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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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信은 도道의 근본根本이요 공덕功德의 어머니(母)이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금년에도 매화꽃은 피고, 진달래꽃 피더니 벚꽃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삼라만상의 현상들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였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말과 행동과 습관으로 이어져 성격이 되고 운명이 되어 일어나는 인생살이는 경계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자아도취自我陶醉, 자아상실自我喪失, 자아망각自我忘却이 그것입니다.
이것을 사회적 언어言語로 비춰보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우롱하며 기만하다 사라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속고 속이면서도 그 사실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에는 너무 많습니다. 이런 곳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부처님께서는 45년 동안 설시說示하신 것입니다. 나누면 성문승聲聞乘이요, 보살승菩薩乘이며, 연각승緣覺乘입니다. 근본根本은 일승원교一乘圓敎인데, 나누면 삼승이요, 모으면 일승입니다. 원융무애圓融無.한 본성本性을 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원하는 바에 대한 확신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념信念입니다.
얼마 전, 소임자 스님들과 합창단원 50여 명과 함께 각국各國에서 1만여 명의 불자들이 모인 대만 불광산사佛光山寺의 합창제에 다녀왔습니다.
다음날 신문에는 성운대사님의 법문이 실려 있었습니다. ‘인생人生은 노병사생老病死生’이라는 법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는다고 규정짓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늙고 병들고 죽으면 태어난다는 믿음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대만의 불자들은 스님들처럼, 인생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을 가지도록 전해주시는 메시지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비구니스님의 지장도량인 대만 원조사와 제원사 불자들이 신심과 원력으로 이룬 불사에서 불가사의한 지혜광명의 빛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후쿠카에도 정토진종淨土眞宗의 큰 사찰인 정행사淨行寺가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돌아가신 영가들을 위한 정토淨土를 발원發願하는 기도에 동참하여 3일간 장엄한 염불의식으로 스님들과 불자들은 하루에 세 번씩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을 독송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행사 불자들의 신심과 간절한 믿음에 대한 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살의 수행법인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육바라밀을 닦아야 합니다.
원효 대사는 『금강삼매론金剛三昧論』에서 “금강반야金剛般若는 지혜智慧요, 금강삼매金剛三昧는 선정禪定이라” 하셨습니다. 삼매와 선정, 반야와 지혜는 씨앗과 열매와 같습니다. 씨앗과 열매는 하나일까요, 둘일까요?
봄에 심는 감자 씨를 살펴보면 일반 감자와 다르게 쓴맛의 독성이 있습니다.
종자 번식을 위한 감자는 촉수를 틔울 때에는 번식을 위한 독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촉수를 도려내고 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특산물같이 먹기도 합니다. 촉수를 틔우는 감자는 밭에 심어야 합니다. 씨앗과 열매는 하나일 수도 없지만 결코 둘일 수도 없는 이치입니다.
같은 종성種姓의 씨앗은 인간처럼, 열매를 맺고 열매를 따서 종자로 삼으면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속으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자기최면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념正念인 바른 생각으로 망념妄念을 다스리고, 바른 생각은 무념無念의 한결같은 마음으로 등불을 삼아 “생멸生滅이 없고, 증감增減이 없고, 미추美醜가 없고, 대소大小 장단長短이 없고, 동서남북東西南北이 없고, 전후좌우前後左右가 없는 본성本性은 모양 없는 모양이 실다운 모양이요, 참다운 모양”입니다.
인연으로 맺어진 것은 소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면 가고, 즐거우면 슬픈 일도 생길 것입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습니다.
이것은 현상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본성의 자리는 있는 그대로가 무슨 생멸이 있으며 증감이 있고 미추가 어디 있으며 높낮이가 있겠습니까.
올바른 생각의 마음 없는 마음을 수행이라 하며 정진이라 하는 것입니다.
마음 없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부처님께서는 “분별하지 아니하고 시비하지 아니하는 한결같은 마음을 마음 없는 마음”이라 하셨습니다.
불교는, 세속적으로 무학자無學者를 배운 게 없는 사람이라 이름하고 불교적 무학자는 배울게 없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세속적 무념無念은 생각 없는 사람입니다. 불교적 무념無念은 한결같은 마음이고 무심無心한 생각입니다.
무심한 마음에 본성本性은 마치 밝은 거울을 들면, 보려하지 않아도 저절로 얼굴이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세면장에서 따뜻한 물을 틀면 수증기가 거울에 비쳐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울을 닦거나 물을 끼얹으면 본래 있던 그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그 자리가 맑고 깨끗한 본성의 자리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으면 움 틔우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촉수가 트이는 것같이, 등불을 켜면 어둠은 저절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내가 떠나지 않아도 상대가 떠나고 맙니다.
지금 이 순간의 시간들을 소중하게 쓸 수 있길 바랍니다.
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하세요. 그러나 남에게 절대 상처 주는 말은 안 됩니다. 가슴에 못 박는 일은 안 됩니다. 장난삼아 던진 돌에 작은 생명들의 생사가 좌우 됩니다.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고 친절한 어울림이 우리들에게는 절실한 시절입니다. 이해理解가 필요한 세상에 독선적인 생각으로 깨어지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법대로 살면 몸이 고요해집니다.
이것을 계율戒律이라고 합니다. 선정삼매를 닦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집니다. 지혜를 닦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이란 무엇입니까. 석주 노스님은 ‘하심下心하고 인욕忍辱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심은 나를 낮추는 것이고 인욕은 참는 것인데, 수행이라 합니다.
지혜로 살피는 것을 변별력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이는 변별력이 떨어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조건이 없습니다. 이것은 보살행菩薩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조건 살아야 되는 줄 압니다. 관심을 가져보면 세상에 가르침 아닌 것은 없습니다. 지혜는 의심을 깨트리기 위한 것입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노출된 것 중에 제일 힘든 것이 바로 의심하는 병病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대개는 의심하지 아니함이 의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계정혜를 닦는 것은 불성을 보기 위함이요, 도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깨달음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의 법음法音을 전해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안심입명安心立命의 편안함을 얻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지만, 마음의 출발점에는 생각이 있습니다.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성운대사님은 99%의 시력을 잃었고 80%이상의 청력을 잃었으며 무릎관절은 세 번, 심장은 두 번의 수술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당뇨로 50년 넘게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스님께서 병고病苦로써 친한 벗을 삼으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던 지나간 30년의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6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은 그렇게 실감나지 않습니다. 이삼십년 지나가는 시간은 느끼는데,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살이를 엄벙덤벙 해서는 안 됩니다. 내 마음이 깨끗하면 곧 정토
淨土요, 시비하고 분별하는 그 곳이 예토穢土입니다.
오탁악세五濁惡世는 우리를 끊임없이 시비하게 하고 분별하게 합니다.
생각을 바르게 하고 실천하면 우리가 머무르는 이곳이 정토淨土입니다.
불자들은 그 보살의 길을 가기 위해서 끊임없는 탁마가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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