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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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참된 인생을 살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그동안 경험으로 한여름에는 더위 속에 간간히 시원함이 묻어있었고, 엄동설한 한겨울
추위에도 따뜻함이 배어있었는데, 이제는 그 절서節序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빚어낸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그 주범입니다. 그런 온난화 현상도
입추立秋가 지나니 가을이 오긴 올 모양입니다. 조석으로 바람기운이 선선해지며 날씨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니 살아온 세월 속에 수많은 또 다른 내가 있었습니다.
34살 먹던 해, 가회동 구룡사 주지소임을 맡고 지내온 지 34년이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살아오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잘못한 일은 없을까요?
부끄러운 일은 없었을까요?
이 세상을 살면서 허물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잘못한 일이 있으면 부끄러워하고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는 일과 참괴심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 진정한 반성이요 뉘우침입니다.
몸으로 짓는 업, 입으로 짓는 업, 생각으로 짓는 업이 있어, 이 업들은 몸으로 짓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이 있고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가
있으며 생각으로 짓는 탐貪 진瞋 치癡가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지어온 업 중業中에 어떤 업이 가장 무거운 업일까요? 우리들이 사는
중생계衆生界는 몸으로 짓는 업이 맨 앞에 있는 것을 보면, 몸으로 짓는 업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들어집니다.


서산대사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유죄즉참회有罪卽懺悔하고 발업즉참괴發業卽.愧하면 유장부기상有丈夫氣象이요 우개과자신
又改過自新하면 죄수심멸罪隨心滅이라.” 하였습니다.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 이것이 대장부의
기상이다.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되면 잘못도 이내 사라진다.”


『천수경千手經』에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是罪亦忘
죄망심멸양구공罪忘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죄의 자성 본래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니 마음마저 없어지면 죄도 함께 사라지네. 모든
죄가 다해지고 마음조차 사라져서 죄와 마음 공해지면 진실한 참회라네.”


죄업罪業은 자성이 없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현상계는 모든 게 생멸이 있고 증감이
있고 미추가 있고 대소가 있고 장단이 있습니다. 전후좌우도 있습니다. 진심어린 참괴심을
간직하는 마음이 진정한 참회라 하겠습니다.
여러 차례 전해 드린 영화, 〈갓 오브 이집트〉는 윤회輪廻하는 세상을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세상을 착하게 살아야 하고 자비한 마음 연민심으로
너그럽게 포용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다른 세계로 연결 짓는, 선근과 지혜와 용기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었습니다.
다음 세상으로 가는 길목은 선행과 자비심과 너그러움만이 있었습니다.


조계종단은 육도六道처럼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어수선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뻔뻔한 일들이 떳떳한 것처럼 포장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 허물은 스스로 고쳐 새롭게 태어나면, 잘못한 일도 이내 사라질 것입니다.
진정한 참회란 지은 허물을 뉘우쳐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맹세입니다.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이참사참理懺事懺이라고 합니다.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안으로는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허물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이 당당해 질 수 있습니다.
허상의 그림자 같은 업은 번갯불과 같습니다. 번갯불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허물을 진심어린 다짐으로 스스로 살펴가고자 하는 뉘우침 입니다.
인터넷이나 SNS에서 종단의 어수선함을 바라보면서 마음은 불편합니다.


이 세상에 칠십 여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허물이 있었겠습니까?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들이 많겠습니까? 그나마 전생의
선근으로 동진출가해서 진실하고 성실한 스님이 되고자 하는 바램으로 이렇게라도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른 스님들의 그늘에서 자상한 가르침을 자양분으로, 불자들이 세운 울타리
안에서 편히 쉴 수 있었던 일들은 모두 다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소중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종단 제도권에서 바른 말 하다가 긴 시간 동안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생긴 대중 기피증은 스스로 사회성을 잃어버리게 하였습니다.
긴 세월을 묵빈대처默.對處하며 사족蛇足을 달지 않고 지내오면서, 함께해 주신 불자들이
그래도 있어 지금의 내가 그나마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확인하고 다짐하며 살아왔던 것은, ‘왜 저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할까? 그것은 다 내 허물이다.’ 싶었습니다.
빨간 안경과 파란 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다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없는 것도, 눈을 감았다고 해서 세상의 사물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들입니다.
톨스토이는 “눈과 귀와 코는 무관하게 작용 한다.” 했습니다. 눈으로는 보아야 하고
귀로는 들어야 하고 코로는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제어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입과 주먹과 발입니다.”
눈을 일시적으로 감았다고 세상이 없어지는 것도, 귀를 막았다고 해서 소리가 없어지는
것도, 코를 막았다 해서 냄새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이나 사실유무 보다 더
큰일들은 도의적으로 그런 말을 듣고 알게 되었을 때,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불교가 인생과 다르지 아니하듯 부처님도 세간을 떠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할 수 있을 때 육도를 윤회하는 업연이 스스럼없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불교를 믿으면 선행을 짓는 데에는 훨씬 수월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큰 죄업은 인생을 모르고 사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인과를 믿게 되면 다시는 범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나 모르고 살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이치를 눈여겨보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고두원의 아침 편지에 “질병은 초기에는 치료하기가 쉽고 진단하기는 어렵다. 인식하지
못하면 사태는 악화된다. 이윽고 모든 사람들이 알아차릴 때쯤이면 어떤 해결책도
소용없게 된다.” 하였습니다.
몸 아픈 것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상 일이 다 그렇습니다. 내 마음이 깨끗하면 그곳이
정토淨土요, 시비하고 분별하는 세상이 예토穢土인 것입니다.


세상일에 사실이 아닌 것은 묵연默然하면 됩니다. 굳이 밝히려 할 것도, 변명하려고 할
일도 없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은 묵빈대처默.對處하면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허물을 보고 세상을 함부로 살지 않으면, 그런 곳에서 놀아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도 부처님 품안에서 따뜻한 가정을 염원하는
생활 불교인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