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잘 살아가는 불자佛子가 되자

오늘은 6.25 전쟁 6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68년 전, 6월 25일은 오늘처럼 일요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많지 않지만, 6.25 전쟁은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 세계 각국들이 구호물품을 보내 배급받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6.25전쟁을 몸으로 겪으신 어른들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저는 출가한 지가 50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른스님들의 뜻에 따라 대중포교현장인 구룡사에서 생활한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내 나이에 30년을 공제하면, 철없던 청년시절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시간은 유수流水와 같습니다.
불사佛事의 현장에서 대중들과 많은 일들을 했다고 칭찬받기도 합니다. 물론 통도사가 없고 구룡사가 없었다면, 또 월하노스님 그늘이 없었다면 어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불사란 부처님의 일입니다.
부처님 일이란 중생들을 위하는 일들입니다.
7월 25일자로 군종교구장 소임을 마칩니다. 4년이라는 시간들이 어느 때는 유수처럼 빨리 간 듯 느껴질 때도 있고, 어느 때는 ‘아직도 시간이 이렇게 많이 남아있는가’ 하고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아니 4년이라는 시간들이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출가한지 50여 년 시간에 가장 값지고 소중한 일들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물론 구룡사와 여래사 등, 국내외에 20여 곳이 넘는 사찰과 인연을 맺은 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JSA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무량수전 법당을 짓고 6.25참전용사의 위패를 국가별로 모신 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작년 1월초에 육군1사단을 방문했다가 그런 꿈을 1년 만에 그 무량수전과 평화의 종鐘으로 회향하였습니다.
판문점은 군사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입니다. 우리 국방부에서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군이 함께 관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고려의 수도인 개성 인접지역의 역사성을 감안하여 고려시대 건축양식인 맞배집으로 무량수전을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소나무로 짓고 아미타 삼존불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6.25전쟁에 참전한 16개국의 위패를 모시고 우리 국군과 경찰, 학도의용군, 민간 희생자와 무연고 희생자의 빈 위패까지도 모셨습니다. 그 위패의 크기는 62.5cm입니다. 위패 크기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위패를 모실 탁자와 창호문을 재어보니 62.5cm이었습니다. 그래서 위패를 62.5cm로 모시고 각국의 국기와 언어를 넣어서 모셨습니다. 평화의 종을 600관 청동으로 조성을 했는데, 이 역시 6.25 때 참전했던 16개국 유엔군 용사들의 왕생극락과 남북평화통일과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범종梵鍾으로 조성한 것입니다.
무량수전은 정면에서 보면 아홉 칸의 박스가 보입니다. 안에서도 아홉 칸입니다. 무량수전 현판 바로 밑에는 유엔기를, 법당 안쪽 중앙에는 태극기를 넣어 나머지 16개 참전국 국기를 정면과 법당 안쪽의 공간에도 넣었습니다. 판문점은 1년에 20만 명이 넘는 내방객들이 찾아옵니다.


법당에는 불교적인 분들만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는 정도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량수전이 낙성되고 법당 안에 16개국의 위패를 모시고 국기를 넣은 이후로는 대다수의 내방객들이 관심을 가지고 더 가까이 다가오고, 법당 안까지 들어와 향을 피우고 위패를 향해 합장하는 모습은 가장 값지고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하였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고 있습니다.
이젠 우리도 6.25 전쟁에 참전하여 목숨까지 희생해 가면서 우리나라를 지켜준 유엔 16개국의 국가들에 진 빚은 갚아야 할 것입니다.
필리핀이 태풍으로 큰 피해를 겪을 때 우리나라 군인들이 찾아가 복구하고 의료 활동을 한 것이 바로 그 빚을 땀으로 갚는 활동이었습니다.
레바논에서 유엔군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명부대 장병들, 뿐만 아니라 남수단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러 나라에 우리 국군이 UN군으로 파병되어 있는 것도, 코트라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지원을 하는 일도 엄격히 말하자면 가난한 시절에 진 빚을 갚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6.25 때 미국은 연인원 180만여 명의 군인이 참전했습니다.
그 중에 얼마나 많은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포로가 있었습니까.
여기에 어떤 말로 더 이야기하겠습니까. 이를 국가별로 한 번 상기해 보았으면 합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터키, 콜롬비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등입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어서 대한민국은 6.25 전쟁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6.25 때 전사하신 분들은 14만여 명쯤 됩니다. 부상자는 45만 명입니다. 실종자는 2만5천 명입니다. 포로는 8천5백 명입니다. 그리고 민간인 피해는 약 1백만 명입니다. 그 중에 사망자가 25만여 명, 학살이 13만 명, 부상이 23만 명, 납치가 8만5천 명, 행불자 30만3천여 명입니다.
그로 인한 후유증과 장애까지를 생각해 보면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법당에 들어와 불자들을 대신하여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전前에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맑히는 마음으로 향을 세 개 피웠습니다.
희생자가 6.25 때만 있었겠습니까만, 축원할 때 언제나 조국의 평화통일이 하루속히 이루어져 국태민안과 세계 인류의 평화를 발원합니다.


중생들이 악도에서 받는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가를 알게 되면 자연히 악한 일을 꺼리고 두려워하는 생각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는 인연을 드러내고자 이를 설하는 것이다.
중생들이 악도에서 고통 받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가 알게 되면,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고 자연히 악한 일을 꺼리게 될 것이다.


거울로 삼아야 하는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흉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보면 그것을 흉보는 데 쓰지 않고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거기에서 내 모습을 견줘, 스스로 괘도수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으면 두려운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마음들을 충분히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지켜주기 위해서, 수호하기 위해서 그 많은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서 왔던, 숭고한 희생을 값지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6.25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왔던 나라 중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이들 나라에는 국가에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우리도 우리 모든 국민들도 동참자가 되어서 6.25 전쟁 당시 희생한 고마운 마음이 함께 전해질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JSA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무량수전 법당에는 빈 위패도 있습니다. 무연고의 위패입니다. 언설로 표기하지는 않았지만 그 위패 하나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고독하기는 하지만 고립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나라에서 6.25 전쟁에 참전을 해서 지켜준 것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마땅히 감사함과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간은 계속 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으니 꼭 은혜 베푼 사람에게 은혜를 갚아야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 사는 모습이 보살핌을 받은 것에 대한 은혜를 갚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도 가슴을 울리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언양 석남사의 인홍 노스님이 마지막 서울에 걸음을 하셨을 때, 우리는 백팔대참을 하고 있었습니다. 불자들과 참회 기도를 할 때, 스님은 법당 앞에 기다리고 계시다가 법회가 끝나자 노스님이 내 손을 꼭 잡으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정우스님, 잘 살아 주어서 고맙습니다.”


백고좌를 하면서 그렇게 간절한 염원으로 기도하고 있는 젊은 스님의 모습은 한 생애를 출가자의 길을 걸으셨던 노 비구니스님은 얼마나 고마워하였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열심히 사는 스님들이나 불자들을 보면 저 역시 저절로 항상 하는 인사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살아 주어서 고맙습니다.


양재천을 걷다가 가끔 합장하고 인사하는 불자들을 보면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인사를 합니다.
승복 입은 스님에게 인사 해주는 것만 해도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젊은 시절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이곳에 와서 천막 법당에서 살면서, 가건물 법당을 짓고 부처님 금란가사를 백일간 친견할 때, 그 꿈을 실현하는 데 함께 동참해 주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정진했던 불자들이 저에게는 늘 감사하고 고마운 것입니다.


밝은 거울은 사람의 얼굴을 비치게 되면 저절로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부처님의 법경法鏡, 법을 듣는 거울도 그와 같아서 누구나 그 지혜광명을 비추이기만 하면 선한 일과 나쁜 일이 나타나고, 지혜로운 변별력으로 분별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