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의 의미와 공덕功德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입재일入齋日입니다. 오늘 입재를 시작으로 21일 동안 봉행되는 생전예수재, 안내 현수막은 ‘생전에 미리 닦는 재’, ‘생전에 수행하는 정진기도’ 하는 내용으로 바꿨으면 하는 제안을 하여 봅니다.
예수재는 미리 예豫, 닦을 수修, 재계 재齋 자입니다. 생전에 미리 닦는 재齋입니다. 이렇게 미리 닦는다고 하니까 마치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영가靈駕들도 죽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몸은 바뀌었어도 지금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의 안목眼目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안으로만 세상을 보기 때문에 안 보일 뿐입니다. 어디에 있는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인식은 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윤회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否定하지 않는 모습이 불자佛子입니다.
천안, 혜안, 법안, 불안이 아닌 육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자작자수自作自受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요 자승자박自繩自縛한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전생을 보고 싶으면 지금 내가 처해있는 현실을 보고(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 다음 생을 알고 싶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보면 느낄 수 있음(욕지내생사欲知來生事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을 보고 알았으면 합니다.


왜 우리는 사후死後에 재齋를 지내겠습니까? 어린 시절 집안에 아기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걸어놓는 이치입니다. 의학적으로 보면 면역체계가 약한 어린 아이에게 바깥으로부터 병원체가 들어오는 것을 미연에 막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보살피는 지혜였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의 사후에도 중음신中陰神들은 칠칠일로 보면, 눈, 귀, 코, 혀, 몸, 정신, 마지막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지은 십업十業을 십대왕인 염라국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업경대業鏡臺에 서 있으면 주마등처럼, 살아온 여정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물질적인 재물을 얼마나 바치느냐에 따라서 천당도 가고 지옥도 간다고 했는데 내가 앞으로 세상을 관장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첫째는 선행善行, 올바로 살아라. 둘째는 대자대비大慈大悲 대희대사大喜大捨 사무량심四無量心, 자비심과 연민심으로 살아라. 셋째는 포용包容, 너그러움으로 살아라. 그렇게 했을 때 그 사람이 좋은 세상에 가게 될 것이다.                                                                     - 갓 오브 이집트 -


생전예수재는 살아있는 이들이 스스로 중심이 되어서 닦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생전예수재를 3년마다 지내면서도 또 우란분절일에 49일간 지장기도를 지내는 것입니까? 생전예수재를 지내면, 이미 생전에 다 닦아놓았는데,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라 했습니다. 삼일만 마음을 닦아도 천년을 덮고 남을 보배로움을 지니게 되는데, 백년을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 하였습니다. 하물며 21일 동안 미리 닦는 기도를 하게 되면 얼마나 맑고 깨끗해지겠습니까? 그러니 날마다 마음을 닦고 정진을 하게 되면 얼마나 더 맑고 깨끗해지겠느냐는 생각으로, 믿음과 확신으로 마음을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곁들여서 나와 맺은 인연들,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인데요, 하물며 함께 살아왔던 그 소중한 인연들을 위해서 같이 기도를 한다면 얼마나 더 값지고 소중할 것인가를 비추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달라이라마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고 생각하는 습관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더라


언하言下에 일도양단一刀兩斷하는 지혜智慧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에 와서 느끼는 게 정답이 많습니다. 그런데 ‘잠깐만~’ 하고 생각을 올려놓고 분별식심을 일으키다가 갈등하며 변별력을 잃게 되면 해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하루하루의 시간은 잘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1년 이라는 시간은 어지간히도 안 간다 합니다. 지나간 시간 되돌아보니, 저도 10대 때는 1년에 나이를 두 살씩 먹는 것처럼 나이를 올린 적도 있습니다. 미성년자의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하루하루가 더디게 간다고 합니다. 하루하루는 지루한데,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렇게 갔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갔습니다. 2017년의 시작이 엊그저께 같았는데 벌써 유월달입니다. 벌써 유월이라고 느끼는 분들은 세상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70세는 시속 70km로 달려가고 백세 나이는 시속 100km로 달려간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생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에서 3년 간격으로 윤달에 생전예수재를 지내며 나를 전후좌우前後左右로 살펴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인연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에는 밥 먹다 돌을 씹는 일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뱉어버리면 그만입니다. 뒤끝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돌을 씹었다고 그냥 뱉어 버리면 안 됩니다. 입 가리고 골라내야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돌 씹는 것 같은 일들을 사회에서 많이 겪게 됩니다. 그렇다고 어른이 아이들처럼 함부로 뱉을 수도 없습니다. 바짝 씹혀서 가려낼 수가 없으면 입안에 있는 돌을 물로 삼킬 줄도 알아야 합니다.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할 줄 알아야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갈고 닦는 신심과 발심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보리심菩提心과 신심信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보리심이 발심으로 드러나는 게 신심입니다. 보리심이 발심을 하면 선근善根이 장양됩니다.
화가 나는데 웃는 사람보다는 화가 나는데 화내는 사람이 인간적입니다.
가장 좋은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보살입니다. 그러나 화가 날 때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도리어 인간적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화엄경華嚴經』 「십행품十行品」에 이르셨습니다.


이 중생들은 내 복밭이고 내 선지식이다. 찾아 나서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몸소 찾아와서 나를 바른 법에 들게 하는구나.
나는 이와 같이 배우고 닦아서 한 중생이라도 마음에 어기지 않으리라.
내 보시를 받은 중생들은 모두 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 평등한 지혜를 가지며 바른 법을 갖추어 널리 널리 선행을 하다가 마침내 열반에 들어 지이다.
만약 한 중생이라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지 않으리라.
이것이 보살의 즐거운 행이다.


지장보살님이 모든 중생들이 지옥문을 나서는 날, 지장보살님 자신은 성불의 길을 가겠다는 서원을 세운 일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삼귀의三歸依와 사홍서원四弘誓願은 다르지 않습니다. 삼귀의는 신심이 있는 이가 삼보전三寶前에 돌아가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사홍서원은 보살이 「십행품」에서처럼, 모든 중생과 더불어 함께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고 다짐입니다. 삼귀의와 사홍서원은 나누어져 있는 것 같지만, 하나의 서원입니다.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도 그렇습니다.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구분 짓지 말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