러워…(그 어린 스님은 돈은 없었지만, 무량공덕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양은 평등공양이지만 보시는 등급보시입니다. 그래서 높낮이가 있어서 많고 적음은 있을 수가 있지만, 그 어린 스님은 어느 때 보시를 받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 어린 스님은 언젠가 자기에게 보시금이 들어오면 빌렸던 돈을 갚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미리 대답을 한 것일 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 어린 스님은 무슨 믿음이 그렇게 간절해서 알지도 못하는 스님이 절을 방문한다고 하니까, 없는 살림에 나이 드신 스님에게 돈을 빌려서까지 보시를 하려 하였겠습니까? 그것도 부끄럽고 쑥스러워, 바로 놓지 못하고, 봉투도 없으니까 작은 천에 싸서 슬그머니 놓고 갔을까?
그 간절함과 절실함이 용기를 내게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한 믿음은 사람에게 인색함을 덜어줍니다. 그러한 믿음은 항상 기쁨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그 믿음은 부처님 가르침에 가까이 들어오게 합니다.
그러한 믿음이 우리에게 지혜의 공덕을 증장시킵니다. 그러한 믿음이 부처님 계신 곳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