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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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도를 실천하는 불자

불자佛子들은 신심과 서원誓願으로 불국정토佛國淨土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아미타경阿彌陀經』에 사리불이여, 조그마한 선근이나 복덕의 인연으로는 저 세계에 가서 태어날 수 없다. 선남자선여인이 아미타불 명호를 듣고 하루나 이틀 혹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동안을 아미타불의 명호를 가져 부르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산란치 아니하면 이 사람이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아미타 부처님이 거룩한 대중들과 함께 그 앞에 나타날 것이니, 이 사람 목숨이 마칠 적에는 마음이 뒤바뀌지 아니하고 곧 극락세계에 가서 날 것이다. 사리불이여, 나는 이러한 이로움이 있는 줄 알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니 어떤 중생이나 이 말을 듣거든 마땅히 저 세계에 가서 나기를 원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탁악세에서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으로 짓는 십업 十業[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淫·망어妄語·기어綺語·양설兩舌·악구惡口·탐욕貪慾·진에瞋.·사견邪見]을 살펴보면, 살생을 하면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의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나, 혹 사람으로 태어나도 단명을 하거나 병고에 시달린다고 하였습니다. 남의 물건을 많이 훔친 사람도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사람으로 태어나도 빈궁하거나 재물이 있어도 쓰지 못하는 등, 죄업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생前生에 그런 업을 많이 지어 선근과 지혜가 없어지면 일어나는 현상을 잘 살펴보면서 인과를 믿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천수경千手經』에 십악참회十惡懺悔를 염송하는 것은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장애 있는 곳에서 도를 구하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서원입니다. “한 부처님이 출현하시면 만 중생이 깨달음을 얻고 한 법당이 이룩되면 곧 사바세계 안에 극락정토가 이루어진다.”는 『무량수경無量壽經』에 의지하며 잘 살아가도록 노력하였으면 합니다.


부처님은 청정법신淸淨法身과 원만보신圓滿報身과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의 상락아정常樂我淨[항상 된 나, 즐거운 나, 참나, 깨끗한 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가르침입니다. 법法은 생명生命입니다. 사바세계에서는 법이 모두 소멸된 것처럼 인과를 믿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이들의 번뇌 망상은 고통과 괴로움만 일으킬 뿐입니다. 생멸生滅이 없고, 증감增減이 없고, 미추美醜가 없고, 대소大小가 없고, 장단長短이 없고, 전후前後가 없고, 좌우左右가 없는 모양이 실다운 모양이요 참다운 모양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변화 되어가는 허상입니다. 중생심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석가여래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떠남을 보고 이것을 죽음으로 알지 말라.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열반은 죽음이 아니니라.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육신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이다. 육신은 여기에서 떠나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진리의 길에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떠난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나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원효대사는 “자락自樂을 능사能捨하면 신경여성信敬如聖이요 난행難行을 능행能行하면 존중여불尊重如佛”이라 하였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인생을 내려놓고 공경하기를 성인과 같이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시는 분이 부처님이요. 인생의 즐거움을 스스로 내려놓을 줄 아는 분을 성인이라 하였습니다.
성인이 되려면 팔정도八正道를 닦아야 합니다.[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정정진正精進·정정正定] 성인聖人의 도道입니다.
구룡사와 여래사 등, 통도사 포교당에서는 봄 학기와 가을 학기로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는 불교대학이 있습니다. 그러니 한 학기 배웠다고 다 배운 것처럼, 그만 둘 일이 아닙니다. 공부는 평생을 해야 할 우리들의 몫입니다.


『유마경維摩經』에서도 “진흙탕에 솟은 연꽃이 그 진흙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열반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생사의 바다에 나고 죽는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보살의 삶이요 보살의 행이요. 모든 중생을 사랑하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행”이라 하였습니다.
참 나를 잊어버린 이가 중생입니다. 본래 간직하고 있는 부처를 찾으면 부처님 이십니다. 부처를 찾고자 하는 것이 수행이요 정진입니다.
차라리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남을 해치지 않고 도와주며 사는 이가 더 이로울 수 있습니다. 종교를 가까이 하는 것은 착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교가 없는 이보다 더 못한 인생을 살면서도 기도하면 다 되는 줄 아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마음을 해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도와주며 사는 인생이 더 행복할 수 있고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있으며 극락에 갈 수 있습니다. 착하게 살면 천당 갑니다. 종교를 믿어야 천당 가는 것은 아닙니다. 밥상에 앉으면 밥 먹기가 쉽지만, 밥상 앞에 있다고 저절로 배불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적 믿음이 없어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올바로 살아가야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선문촬요禪門撮要』에 “뜬구름 같은 이름을 탐貪하며 사는 것은 부질없이 몸만 괴롭히는 일이고 잇속을 따라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살면서 허덕이는 것은 무거운 업業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불섶을 보태는 격”이라 하였습니다.


『능가경楞伽經』에도 “불교가 인생과 다르지 아니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간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생을 도와서 이롭게 할 수 있을 때, 육도六道[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천상天上] 윤회의 업연도 사라질 것이다.” 타던 불이 꺼져야 끓던 물이 잠잠할 것입니다.
삼독의 불을 꺼트려야 욕망의 망상도 사라지는 이치를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를 여러 번 보았는데, 볼 때마다 감동입니다. 척박한 땅에서 배운 것도 없을 것 같은 이들이 2,100Km를 하루에 6~7Km씩 삼보 일배로 순례길을 가는 방송이었습니다. 추운겨울 꼭두새벽에 일어나 천막 속에서 경전독송하며 염불하고 수레를 끌면서 가고 있는 두 노인은 라싸로 향합니다. 순례 길을 떠나는 이유를 묻습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려운데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이 길을 떠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고통과 괴로움을 받고 있으며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과거의 방탕한 나로부터 오직 한 가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지를, 부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오직 모든 생명들을 위해서 절을 했고 오로지 선행을 실천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이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면서 말을 이어갑니다.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심을 가지라 하셨습니다. 다음 생에는 마음이 더 넓은 사람이 되어서 모든 이의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오로지 다른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살뿐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노인의 눈가에는 하염없이 맺혀 흐르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순례자들처럼 기도하는 서원의 보살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