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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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있어 행복한 삶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갑오년甲午年 끝자락에서 을미년乙未年으로 이어지는 동지冬至날 입니다.
비유를 들면, 하루 중에 자시子時에 속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선조先祖들은 첫 시간을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로 하였습니다.
1년은 24절기이며 하루는 24시간 입니다. 자子·축寅·인丑·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입니다. 그 첫 시간을 자시라 하였습니다.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에서 1년의 마지막 날과 새해를 맞이하는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기도 합니다. 하지夏至는 낮 시간이 가장 길고 밤 시간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지구는 자전 하면서 하루가 되고, 태양계를 공전하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1년이라 하고, 달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이 한 달입니다.
오늘은 음력 초하루. 어제 저녁부터 진눈깨비가 내리며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 빙판길인데, 불자님들의 밝은 모습을 보니, 그 무엇으로도 오늘의 동지법회와 초하루 기도를 장애障碍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아함경阿含經』에서 이르기를,
“흘러간 과거를 뒤 쫓지 말라. 오지 않은 미래를 갈구하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흘러가버린 것,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그러므로 현재의 일을 그대로 흔들리지 말고 보아야 한다.”하였습니다.
『능엄경楞嚴經』에도 이 세상의 현상을, “맑고 깨끗한 마음이 어둡고 침침한 허공과 만나서 부딪히고 요동치고 흔들리다가 바람기운 생기고, 마찰력에 불기운 생기고, 뜨거운 기운에 물 기운 생기고, 멀어진 것은 흙기운이 되었느니라.” 하였습니다.


우리네 시간은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데, 하루가 되고, 지구가 태양계를 한 바퀴 공전하는데 1년이라고 합니다. 키로미터㎞로 환산해보면 지구는 한 시간에 1,666㎞ 돌고 있으니, 1분에 27.75㎞의 자전입니다. 그 속도가 우리네 인생의 노정路程 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유아기로부터 소년기니, 청년기니, 장년기니, 노년기니, 생로병사니,… 인생을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구가 태양계를 공전하는 속도를 계산하여 1초에 1천㎞이상을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빠른 속도입니까.
그래도 일상적인 생활을 지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중력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이 가고 있음을 한탄할 일은 아닙니다. 생로병사나 따지고 있을 일도 아닙니다. 맑고 깨끗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가 있어 오늘 죽음이 있을 것을 알겠습니까.
잘 살면, 어제도 잘 살았을 것입니다. 잘못 살았다 하더라도 오늘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어제에 대한 참괴심懺愧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선정삼매禪定三昧를 닦고 반야지혜般若智慧를 드리우는 공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변별력辨別力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아집과 편견을 가지면 자기 분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럴 때에는 지혜조차 버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이익에 취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선정삼매와 반야지혜가 조화로워질 때, 내려놓는 공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금강경金剛經』에는 “분별시비分別是非는 아견我見 인견人見 중생견衆生見 수자견壽者見으로부터 시작되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되는 것이니, 그는 보살이 아니며, 아상我相은 만 가지 분별상分別相을 일으켜 반야般若의 눈을 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비유하자면, 여기 있는 한 잔의 컵은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목마름을 적셨으면 잔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도, 시작은 필요해서 잔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다보면 물컵에 붙들려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우리들의 세상사도 응용해서 들여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해 겨울, 구룡사에서 화엄경산림 백고좌법회를 회향하고 통도사에 내려갔다가 동지 전날 저녁 늦게 구룡사로 올라왔는데, 월하 노스님께서는 아침 일찍 전화를 하셨습니다. “정우가?” 네, 정우입니다. “잘 올라 갔 나?” 예, 잘 올라왔습니다. “들어가라고.” 어제 저녁에 올라왔는데 동짓날 새벽에 전화를 하셔서 안부를 물으시고 전화를 끊으시는 노스님의 자애로움에서 여러분들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우리도 부처님 같이요.


일산 여래사는 97년부터 4년 동안 국가적 부도위기의 어려운 시기에 여래사를 신축하여 준공검사를 마치고 종단에 등재하기 위하여 통도사에 내려갔을 때, 노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3~5~10초의 시간은 참으로 긴 정적靜寂이였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 더 하셨습니다.  “정우는 절(사찰)만 짓다 죽을 건가.”
I.M.F등으로, 사회가 전반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이루어진 불사를 마무리 짓는 동안에 스님께서는 노심초사勞心焦思 얼마나 걱정이 되셨을까요. 노스님의 그 꾸짖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칭찬이셨다고 생각합니다.
불사하는 자체를 꾸짖은 게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일을 해낸 것에 대한 안도감安堵感 이셨다고 생각 됩니다. 그러니 불사는 욕심이 아니라 원력을 가지고 너무 조급하거나 서둘러서도 안 되는 일이였습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얽매임이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모든 공포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도 ‘얻을 것이 없으므로 두려움도 없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근심이 없고 걱정이 없고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목말라하는 것들은 물질로 드러나고 있는 것들이 다반사입니다.
그것은 생멸이 있고 증감이 있고 대소가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루어져도 반드시 소멸되어 버리는 것들입니다.
우리들의 만남도 떠남을 약속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다시 만날 것도 믿는 것입니다.
구룡사에서 함께한 지도 3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 세월의 중심에 있던 불자들은 70대 80대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노환老患으로 몸져 누워계시는 불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의 현주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년의 끝자락에서 서로가 서로를 살피면서 과욕 부리지 말고 살자는 것입니다.


대만의 성운대사는 “내 눈은 99%가 보이지 않는다. 내 귀는 80% 이상 청각을 잃어버렸다. 심장도, 관절 수술도, 이젠 휠체어의 도움으로 지내고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병고로써 친한 벗을 삼는 것이 남은 시간을 잘 갈무리 칠 수 있지 않겠느냐.” 하시었습니다.
저의 출가도 50여 년, 얼마나 많은 시주의 은혜를 입었던가요. 그 불자들은 떠나기 전,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요.
어느 불자는 병원에 입원하여 있었으며 어느 불자는 요양원에 있기도 하고 집에서 바깥출입을 조심해야 하는 불자도 있었습니다.
동지 날에 한 번 더 권합니다. 젊은 시절만 추억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불편하시면 지팡이라도 짚고 나오세요. 지팡이를 짚는 것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은 거 아닌가요. 집에 누워 있지 말고 휠체어라도 타고 싱싱한 공기를 맡아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유아기부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이어지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재물 없이도 큰 공덕을 얻는 일곱 가지의 따뜻함을 이르러 무재칠시無財七施라 하였습니다.


첫째는 안시顔施, 다정한 눈매로 상대를 바라보라.
둘째는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부드러운 미소로 대하라.
셋째는 언사시言辭施, 인정이 담긴 말로 대하라.
넷째는 신시身施, 몸으로 인정을 보여라.
다섯째는 심시心施, 진심으로 대하라.
여섯째는 상좌시床座施, 자리를 양보하라.
일곱째는 방사시房舍施, 휴식의 장소를 제공하고 숙식과 음식을 제공하라.
인정이 담긴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살피면서 남은 인생이 모두 평안하기를 을미년乙未年 새해에도 부처님 전에 발원합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