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업善業을 짓는 불자佛子가 되자

인생은 초대받지 않아도 저 세상으로부터 왔고, 허락하지 않아도 이 세상에서 떠나가야 합니다. 업력중생業力衆生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지어온 업業 때문에 세상을 편안하게 살지 못하고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게 됩니다.
그래서 복덕福德과 지혜智慧를 닦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복덕과 지혜는 공덕功德이기 때문입니다. 복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며 덕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야지혜는 수행정진으로 증장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 육바라밀六波羅蜜,
육바라밀 실천은 보살행이 되어서 복덕과 지혜의 공덕을 드러나게 합니다.


군종교구장 소임을 마치고 모 일간지 신문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구룡사에서 살아온 30여 년은 포교현장의 대들보 역할이었다고들 합니다.
통도사 주지 소임을 보는 동안에는 큰 집의 기둥 역할도 하였습니다.
종단적으로도 다양한 소임을 보면서 대중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승가공동체에서 대들보나 기둥 역할을 하였다하여, 언제나 중심의 역할만 고집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큰 집의 대들보나 기둥은 작은 집에서는 대들보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작은 집은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집 공간의 대들보나 기둥은 큰 집에서는 서까래가 되어야지, 대들보나 기둥이 되려고 한다면 큰 집의 무게의 중심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청년靑年과 장년長年과 노년老年의 역할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가슴깊이 새겨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으로 해야 할 일과, 나이 들어가는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지혜롭게 구분하여 그 역할에 맞는 일을 찾아, 과욕 부리지 말고 살아가야겠다는 상념想念을 가지게 합니다.
나름, 큰 나무로 살아왔던 세월의 부피를 이젠, 판재로 만들어서 마루판을 놓듯, 평상이 되고 쪽마루가 되어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의 가고 오는 길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잘 살아가고자 합니다.


보살菩薩은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왕생하여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오르더라도 극락세계는 잠시 다녀오는 길이고, 그 원력願力으로 어렵고 힘든 중생들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보살행을 언제 어디서나 우리도 실천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항상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스스럼없는 원력을 가졌으면 합니다.
인생은 저 세상에서 왔다가 이 세상에서 떠나가는 그 길에서, 삶은 노병사老病死를 겪으며 살게 됩니다. 거기에 무슨 탄식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초로初老의 나이가 되어서야 매일 걷고 있습니다. 절에서는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반야샘터에서 차茶도 마시고 극락전 법당, 무량수전, 이렇게 움직이다 보면 3천보는 걷게 됩니다. 바깥으로 유치원과 놀이터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그런 날은 5천보를 절에서도 걸을 수 있습니다. 도량에서 불자들과 만나면 인사를 나누게 되는데, 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하는 인사를 스스럼없이 하게 됩니다. 포교당에 사는 우리네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두 시간을 양재천변을 걷다보면, 그 날의 걸음걸이는 1만보, 1만5천보를 걷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간절한 절실함이 묻어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계산할 일들이 많은 사람들은 늙어서도 제대로 떠나지 못합니다.
겨우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리미리 준비해 두어야 할 저쪽의 세상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명을 몇 년씩 남겨두고도 함께 사는 이들에게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위해서 이야기 해 두고자 합니다.


“누워 있는 것 보다는 휠체어라도 타고 바깥바람 쐬러 나오세요. 지팡이라도 짚고 걸을 수 있을 때, 밖으로 나와 스스럼없이 함께 길을 걸어 보자구요.”


세상 사람들은 다 속일 수 있어도 내가 나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속이면서도 스스로 속는 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던가요.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이나 인연을 맺은 이웃들과 다 같이 부처님 품안으로 동행同行하였으면 합니다.


우리 몸은 사대요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흙은 수분이 함께 해주지 않으면 분진입니다. 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은 불이 함께 해주지 않으면 얼음덩어리입니다. 불은 바람이 함께 하지 않으면 타지 않습니다. 바람은 흙과 나무들이 불러주지 않으면 바람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 우리네 인생도 들여다보면 숨을 쉬고 안 쉬는 차이입니다. 태중胎中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 탯줄을 자르면 첫울음을 시작으로 들숨과 날숨으로 평생 동안 살아오다가 숨의 거둠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숨은 죽음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병病듦은 무엇으로 이어져 있을까요? 화기火氣입니다. 병이 들면 열이 납니다. 화가 나도 열이 납니다. 무엇 때문에 얼굴에 주사를 맞습니까? 수분이 부족해서 쭈글쭈글해진 얼굴을 펴주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공부를 잘 하면 그런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훈장은, 있는 그대로 연륜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웠던 영가가 지금 위패로 이렇게 모셔져 있지만, 위패의 저 모습 자체가 영가는 아닙니다.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 그리워 하지만, 그 사진 자체가 그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워하는 가족사진을 보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위패를 모시고 기도를 올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목이 부족해서 (천안통天眼通, 누진통漏盡通, 천이통天耳通이 열리지 않아) 서로 교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어느 세상인가에 잘 살고 있는 가족들을 믿음과 확신으로 부처님의 가피력과 위신력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 하는 것입니다.


복이 있다는 것은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절대 복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복이 없는 사람은 세상살이에 장애가 많습니다.


살아생전에 나쁜 업을 많이 지으면 살아서도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되지만, 저 세상의 영가가 되어서도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생동안 살면서 남을 도와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불행한 일들을 자신의 일처럼 가슴 아파하며 위로하기도 합니다.
불자들은 윤회하는 세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선한 업을 지으면 천상을 가서 태어나기도 하고, 인생을 본전만 하여도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는 그 믿음으로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쁜 업을 지은 사람은 고통과 괴로움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윤회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부정하지 말고 진정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목련존자만 어머니를 위해 공양 올리고 재를 모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지극한 마음으로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이웃들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