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불자가 되자

이번 추석명절은 우리나라 근로조건으로 보았을 때, 긴 시간의 연휴입니다.
인천공항을 통해서 해외로 나가는 이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이었습니다.
해외여행지로는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인접국가인 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6.25전쟁을 3년이나 겪었습니다. 지금도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습니다. 유엔UN의 정전협정으로 전쟁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그런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에서 여러 해 동안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인도 부다가야에서 베트남 정치인 국회의원과 함께 동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무척 두렵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 군인들을 잊을 수는 없지만,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교훈 삼아 지금은 묻어두자.”고 하였습니다. “베트남은 수십 년간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가 재건을 위해서 그 당시의 아픔은 우선 묻어두자는 것”이었습니다.
묻어 둔다는 것은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찬란했던 문화유산만 되새김질할게 아니라, 수많은 아픈 역사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일이라 그런지, 중국과 몽고는 별로 기억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식민지 36년에 대한 아픔만은 들추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피해자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것입니다. 붙잡혀 갔던 젊은 여성들, 탄광으로 끌려갔던 이들과 그 가족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잊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여행을 가장 가고 싶은 나라는 일본이라고 말하는 모순에, 참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베트남 국민들처럼 아픈 역사를 교훈삼아 묻어 둘 건 묻었으면 합니다.


“다른 이가 그 일을 하기 어렵고 힘든 이가 있으면 내가 앞장서서 모범이 되어라.
그리고 그 일을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내려놓고 그 사람에게 그 일을 남겨주고 너는 길을 떠나라. 또 새로운 길에서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해라.”


구룡사에서 그동안 역할은 대들보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통도사에서 소임 볼 때는 기둥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또 종단의 공동체에 속해 있는 일원으로는 서까래 역할, 주춧돌 역할, 기왓장 역할을 하면서 50여 년간 출가자의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큰집의 대들보가 어디서나 대들보가 되려고 하면 하중이 무거워져서 그 집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작은 집의 대들보도 큰집에 가서 대들보가 되려고 하면 그 집은 세워지지 못하고 무너질 것입니다. 세상은 불변의 법칙처럼 다가오는 가르침이 아닌가 싶습니다.
종교는 무엇보다도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은 개인적으로는 정직한 사람이 성실하게 살아가는 행동입니다. 그 근본이 바로 정직함과 성실함입니다.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자정기이自淨其意하면 시제불교是諸佛.니라.”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라.”
불교는 신앙信仰의 종교가 아니라 신행信行의 종교입니다. 언행일치되지 않는 말만 가져서는 안 됩니다. 믿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그 뜻을 헤아리고 살피면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을 아이들도 알 수는 있으나 어른도 행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불교인은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廻를 부정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녀야 합니다.
스님들이 처음에 출가하면 이런 공부 저런 공부 많이 하지만, 첫 번째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라는 가르침을 서당에서 『천자문千字文』 배우듯이 외우고 익혀야 합니다. 후원에서 이런저런 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분주하고 번다한 시간에 석 줄을 배우면 석 줄을 쓰고 외우고 익히며 암송하고 뜻을 헤아리는 공부를 하는데, 첫날 배우는 경구가 다음과 같습니다.


“부초심지인夫初心之人은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하야
수오계십계등受五戒十戒等하야 선지지범개차善知持犯開遮호리다.”


처음 마음을 낸 이는 악한 사람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이를 친히 가까이 하며 오계와 십계 등의 계를 잘 받아 지니되 범할 줄도 알고 열어줄 줄도 알고 막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불교는 하나 더하기 하나만 둘이라고 가르치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여백의 공간을 가지고 무한대의 숫자를 응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삼귀의와 오계를 받은 불자들에게 묻습니다.


“여기에 한 잔의 천연주스가 있다. 대중들은 이 주스를 마실 수 있는가?”
“예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천연주스를 입술을 대십니다.
“주스가 발효되어서 술이 되었다. 먹을 수 있는가?”
“먹어서는 안 됩니다.”
“술이 발효되어서 식초가 되었다. 먹을 수 있는가?”
“예, 먹을 수 있습니다.”


한 잔의 천연주스는 주스였다가, 술이 되었다가, 식초가 되었는데 무엇은 먹을 수 있고 무엇은 먹어서는 안 된다는 연유가 무엇일까요? 취하기 때문입니다. 취하면 실수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술은 백화百禍, 백 가지 화근의 근본이라고 하시며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자양분이 되고 비타민이 되고 윤활유가 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육체적으로는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중생심은 자신의 몸을 영원불멸할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세상을 다 떠나도 나는, 다 아파도 나는, 다 병 들어도 나는, 다 고통과 괴로움을 겪어도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그 안타까운 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와 개고皆苦의 가르침을 설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인 상일성常一性과 주재성主宰性, 항상 일관된 성품과 나를 주제할 수 있는 변별력과 지혜의 판단력을 일깨워주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들의 생각은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를 간다고 해도 우리들은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을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묻습니다.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지, 아끼는지…. 그러면 어린 자식이나 짝지를 사랑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 지나가 물으면 대동소이하게 대답합니다.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여러분들은 누구를 가장 사랑하십니까?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을 아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해쳐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어렵고 힘든 일을 짊어지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상응부경相應部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은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다. 그러나 어디를 간다고 해도 그들은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은 찾아낼 수가 없다. 그러나 자신이 소중한 것을 아는 이라면 다른 사람도 해쳐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 힘들게 해서도 안 된다. 진실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쁜 업은 멀리하라. 바람직하지 않은 업은 멀리하라.”


본래 새끼줄에는 비린내가 없었지만 생선을 가까이하다가 비린내가 배듯 종이에는 본래 향 내음이 없었지만, 향을 싸둔 종이에서 향 내음이 배어나옵니다.
나쁜 짓을 멀리하고 선행을 쌓으면 그 마음은 항상 편안할 것입니다. 넉넉하고 너그러워 질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은 나쁜 업은 멀리하고 선행을 쌓으면, 그 마음은 늘 한결같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진실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마음이라는 마음이여, 그 마음을 찾으려 하면 어렵고 힘들지만, 그 마음은 우주 법계가 들어와도 얼마나 광대무변한지 보이지 않습니다.
작게는 바늘 하나를 꼽을 자리도 없는 것이 마음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사는 것이 좋겠습니까? 남은 여생 비례대표로 혼자만 절에 오려고 하지 말고 식구들과 함께 와서 어울리며 살았으면 합니다.
항상 내면에 있는 나의 진정한 주인공을 만나서,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