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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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열 가지 선지식善知識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군종교구장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15분의 짧은 시간이 마치 3년처럼 느껴진다는 뜻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 쓰는 말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시간이 더디게 가고, 어떤 이는 너무 빠르게 간다고 합니다.
이처럼 흘러가는 시간은 같은 시간인데, 왜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일까요?
그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일 것입니다.
금년에는 불자님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희미해져 버린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용맹정진하던 그 시간이 다시 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했던 불자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진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간절한 기도의 발원입니다.
중국의 위지앙 교수는  ‘사람이 잘 살아 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과 같다’ 고 했습니다.
백일기도에 동참한 불자들은 모두가 입시생의 부모님이고 가족들입니다. 그 불자들에게  입시생들은 바로 살아계신 부처님이십니다.
게이트는 《깨달음의 연금술》에서 절실히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논어論語》에,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무익하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고 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수행의 덕목德目으로 문사수聞思修의 가르침을 전하고있습니다.
《화엄경華嚴經》 이세간품에는 보살의 열 가지 선지식에 대해서,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선지식이 있으니 이른바 보리심에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며, 선근을 내게 하는 선지식이며, 모든 바라밀다를 행하게 하는 선지식이며, 모든 법을 해석하여 말하게 하는 선지식이며, 일체중생을 성숙게 하는 선지식이며, 결정한 변재를 얻게 하는 선지식이며, 모든 세간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선지식이며, 온갖 시간 동안에 수행하되 게으르지 않게 하는 선지식이며, 보현의 행에 평안히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며, 모든  부처님의 지혜로 들어간 데 들게 하는 선지식이니라.』
나를 원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내가 쓰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중광스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 힘든 정신적 장애를 겪으셨습니다. 하나는 우울증이고, 또 하나는 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낙심하는 것이고 조울증은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시절 구도자의 참 자유를 얻기 위해서 자신에게는 너무나 엄격하셨던 것이 원인이 되어, 만년에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스님은 언제나 연민심으로 자상하게 대해 주시고 칭찬만 해 주시다가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스님은 다른 점이 참 많았습니다.
그렇게 힘들어도 잃어버리지 않는 화두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장점을 찾아서 긍정적인 말로 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바로 티베트 사람들입니다.
척박한 땅에서 자유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런데도 정신건강이 노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 까요? 바로 ‘옴마니반메훔’ 진언 염불입니다. 티베트인들의 일과 중에는 언제나  ‘옴 마니 반 메 훔’이 있었습니다. 육자 대 명왕진언六字 大 明王眞言 입니다. 티베트인들은 생활이 힘들어 고단할지라도, 정신적으로는 고달픈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신심과 원력의 정진력이 있었습니다.
 
이젠 우리도 변해야 합니다. 자신을 돌아다보는 회광반조回光返照가 필요합니다.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불필요한 시간을 소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를 닦아서 흔들림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땐 천 년을 살 것처럼 일어나고 저녁에 누울 때는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이지’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열반경涅槃經》에,
“배고픈 사람이 배불리 먹고, 근심걱정 다 내려놓으면 이것이 열반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열반이니라.”
어느 날 따뜻한 방에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면, 그것도 열반입니다. 일상에서 즐거운 일들이 피부로 느껴질 때, 행복을 느낀다면, 물질의 풍요도 열반이라 이름하고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 열반이 아닙니다. 무여열반도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무여열반은 깨달음의 완성입니다. 그것은 죽음의 가치를 진정한 삶의 모습으로 전환 시키려는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월간 《붓다佛陀》는 군 불자들에게 염주(합장주) 보내기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12월호 《붓다》지에도 ARS 전화번호(060-700-0108)가 있습니다. 이 한 통화는, 군종교구에  5천원이 적립되는 불사입니다. 불자님들의 동참을 서원합니다.
도선사의 혜자 스님은 6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108산사를 순례하면서 불자들이 동참해 주신 장병들의 간식거리를 늘 모아서 전달해 주었는데, 매년 군종교구에 2억 원 넘는 금액을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보람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주어도 아까울 게  없습니다. 복 없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복이 있는 것이고, 복이 있다는 것은 지혜로운 삶을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절대로 복을 지을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조건 없이 살 수가 없습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웃과의 나눔은 검소함에서 시작됩니다.
그냥 그렇게 살다 떠나는 허깨비 같은 그림자를 밟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에서는,
『만 가지 분별 상을 일으키면 반야지혜의 눈을 멀게 한다.』고 했습니다.
내 명함을 드러내지 않는 생활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