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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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수의 취옹정기醉翁亭記

박 상 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若夫日出而林.開   雲歸而巖穴暝
약부일출이림비개.  운귀이암혈명
晦明變化者   山間之朝暮也
회명변화자   산간지조모야
野芳發而幽香  佳木秀而繁陰
야방발이유향  가목수이번음
風霜高潔     水落而石出者   山間之四時也
풍상고결     수락이석출자   산간지사시야
朝而往暮而歸   四時之景不同而樂亦無窮也
조이왕모이귀   사시지경부동이락역무궁야
해가 떠오르면 숲속의 안개비가 개이고 구름이 돌아오자 바위동굴이 어둑어둑해져서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면서 변화하는 것은 산간의 아침과 저녁의 풍경이요.
들판에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서 그윽한 향기가 넘치고, 무성한 나무에 잎이 피어나서 그늘이 짙어지며, 바람과 서리가 높고 깨끗해지고, 물이 줄어들자 돌이 수면 위로 나오는 것은 산간의 사계절의 풍경이다.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데 사계절의 풍경이 똑같지가 않아서 그것을 즐기는 즐거움도 무궁무진하다.
구양수의 명문장인 취옹정기醉翁亭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고문진보 후집>에 실려 있다. 구양수가 중국의 저주.州에 태수로 가 있을 때 지은 글이다.
저주를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모두가 산이다. 서남쪽에 있는 여러 봉우리 중에 숲과 골짜기가 더욱 아름다워서 멀리서 바라봄에 울창하면서 깊고 빼어난 것은 낭야산이다. 산길을 따라 6~7리를 걸어 들어가노라면 물소리가 점점 졸졸졸 들려오다가 양쪽 봉우리 사이에서 왈칵 쏟아져 나오는 것은 양천釀泉이다. 봉우리 쪽으로 빙빙 돌면서 나있는 길을 걸어 올라가면 날아가듯 한 정자가 나타나서 양천을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으니 바로 취옹정醉翁亭이다.
정자를 지은 사람은 산에 사는 스님인 지선스님이고 정자에 위옹정이라고 이름을 붙인 사람은 태수이다. 태수가 나그네들과 함께 이 정자에 소풍 와서 술을 마시는데 조금만 마셔도 곧바로 취하고 모인 사람 중에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 호를 붙여서 취옹醉翁이라고 했다. 취옹이라고 이름을 지은 뜻은 술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산수간山水間에 있다. 산수간의 즐거움을 마음으로 체득해서 술 취한 것에 빗대었을 뿐이다.
그 다음에 구양수는 이 취옹정의 풍경을 묘사하고 사계절의 풍경을 그린다. 사계절 내내 아침이면 정자에 갔다가 저녁이면 처소로 돌아오는데 시시각각 풍경이 달라진다. 꽃이 피어나고 신록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바람이 높아지고 깨끗하게 서리가 내린다. 겨울이 되면 시냇가에 흐르는 물이 쑥 줄어든다. 물이 줄어들면서 물속에 잠겨있던 돌들이 각각 제 모습을 드러낸다.
신록이 짙어가는 이 무렵이면 필자는 해마다 진한 감회에 잠긴다. 1992년이었던가, 한 달 내내 취옹정기와 밤낮 함께 하면서 소리 내어 천 번을 읽었다.
입적하신지 10년째 되시는 직지사 조실스님께서 천 번을 읽으라고 하셨다.
조금 열심히 읽었더니 문장전체가 외워졌다. 그만 게으른 생각이 일어나서 거의 안 읽었다. 글 읽는 소리가 한 이틀 동안 들리지 않자 조용히 부르셨다.
“왜 안 읽느냐?” “예 다 외웠습니다.” 잠시 침묵하시더니 조실스님께서 나직하게 말씀하셨다. “읽어라.” 아, 그 나직한 한 마디의 무게라니. 그 준엄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다시 용맹정진삼아 읽었다. 목 깊은 곳에서 피 냄새가 올라오고 난리가 아니었다. 아 내 혀가 이렇게 굳어 있다가 이렇게 풀려가는구나. 횟수를 거듭해서 읽어갈수록 내용도 입체적으로 감지되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떨어져있는 글자들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결합되었다. 앞문장과 뒷문장이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왕 소개하기 시작한 김에 그 뒤에 나오는 내용도 번역문으로 함께 읽어본다.
정자 주변의 풍경을 묘사한 구양수는 이제 정자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까지 그려낸다.
짐을 진 사람은 길에서 노래를 부르고 길 가던 사람은 나무 아래서 쉬며 앞에 사는 사람이 어서 오라고 부르고 뒤따라가는 사람이 알았다고 응답하면서 오가고 노인 분들이 어린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오고가면서 행렬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저주사람들이 노니는 것이다.
시냇가에서 고기를 잡으니 시냇물이 깊어서 고기가 살쪄있고 양천으로 술을 빚으니 시냇물이 시원해서 술에서 향기가 우러나온다. 산과 들에서 나오는 푸성귀와 안주가 뒤섞여서 진열되어있는 것은 태수가 베푼 잔치이다. 잔치의 즐거움은 현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관악기를 부는 것도 아니다. 활을 쏘는 사람은 표적을 맞추고 바둑 두는 사람은 이겼다고 소리 지르며 벌주잔들이 뒤흐트러진 채로 일어섰다 앉았다하면서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것은 여러 손님들이 즐거워하는 것이고 푸른빛이 살짝 감도는 얼굴에 백발로 그 사이에 무너지듯이 드러누워 있는 것은 태수가 취한 것이다.
예나 이제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산에 소풍을 가서 즐기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리 내어 읽는 횟수가 500번을 돌파하자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문장을 따라서 머릿속에서는 살아있는 입체 그림 동영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잔칫상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하기도 하고, 활쏘기 내기 하는 사람과 바둑 두는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시끌시끌한 와중에 세상 모르고 드러누워 있는 태수의 코고는 소리가 들릴 듯도 했다.
뒷부분의 내용은 석양이 찾아오면서 소풍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묘사해 놓고 있다.
이윽고 석양이 서산에 걸리자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지러이 흩어지는 것을 태수가 돌아가고자 함에 따라왔던 손님들이 집에 갈 채비를 하는 것이고 숲이 어둑어둑해지는데 새 울음소리가 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노닐던 사람들이 떠나가자 새와 짐승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글로만 보이던 내용들이 소리 내어 읽는 횟수가 천 번에 가까워지면서 석양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점점 눈에 선해지고 숲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써라운드 음향처럼 들려왔다.
구양수는 이제 취옹정기라는 글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새와 짐승들은 산림山林의 즐거움은 알지만 사람들의 즐거움은 알지 못하고, 사람들은 태수와 함께 노닐면서 즐거워하지만 태수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를 못한다. 취해서는 그 즐거움을 함께하고 깨어나서는 그 즐거웠던 일을 문장으로 써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여릉에서 온 구양수이다.
그 때 천 번을 읽고 나서 조실스님께 깊이 감사를 드렸다. 해를 더해갈수록 감사드리는 마음이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이 있다.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짧은 문장이라도 푹 읽어놓으면 어릴 때 우두주사를 맞은 자국이 크면서 점점 커지는 것처럼 생각 속에서 점점 커지고 깊어지고 넓어지느니라.”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요약본을 읽거나 책 전체에서 몇 줄 인용해놓고 그 책을 읽었다고 하는 사람도 아주 가끔 더러 있는 시대이다. 실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사람도 오래 만나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물론 몇 번 만나고 나면 시큰둥해지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다. 허나 글은 푹 읽을 일이다. 고전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신록이 짙어져만 간다. 고전의 한 구절이라도 내 사색의 뜰에서 저 신록보다 더 짙게 스며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