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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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날, 부처님오신날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오늘은 불기 2566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석가여래釋迦如來 부처님께서 이 땅에 출현하신 날, 날마다 초파일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불기 2566년은 부처님께서 80세로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떠나신 해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을 제도하시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변화되는데,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로 불리는 부처님의 연호를 2566년이라 하지만, 우리처럼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四大의 몸을 지니고 부모님을 의지해서 태어난 햇수로는 말하자면 2646년이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룸비니동산에서 구담瞿曇 고타마(Gautama) 싯다르타(Siddhrtha) 태자께서 태어나셨을 때, 정반왕은 40세요 어머니는 45세였습니다. 모후인 마야 부인은 늦은 나이에 잉태하셨으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만났을까요.
산후조리를 위해 외할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가는 중에 수백만 평 넘는 초원에서 태어나셨으니, 탄생지는 처음부터 룸비니동산이 아니었습니다. 정반왕은 외할머니의 이름을 따서 태자가 태어남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 지역을 룸비니동산이라 했다고 합니다.
태어나시자마자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으면서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삼계개고三界皆苦하니 아당안지我當安之하리라.”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상식적 견해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동물의 세계를 보면, 느끼는 것은 루우 나 얼룩말 같은 초식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일어나야 하고, 일어나서 어미 가까이 가야하고 젖꼭지를 물 수 있어야 하는, 그래서 생존법칙으로 보면 성인 중의 성인이신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 봅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우리 모두 존귀하도다.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가 모두 고통과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으니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 하시며 사방 칠보를 걸으면서 하셨던 선언이 탄생게誕生偈입니다.
사방 칠보는 28걸음입니다. 욕계의 세상, 색계의 세상, 무색계의 세상에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이 업력業力에 따라 윤회輪廻하는 세상이고 그 삼계三界에는 욕계 6천六天, 색계 18천十八天, 무색계 4천四天의 28천二十八天이 있는 것입니다.
절에서 새벽 예불에는 범종을 스물여덟 번 치는 것은 욕계 색계 무색계 28천에 범종 종소리가 들려서 그곳에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으라는 뜻입니다. 저녁 예불 시간에 치는 범종의 33번은 28천 가운데에 있는 도솔천궁兜率天宮까지 범종 소리가 전해지도록 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꽃 보라 흩날리는 룸비니 동산
한줄기 찬란한 빛이 우주를 덮고
거룩한 싯달 태자 탄생하실 때
천상천하유아독존 큰 소리로 온 누리에 퍼지네.
사뿐히 자욱마다 비치는 연잎
태양보다 밝은 등 높이 드옵시고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의 모든 고난 녹여 주신 님
이 세상에 오신 날 사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


40여 년 전, 단수여권으로 인도와 네팔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룸비니동산에서 그 장엄함과 그 편안함, 넉넉한 풍광을 보면서 새벽녘이면 이름 모를 새들이 수백 수천 마리가 룸비니 동산에서 소리 내어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곳에 며칠을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 감정을 그대로 적으면 한 권의 시집이 나올 법도 하였으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신적인 폐해가 크게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갈무리 하는 끝맺음을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이었다.’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끝맺음을 하고 나니 머리도 맑아지고 가슴도 뚫린 듯 시원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처럼 룸비니 동산의 대평원은 평화스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늘 가슴에 새김하고 있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 있습니다.


진묵겁전조성불塵墨劫前早成佛이었건만
위도중생현세간爲度衆生現世間하셨네.
외외덕상월륜만嵬嵬德相月輪滿하사
어삼계중작도사於三界中作導師이시니라.


진묵 겁 전 일찍이 깨달음을 이루었건만,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네. 32상相 80종호種好 위의를 구족하신 부처님은 허공에 떠 있는 보름달과 같으시고, 삼계三界 육도六道의 가지가지 종성을 지닌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중생들을 이끌어주시는, 열어 보여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開示悟入) 저 도솔천궁에서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룸비니동산에서 2646년 전 사월 초파일 사바에 출현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폭으로 그린 팔상도八相圖에 보면, 석가여래부처님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인욕보살忍辱菩薩로 현현하기도 하셨지만, 수없는 세월 속 억겁천생을 수행자의 길을 걸으며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 호명보살護明菩薩로 계시다 삼계三界 사생육도四生六道 칠취七聚의 사바세계娑婆世界 중생들이 힘들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시고 가비라국 룸비니동산에서 이 땅에 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4대문을 다니면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목격하시고 출가자의 길을 걷게 되고 6년 동안 고행자의 길을 걸으며 부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훗날 수행할 당시의 모습을 회상하신 내용을 보면 시적이기도 하고 희곡적이기도 합니다.


“머리를 만지면 파뿌리 뽑히듯 하고, 얼굴을 만지면 덜 익은 오이 쥐어뜯어서 그늘에 말려놓은 것 같고, 배를 만지면 등이 잡히고, 갈비뼈는 배 틀의 추 같고 엉덩이는 망가져 사막에 사는 낙타의 발바닥과 같았다.…”


그리고 45년 동안 전법도생 하시다가 구시나가라에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가비라국을 향해 누 우시며 입멸에 드시는 인간적인 모습도 우리는 느끼고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각자 인생의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여덟으로 나누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정우도 15세에 출가를 하여 통도사에 17살에 가게 되었고 스님이 된 후 25살 때, 통도사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 청년의 꿈을 안고 서울로 왔습니다. 어른스님들께 말씀 드리지 못하고 온 것이 죄송하여 편지를 올렸습니다.
그때 월하 노스님께서는 동국대학교 재단 이사장으로 계실 때인데, 제가 살고 있는 봉천동 조그마한 절에 두 번이나 다녀가셨습니다. 시자도 없이 오셔서 격려해 주시며 궁금하신 것 물어 보시고 가셨습니다.
통도사에 벽안노스님은 76세 때 정우에게 답서答書를 보내 주셨습니다.


“정우를 보내고 궁금하던 차 편지를 받아보고 반겨하였다.
공부를 위한 것이니 아무쪼록 공부를 착실히 하고 돌아와서 통도를 위하고 불교를 위해서 크게 활약하고 훌륭한 승려가 되어라.
우리 불교는 현재 이 사회의 바램 을 응수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반성해서 구습을 타파하여라.
76년 10월 12일 노승 벽안 답서.”


연민의 정情이 가득한 그늘이었고 울타리였으며 따뜻한 자양분이 되어서 지금의 정우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처님 생애처럼 우리는 얼마나 더 살까요. 아무도 그 시간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열심히 잘 살면 인과因果가 있고 윤회輪廻를 부정하지 않는 불자는 전생에 살아왔던 것보다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엘리자베스 퀘플러 로스의 『인생수업』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 로 워 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중국의 루쉰은 고향 중에서 「희망」이라는 글에,


“희망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만 2천6백여 년 전에 이 땅에 출현하셔서 수행자의 길이었겠습니까.
수없는 이들이, 그리고 부처님 이후, 지금까지 2천6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선지식과 구도자들이 있었겠습니까.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그 어린 소년이, 청년이 되어 엊그저께 인도에 갔다 온 것 같은데, 어언 40년이 지났습니다. 40년~50년 간격으로 50명만 세우면 부처님 계시던 곳에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음을 떠올려보면, 시간은 풍상세월에 유수인생만은 아닌 것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화엄경(華嚴經)』 「십행품(十行品)」에 이르셨습니다.


“이 중생들은 내 복 밭이고 나의 선지식이다. 내가 찾아 나서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몸소 찾아와서 나를 바른 선법善法에 들게 하는구나.
나는 이와 같이 배우고 닦아 한 중생의 마음도 어기지 않으리라.
내 보시를 받은 중생들은 모두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 평등한 지혜를 가지며 바른 법을 갖추어 널리 선행善行을 하다가 마침내 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열반에 들게 하여 지이다. 만약 한 중생이라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지 않으리라. 이것이 보살의 즐거운 행이니라.”


오늘 여러분들은 초청하지도 초대 하지도 않았는데도 부처님오신날이라고 모든 사찰에 인연 지으며 오셨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님오신날 부처님의 <전도 선언傳道宣言> 가르침을 전합니다.


“자 길을 떠나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니,
조리 있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법을 설하자.
갔던 길로 되돌아오지 말고, 두 사람이 함께 가지도 말자.
모든 이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자.
나도 우루벨라 병장촌 고행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 법을 설하리라.”


우리들 주변에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면서 만나고 싶었으며, 부처님오신날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고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성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