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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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깨어 있는 삶의 현장이어야 한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코로나 바이러스는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변이현상을 일으키면서 진화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바이러스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이 백신을 개발하는 것도 병원체에 대한 항원작용을 통해 그 바이러스에 집단 면역으로 적응해 가기 위한 노력일 것입니다. 그런 생태계는 파괴되고, 자연은 훼손하면서 욕망으로 빚어낸 환경파괴가 우리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져가고 있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일본법회에서 보리심菩提心은 선善의 심소心所인 자비심慈悲心과 연민심憐愍心을 가지게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녀야할 보리심과 공성空性의 본질을 알게 하고자 하는 안목眼目이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을 염송하는 것은 대비심과 대원행을 간절히 염원念願하며 정진하고자 하는 수행법이 될 것입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어린 시절. 긴 한숨을 내쉬던 어머니들이 참 많았습니다.
조모祖母님은 땅이 꺼지게 내쉬던 한숨 대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며 긴 한숨을 내쉬고 계시는 그 모습을 역력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출가한 지 55년을 살아온 승가僧伽에서 조모님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출가자도 인간이고, 스님들도 소임을 보기 때문에 한숨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때 조모님의 긴 호흡에 “관세음보살님~”을 실어 보내며 우리도 숨을 쉰다면, 훨씬 속살은 편안해지고 가슴은 시원해져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냥 그런 숨을 내쉰다면, 뜨거운 기운으로 한숨만 더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보살님~” 염송 하는 호흡은 시원하고 넉넉한 긴 숨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힘든 일이 있으시면 “관세음보살님~”을 염송하였으면 합니다.
우리를 정화하고 치유하게 하는 불보살님의 위신력과 연민의 자비심이 우리들의 괴로움을 깨닫게 하고 일상생활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수행하는 것은 성불成佛하기 위함입니다.
중생들과 어울림을 가지며 살기 위함입니다. 부처님은 일체 중생들에게 불종자佛種子를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고 계십니다.
보리심은 방편方便입니다. 선근善根과 지혜智慧는 자비심이요 연민심입니다. 보리심의 근본은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성취하려는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도 어렵고 힘든 세상의 괴로움에 노출되어 있는 것일까요?
자신만의 이익을 갈망하기 위해서 세상살이에 편승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타심利他心으로 살게 되면 행복할 터인데, 자신만의 욕심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불행한 인생살이가 전유물처럼, 오염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로 공성空性의 수행을 닦는 보리심을 길러내야 합니다.
그 보리심으로 보살도를 실천하는 일들이 성불을 향해 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나를 변화 시킬 수 있는 힘, 변화시키고자 하는 수행방법이 정진력입니다.
그 힘은 게으르지 아니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되고 세계인들이 접종하게 되면, 집단면역이 생기게 된다고 하는데, 코로나 백신으로 바이러스에 적응하기도 전에 변이바이러스는 진화해가는, 그 사실을 그냥 쉽게 흘려보낼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바이러스도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코로나19는 유해有害한 바이러스 생명체라고 걱정들만 하며 세계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양한 변이를 일으키며 진화해 가고 있는 것들을 보면, 세상은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이를 일으키며 진화해가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백신접종으로 집단 면역을 키워서 바이러스에 적응해 가려는 생명과학계의 끝없는 전쟁입니다. 오늘은 지구의 날입니다. 세계 정상들이 코로나의 주범격인 지구의 온난화,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화상회의가 있었습니다.


우리 절에서도 국가정책을 따르는 그 시간에 법당의 전원을 소등하고 어둠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흘러가는 물도 아껴 사용하라” 하셨던 부처님 가르침으로 모든 이들이 지금부터라도 지구를 지켜내야 하고 자연 환경을 살려내야 할 자연유산인 생태계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무겁지 않던 겨울장삼이 봄이 되면, 저절로 옷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추운 겨울엔 법당 온풍기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데, 날이 풀리면 온풍기 소리는 거슬립니다. 한 여름 법당 에어컨 소리도 거슬리지 않는데, 봄날에 에어컨을 켜면 그 소리는 거슬리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적 생활이기도 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인식만을 통해서 보려고 하는 일들은 경계해야 합니다.
“맑은 거울로 세상을 바라보면 나타나는 것처럼, 법을 듣는 거울도 그와 같아서 선한 일, 악한 일들이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니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삶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 가까워질 것이다” 하신 부처님 가르침을 잘 들여다보는 정견의 인생을 살았으면 합니다.


최성환 작가의 『직장인을 위한 생존 경제학』에,
“나이가 들수록 깨끗하게 잘 입고 다니고, 각종 모임이나 결혼식 또는 문상에 잘 찾아다니고, 마음의 문을 열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가급적 말은 삼가해야 한다. 노욕老慾을 부리지 말며 웬만한 것은 포기하고 기분 좋은 얼굴에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돈 내는 것을 즐기고 건강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평의 땅도 없습니다. 훗날 노인이 되어있는 내 모습을 장담할 수가 없어 몇 차례 인생을 정리하였습니다. 제천 불교마을 운조암은 운조암과 영농 법인에서 다양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20여 년을 대중스님들과 불자들의 울력으로 농사를 지어가며 구룡사와 여래사 등, 포교당에 김장도 하고 일 년 내내 불자들의 공양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천안 입장에는 5,700평의 임야가 있습니다. 통도사 자비원에 들여놓았습니다. 제가 세운 국내외 포교당들은 조계종 총무원에 통도사 말사로 재산등록으로 공찰이 되어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아직도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었는데, 너무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살고 있습니다.
 
세속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지금도 부족하세요?
욕심 부리지 말고 웬만한 일들은 내려놓고, 가진 것은 나누어주며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30여 년간 인연을 지으며 구해 모았던 목판본 경전 등, 문화재급 성보물聖寶物들 600여 점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들여놓았습니다.
훗날 마음이 변하여 노욕老慾이 일어나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청년이었을 때, 한 점 한 점 성보박물관에 들여놓는 불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살아온 날들은 부족했어도 부끄러움 없이 살다가 세상을 떠나야지 싶습니다.
살다 보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할 뿐이지 떠나는 일정은 정해진 순서가 없습니다. 언제 떠난다 해도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인생을 준비하며 정리해 가는 삶이 지혜로운 인생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방송에서 스님을 보면 다들 좋아하고 마냥 웃는답니다.
사람들이 미소를 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되었겠느냐 하셨습니다.
스스로가 기쁘고 즐거운 마음의 연민심과 자비심으로 보리심을 잃지 않고 공성空性의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한 법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 하셨습니다. 과욕부리거나 탐욕심을 세우거나 치우친 삶을 살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크게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고 많은 이들이 나를 보면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미소 짓는 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되었다는 것만 해도 나는 행복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법상에 올라가 근엄하고 엄숙하게 앉아만 있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달라이라마 스님은 법문하시다가 대중들을 향해 껄껄껄 웃으시기도 하십니다. 존자님께서 하신 가르침이 있습니다. “행복 하고 행복 하고 행복 하라.”
“다른 이를 돕는다고 하면 보통은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이를 도울 때 가장 덕을 보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최고의 행복을 얻는 것도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으로 가는 최선의 바른길은 다른 이를 돕는 것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고 머리로 생각하는 습관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가슴과 머리, 머리로 헤아리며 결정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것들을 봅니다. 이것이 다른 이들과 어울리면서 드러나는 아름다운 삶의 현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정념으로 망념을 제어하고 무념으로 정념까지도 여의게 하면 무심한 일념의 도가 나타나는 것이 마치 사람들이 맑은 거울을 들면 사물이 그대로 보이는 것처럼, 농부가 밭에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싹이 나는 것처럼, 등불을 켜면 저절로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이 무명업식無明業識을 가름하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세상의 불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