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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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맨발- 백 사람의 맨발 -

김 명 환
불광출판사 홍보팀장



2014년 부처님오신날을 일주일여 앞두고 신간 『사람의 맨발』 홍보일로 소설가 한승원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책으로만 만날 수 있는 작가를 가까운 자리에서 직접 만난다는 건, 편집자로, 영업자로, 제작자로 또는 관리자로 출판사에서 일하는 이가 누릴 수 있는 조그만 행복일 것이다.
혹여 어떤 행복이냐고 묻는다면, ‘앞서간 이’, ‘선각자’를 직접 만나 그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엿듣게 되는 행복 정도라고 할까. 책을 읽는 이유도 바로 그 작가의 이야기를 만나는 행복을 누리고자 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보름 정도가 지났다. 지금 내게 떠오르는
 『사람의 맨발』, 75세, 작가 한승원에 관한 이미지는 ‘젊다’라는 느낌과 그 기백이다.
부처님의 생애를 그린 소설 『사람의 맨발』에서 출가 전 젊은 시절의 싯다르타에 할애한 2/3 가량의 분량도 그렇고, “싯다르타의 맨발은 슬프면서도 장엄한 출가 정신의 표상이다. 우리들이 싯다르타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은 맨발, 혹은 출가 정신이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강단 있는 목소리도 여전히 그가 푸른 기상을 품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맨발』은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가 부처님의 생애, 그중에서도 출가 전, 젊은 날의 싯다르타에 초점을 맞춰 재해석한 소설이다.
작가는 줄곧 영혼의 스승으로 품어온 싯다르타의 출가 이유를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5년여의 집필 끝에 붓다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을 내놨다고 말했다. 때문에 작가의 시선은 싯다르타의 성불이 아닌 출가까지의 시간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다. 소설 속 싯다르타의 모습 또한 생생한 인간의 삶 속에서 고민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소설 속에서는 물론 대화 내내 붓다를 출가 전 이름 싯다르타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고대 인도에선 계급 차별이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됐습니다. 싯다르타의 출가는 이 같은 계급 차별,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하는 구조적인 악습을 타파하겠다는 혁신적인 생각, 신의 뜻에 대항하고자 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 젊은 싯다르타가 구도자보다는 개혁가에 가깝게 표현된 까닭일 것이다.
생각이 깊고 영민한 싯다르타는 마야 왕후의 죽음 등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과 주변 상황을 응시하며 그 같은 일들이 과연 신의 뜻인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나의 태어남으로 인해 어머니가 죽었는데, 그게 어찌하여 신의 뜻이란 말인가. 신의 의지는 왜 그렇게 짓궂은 것인가. 신들의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 신은 어떤 존재이고, 그 신의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데, 인간에게 그러한 잔인하고 처참한 운명을 마련한단 말인가. 신은 인간이 자기의 형상으로 만들어놓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계급차별 또한 신의 뜻이라고 가르치던 두 스승, 크샨티데바와 비슈바미트라는 싯다르타의 깊은 사유와 철학이 범상치 않음을 눈치 채고 슈도다나 왕과 함께 대책을 논의하기에 이른다.
아름다운 신부 야소다라를 맞이하게 하여 인간의 환혹을 느끼도록 했고, 밀농사와 잠업 장려 등 부왕 대신 국정을 돌보는 경험을 통해 정치 행위의 성공이라는 기쁨을 맛보게 함으로써 전륜성왕의 길로 인도한다.
수로 건설 등 관개정비를 잘한 덕분인지 해마다 풍년이 들었고 왕을 대신해 정사를 돌본 5,6년 동안 싯다르타가 벌인 사업의 성공으로 나라 살림은 풍족해진다.
그러나 부의 축적 한편으로 술과 놀이 등 방탕에 빠진 백성들이 생겨났고 재정대신이자 싯다르타의 장인인 다리나가 권력과 부를 이용해 불가촉천민들이 새롭게 창출한 부까지 거머쥐는 모습을 본 싯다르타는 개혁을 부르짖는다.
그것도 잠시 장인이자 재정대신인 다리나를 교체하기 위한 친위 혁명까지 고민한 싯다르타였으나 오히려 궁 안의 권력을 꿰차고 있던 교활하고 노회한 다리나의 계략에 의해 싯다르타 자신이 연금으로 속박당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가난한 수드라 계급과 불가촉천민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싯다르타. 생각하면 할수록 지배 구조와 계급 구조에 환멸을 느낄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싯다르타.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는 혼자만의 절대고독 속에서 이제 싯다르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모든 것을 버리고 부처가 되기 위해 맨발이 되어 걸어 다녀야 하는 출가만이 남아 있었다. 불의와 부정조차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 신의 뜻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 신을 따르는 전륜성왕이 아닌 인간의 뜻을 따르는 부처가 되는 길뿐이었다.
침대와 이불, 책과 의자 등 정들었던 사물, 갓 태어난 핏줄 라훌라와의 애틋한 작별의식을 마친 싯다르타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고통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마침내 출가하기에 이른다.
출가 후 깨달음에 이르러 제자들과 함께 교화에 나선 싯다르타가 가죽신 공장 옆을 지날 때였다. 공장 주인인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가 경배의 뜻으로 자신의 가죽신을 싯다르타에게 신기려 하였다.
“출가자에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가죽으로 만든 신이오. 이 땅을 맨발로 밟고 다닌다는 것은 중생들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과 괴로움과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오.”
싯다르타의 고요하고 미소띤 말에 자신들의 삶이 부끄러워진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도 동시에 가죽신을 벗어 던지고 맨발이 되어 그 뒤를 따랐다.
열반에 이르러 카샤파에게 내보인 맨발에 대해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출가 이후, 평생 대중들에게 올바른 삶의 길을 가르쳐주려고 온 세상의 길을 밟고 다닌 그 맨발은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난 출가자의 엄정하고 슬픈 표상이었다. …… 아, 이것은, 죽는 날까지 이 맨발의 뜻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당부이다.”
이처럼 소설 『사람의 맨발』은 싯다르타를 신격화된 절대적 존재가 아닌 모든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실존적 고뇌를 거듭한 한 인간으로 생동감 있게 형상화 한 까닭에 영화 한 편을 보듯, 대하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면서도 재미있게 읽힌다.
동남아 등 불교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와불臥佛의 그 맨발이 인상 깊었다며, 우리나라의 모든 스님과 불자들이 이 소설을 한번쯤 꼭 읽어주길 바란다며 허허 웃는 작가 한승원.
가라앉은 세월호의 참사는 그동안 너나없이 끝 모를 욕망의 대박을 꿈꾸며, 물신을 숭배해온 우리에게 커다란 아픔으로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는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싯다르타가 살던 시대의 계급사회 이상으로 엄혹한 계급사회이기에 한국 사회 전체가 자본주의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있는 이 때, 젊은 시절 싯다르타가 출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돌아보며 그 정신을 현재에 되새겨보고 싶었다며 작가로서 시대와의 호흡을 강조한 원로 작가의 든든한 목소리가 여전히 귀에 쟁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