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나 미소 지을 수 있는 불자가 되자

<FONT size=3 face=굴림체>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구룡사가 이곳 양재동 구룡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지도 32년이 되었습니다. 월간 『붓다』가 5개월 후면 30년이 됩니다. 『구룡사 보』로 시작해서 매월 붓다지는 이번 달로 지령 355호가 되었습니다. 5개월 후면 360호가 됩니다. 한 세대를 함께 해온 붓다지는 그동안 인연 있는 불자들의 신행信行생활에 길잡이가 되었길 바랍니다. 한편으로는 좀 더 존중되어지고 불자들에게 소중하게 쓰여졌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네 백세 인생도 나누어 보면, 1기 인생은 태어나서 성년이 되기 전까지의 준비단계, 2기 인생은 성년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시기, 3기 인생은 인생을 정리하며 삶을 마무리해 가는 회향의 단계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세 단계로 30여 년씩 나뉘어보면, 우리 붓다지도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신문이나 잡지를 보고 읽어야하는 시대에서 더 발전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하여 다가가는 시대로 바뀌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우리 월간 『붓다』도 이제는 지령 360호에 맞춰서 다시 새로운 시대로 전환해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월간 『붓다』지 독자 중에는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발행 되었던 잡지를 모두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정성으로 보면 이보다 더 소중한 인연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혼자만 보고, 혼자만 가진다면 개인적으로는 고마운 일이지만, 시대의 흐름에는 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혼자만 보고 혼자만 간직하고 있다면, 1만부를 발행하면 1만 명만 보고 가지는 상태로 유지되어 정체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1만부의 잡지를 2만 명이 보고 십만 명이 보는 잡지가 되도록 하는 것이 이 시대에 맞는 삶의 주제라 할 것입니다. 월간 『붓다』의 지령 360호 발행을 목전에 두고, 『붓다』 발행 30년을 이 시대에 맞추어 생각해본 상념想念입니다.


오늘은 정유년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 부처님 재세在世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온 자자일自恣日입니다.
오늘 안거를 마치게 되면 대중들은 걸망하나 매고 운수행각을 떠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각 해제를 하고 운수행각을 떠나는 수행자들은 모두가 꿈꾸어왔던 젊은 시절의 꿈같은 길을 떠나려 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증도가證道歌』에서 이르기를, ‘몽리명명유육취夢裏明明有六趣하고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千이라.’ 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가 바라보면, 우리들의 삶 자체가 꿈입니다.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니라 무상無常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을 꿈이라는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 꿈을 깨고 보면 무 대천입니다.
생멸이 없고, 증감이 없고, 미추가 없고, 대소가 없고, 장단이 없고, 전후가 없고, 좌우가 없습니다. 각자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허망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칠보七寶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욕망에 사로잡혀있는 중생들이 원하는 만큼 흡족하게 준다 하여도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하며 수지하고 독송하고 서사하며 연설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바른 생각으로 삿되고 용렬한 생각들을 제어하고 무념무상의 자리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결같은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마음 없는 마음입니다. 시비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분별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지혜가 있어 변별력으로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사물을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마음 없는 마음이요,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마치 맑고 깨끗한 거울에 사물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견견지시에 견비시견하는 그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물 흐르듯이 살자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자연 속에서 서로 감싸주고 배려하는 어울림으로 친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업을 많이 지어서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 상태를 우리는 영가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도 예비 영가靈駕라고 할 수 있습니다.
꿈속에서 살고 있는 온전하지 못한 인생입니다. 불보살님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면 생로병사를 반복해서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이름이 사람이지 그 속에 있는 심성이니 본성이니 자성이니 하는 것은 다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영가를 위해서 기도를 올리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이라고, 저 많은 영가들,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영가들, 그리고 부모형제 처자권속의 인연으로 맺어졌던 그 가족들은 물론이요, 유주무주의 영혼 까지도 천도를 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유유상종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살고 있으면 나와 인연 있는 이들이 함부로 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가족들이 온전히 다 잘 사는 집안이라면 나도 함부로 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아내를 보면, 남편을 알 수 있고 내 남편을 보면, 아내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고 부모를 보면 자식의 됨됨이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인연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것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남의 집 남의 이야기 정도로 생각들을 합니다.
교통법규 어기고 걸리면 재수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대다수가 위반하였는데 하필이면 내가 걸렸다고 하듯이, 하필이면 내가 암에 걸렸고, 내가 죽어야 되느냐고, 내가 왜 병이 들어야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업業을 몸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가나 본성이나 불성이나 자성이나 영혼이나 혼백도 같은 말입니다. 이름만 다를 뿐입니다. 수명이 다를 뿐이지, 나고 죽는 것은 현상입니다. 그렇게 꿈을 꾸다가 늦게 깨고 일찍 깨고 하는 차이일 뿐이고, 꿈 꿀 때 좋은 일 험한 일 다양하게 겪을 뿐입니다. 그런데 삶의 저쪽 맞은편에 죽음을 던져놓고 그 죽음을 피해보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다가올 일인데도 정작 본인은 이를 피해보려고 합니다. 동물이고 식물이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결국 노 병사老病死를 겪는데도 이러한 생각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인가를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생각에 빙긋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부끄럽지 않고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도록 노력했었다면,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만나기 위해서 태어나고, 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미소를 짓는 그 순간 우리는 부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미소 지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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