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향廻向할 줄 아는 불자가 되자

1년 중에 마지막 날이자 첫날인 동지가 엊그제 이었는데, 소한, 대한을 지나 입춘立春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수, 경칩, 춘분春分으로 이어지는 24절기는 어느새 2월이면, 지령 360호 되는 붓다지가 나올 것입니다.
한 세대를 함께한 붓다지는 새로운 30년의 전자 잡지로 거듭나려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참뜻이 있습니다. 열 개開자, 보일 시示자, 깨달을 오悟자, 들 입入자 개시오입開示悟入입니다. 그것은 진리의 실상인 생명력을 열어 보이시어 우리들로 하여금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 땅 사바세계 중생들 곁에 출현하셨던 것입니다.
원력보살願力菩薩은 세상의 출현이요, 환생입니다. 그러나 업력중생業力衆生들은 인과因果로 태어납니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업력으로 어느 세상인지도 모르는 그런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으며 떠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법구경法句經』에는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마음이 오그라든다.’고 했습니다. 옹색한 마음, 인색한 마음은 마른 완두콩 송곳으로 구멍 뚫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협소해진 그 자리는 세상일에 끊임없이 치우치고 얽매이고 빠지게 됩니다. 집착이라는 얽매임이 항상 수갑처럼 채워져 있습니다.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삶이 지혜 있는 이들의 현명한 수행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늘 전법선언을 하셨습니다.


“자 길을 떠나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니 조리 있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하자. 갔던 길로 되돌아오지 말고 두 사람이 함께 가지도 말자. 모든 이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자. 나도 우르벨라 병장촌 고행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법을 설하리라.”


가까이 있는 가족을 멀리하고, 보리심 키우는 일을 등한해서야 되겠습니까? 동쪽으로 기운 나무 동쪽으로 넘어지듯이 불연佛緣이 있어 한 가족이 되었으니 발심하여 정진하였으면 합니다.
 
“나는 일체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킨 것이지 내 자신의 편안함이나 안락함을 위해서, 위없는 도를 구하려고 보리심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얼마 전 방영한 깊은 바다 속의 생태계를 밀착해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생명의 근원에 대한 진화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주위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해 가면서 진화되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알게 하였습니다. 그 생태계는 진화와 적응 속에서 드러나는 조화로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수없는 내면의 세계에서도 적응과 진화의 조화로움이 있었습니다. 나의 내면에도 지금보다 훨씬 나은 나도 있고 지금의 나보다 훨씬 못한 나도 있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습니다. 50년 넘게 사찰에서 살아온 나의 내면에도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인天上人이 함께하는 수없는 나의 생각들이 있습니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중에 보살은 의업意業이 우선입니다. 한 생각으로부터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실행에 옮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생衆生들은 육신이 우선입니다. 행동은 몸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몸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그것을 올바른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화가 나는 데 웃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상대방은 좋아서 웃는 줄 알고 속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화가 나는데 웃는 사람입니다.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조심해야 할 사람입니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입니다.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세상을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한결같은 생각 속에 드러나는 것 중 하나가 고마움과 감사함을 표해야 할 주변의 가까운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가족들은 물론이요 이웃과의 어울림에서도….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입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습니다. 먼저 견고한 믿음으로 발심해서 진지한 수행자의 길을 나서면 됩니다.


여래사 가려고 구룡사 마당에 있는데 한 불자님이 캐리어를 밀고 오셔서 1층 옆 한쪽에 접어두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오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캐리어에 의지해서 오시는 모습을 보면서 지혜로운 노보살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과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그 믿음에 의지해서 발심으로 융합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믿음은 곧 부처님의 법신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법신체法身體에서 나오는 에너지입니다. 믿음은 번뇌와 망상을 끊고 해탈로 인도하는 에너지입니다.
믿음을 일으키면 번뇌와 망상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여의게 하는 것처럼, 믿음 없는 중생은 절대로 불보살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지옥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괴로움과 고통은 있습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육도 가운데 가장 힘든 지옥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인과를 부정하고 윤회를 부정하면 그는 불자佛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전三寶前에 돌아가 의지하고 오계五戒와 십계十戒를 받아 지니는 사람만 불자가 아닙니다. 불자는 반드시 인과因果를 믿어야 합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간단한 이치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과라고 하는 원인과 결과는 확연하게 다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다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등한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음 없는 중생은 절대 부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을 믿지 않는 이들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화를 잘 내고, 잘 내는 만큼 어리석고, 화를 잘 내는 이는 욕심이 많습니다. 욕구와 욕망과 욕심에 찌들어서 사는 사람들은 화를 잘 낸다고 하였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작은 것에도 고마워하는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잊어버리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어른들의 보살핌 속에서 은혜를 입었으면 어떻게든 갚아야 합니다. 갚을 빚이 없어서 내생까지 놓아뒀다가 찾아가서 빚 갚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 갚으면 됩니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주변에 갚으면 됩니다.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어른들로부터 받았던 은혜, 이웃으로부터 받았던 은혜, 함께 살아왔던 이들로부터 받았던 은혜의 감사함을 전해주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삶이 진정한 불자로서 불자답게 살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인생은 회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유한 자는 나눔으로 회향할 수 없습니다.
내 것이라고 붙들고 있는 한 자유스럽지 못합니다. 내려놓으면 여유가 생깁니다. 한없이 붙들고 있으면서 불편하다는 생각도 못하는 인생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부처님 품안에서 따뜻한 가정을 발원하며 살아가길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