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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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티베트 순례 길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오늘은 백중 우란분재일(음력 7월 15일)을 앞두고 백중 49일 기도를 입재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일주일간 기도했던 기억도 있는데, 요즘은 49일, 길게는 지장보살님 전에 백일기도를 하는 사찰들도 있습니다.


『아미타경阿彌陀經』은 극락세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하셨습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장로 사리불에게 이르시기를,
여기에서 서쪽으로 십만 억 불국토를 지나가면 극락이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에 계신 부처님 명호는 아미타불이시며 지금도 설법을 하고 계시느니라.
사리불아, 저 세계를 왜 극락이라 하느냐? 그 세계 중생들은 아무런 고통도 없고 즐거움만 있으므로 극락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극락세계에는 난간이 일곱 겹이며 보배 그물이 일곱 겹이며 줄지어 선 나무가 일곱 겹인데 모두 네 가지 보배로 둘러 장식하였으므로 극락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또한 극락에는 칠보로 된 연못이 있어 팔공덕수가 가득 찼으며 연못 바닥에는 순금모래가 깔리고 그 둘레에는 길이 있는데, 금과 은과 유리와 파려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누각이 있는데, 또한 금, 은, 유리, 파려, 자거, 적주, 마노 등으로 질서 있게 꾸며졌으며 연못 가운데는 수레바퀴만한 연꽃이 피어 있는데 푸른 빛깔에는 푸른 광채가 나고, 누른 빛깔에는 누른 광채가 나며, 붉은 빛깔에는 붉은 광채가 나고, 흰 빛깔에는 흰 광채가 나는데 참으로 미묘하고 향기롭고 깨끗하다.
사리불아, 극락세계는 이러한 공덕장엄으로 이루어졌느니라.”
극락세계는 굉장히 장엄하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사바세계는 ‘인생 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 난봉佛法難逢’입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부처님 법을 만나서 살고 있습니다.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이면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이라는 말을 수없이 상기하고 새기면서 마음에 간직 해왔는데, 처처가 안락국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염념보리심인 것을 이번 동 티베트 순례 길에서 가슴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동 티베트는 쓰촨성을 출발하여 청해성과 감수성을 경유하는 순례길입니다. 수미산 순례의 티베트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쓰촨성은 산에 아름드리나무들도 많았습니다. 처처가 협곡이요, 깊은 계곡물이 흐르는데 상상할 수 없는 풍광의 물줄기들이 모이고 흩어지고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자연의 경관도 아름다웠지만, 훨씬 더 풍요롭고 평화로운 것이 보였습니다.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이었습니다. 고려불교가 그랬을까요, 신라불교와 백제불교가 그랬을까요? 집집마다 부처님을 안 모신 집이 없고, 마을마다 사찰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마을마다 대탑과 오색 천에 새겨진 경전들은 깃발이 되어 바람에 훨훨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면, 우리네 가족들은 누군가 여행을 가게 되면 부모님 드리려고 용돈을 아껴 관광지에서 불상을 모셔왔다면 어찌 하던가요. 집에 며칠 두었다가 슬그머니 싸가지고 절에 와서 도량 여기저기에 놓고 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면 집에 모시기 죄송스러워 그랬다고 합니다.
동 티베트 순례 길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다 손에 염주를 쥐고 있습니다.
거지도 염주 들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으면 ‘옴마니반메훔~~’ 염불입니다. 그러다가 사람이 있으면 구걸을 합니다. 구걸하는 장애인도 만났습니다. 시장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입에서는 ‘옴마니반메훔~~’ 염불입니다.
우리들도 손에서 항상 염주를 놓지 말고 합장주는 손목에 걸고 다니며 염불기도 하는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웃 종교에서 가락지를 만들어서 손으로 돌리기도 하고 목걸이도 하고 다니는 것은 지혜로운 신앙입니다. 우리 불자들도 모범이 되어 티베트불교의 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부처님 생전에 한 스님이 입술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병에 걸렸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파킨슨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염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염불하게 하였습니다. 그게 기도의 시작입니다. 그것을 다른 종교에 빼앗기듯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법당에서만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10여 일의 순례길에서 청해성에 있는 오명불학원을 참배하였습니다. 35년 전, 티베트의 한 스님이 허허벌판 산비탈에 도량을 이루었는데, 공식적으로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그곳에 상주하는 스님이 귀띔을 해 주었습니다. 최소한 이 곳에는 5만여 명의 스님들이 상주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35년 전 작은 움막집 토굴에서 시작된 오명불학원은 현재 5만여 명의 스님들이 상주대중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 사찰은 도시계획으로 지어진 것처럼, 통나무집과 수만 명이 예불할 수 있는 법당과 설법전이 있었습니다. 한쪽은 비구도량, 한쪽은 비구니도량이라 하였습니다. 경계선은 없었지만 서로 존중하는 수행 도량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명불학원은 사찰 대웅전 법당을 중심으로 400여 명의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사찰을 운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일과 중에는 대만 불광산사처럼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이 함께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참으로 장엄하고 가슴 벅차게 신심이 묻어나는 도량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의 야칭스 사원은 5천 미터가 넘는 산을 다시 넘어 비포장 길을 몇 시간을 더 가야 했습니다.  6.25피난시절의 판자촌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 사원은 20년 전, 한 스님이 주석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4만여 명의 대중들이 모여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순례길의 야칭스 사원과 스님들은 다 행복해 보였고 그 모습은 도리어 보리심이 극락정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법전은 4만여 명이 법회보고 기도하고 정진하는 법당이 있었지만, 옆에는 위생상태가 열악한 작은 화장실 하나가 있었습니다.
척박한 땅 티베트 야칭스 사원에서 원願을 세웁니다.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이 같은 화장실 쓸 수 없으니까, 4만여 명의 대중들이 법회하고 기도하고 경전 공부하는 법당 가까이에 수세식 화장실을 두 곳에다 지어 드릴 수 있다면, 한시름 덜게 될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불자들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야칭스 사원과 오명불학원은 3,900m에서 4,000m 고지에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일상생활도 하기 힘든 곳입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숨이 차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그렇게 많은 스님들이 기도하고, 참선하고, 염불하고, 청법하며, 그리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공양을 해결하고 보름에 한 번씩 공급받는 우유는 사중寺中에서 제공하여 준다고 하였습니다. 산중 고산지대에서 육류섭취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채소와 우유는 필수적 영양소입니다. 그래서 더욱 채소와 우유를 공급해주는 사중 스님들의 자상함이 장하고 거룩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옷깃을 여미며 발원을 합니다.
성도의 첫 밤은 해발 800m, 다음날은 2,000m, 그 다음날은 3,000m, 3,500m, 4,000m, 4,500m, 5,000m 하루하루는 이런 순례길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800m에서 출발해서 5,000m까지 그렇게 산을 넘으면서 소중한 인연들과 만남의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신심信心이 절로 일어나는 만남이었습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습니다. 우리들은 부처님 법을 만나는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불자의 인연을 맺었을 때, 쑥스러워 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손에는 염주를 들고 합장주는 손목에 걸고 염불하고 기도하는 생활불교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젊음과 건강과 목숨이 소중하지만 언제까지 지켜질 것인가, 한없이 지켜지는 것인가, 그렇다고 중간에 훼손시켜서도 안 될 것이요, 오늘을 열심히 살 수 있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인생은 정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지극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진정한 불자입니다.
이번 순례길에 동행한 스님들과 야칭스 사원에서도 예불을 모시고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염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무 참죄업장 보승장불 ……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 반메훔…… 원이 발원이 귀명례 삼보, 나무 상주 시방 불, 나무상주 시방 법, 나무 상주 시방 승’ 함께 예불에 동참했던 60여 명의 스님 대다수는 하염없는 눈물과 환희법열의 기쁨을 야칭스 사원에서 배웠습니다.
티베트는 집집마다 출가 안 한 집이 없었습니다. 중국은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씩만 낳기를 권하고 있지만, 소수민족인 티베트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낳아도 상관없다 하였습니다. 보통 가정에서는 큰아들과 큰딸만 결혼하게 하고 나머지는 5명이고 10명이고 모두 출가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야칭스로 가는 길에서 한 젊은 스님이 목초지 산비탈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차車에 태우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왔습니다. 그 스님의 가족은 6남매인데 유목민인 부모님이 목초지에 계셔서 잠시 왔다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 스님의 형제들은 4명이 출가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스님 손에 쥐어드린 작은 보시금이었지만, 보시금을 나누는 형제들의 모습이 선해 보이는 듯 하였습니다. 그 스님은 나보고 이곳이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본인은 절에 살아서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지대가 높아서 나무 한 그루도 없는 곳이었지만, 야크들이 풀을 뜯고 있는 푸른 초원에 어린 스님은 마냥 행복해 하였습니다.
극락정토는 보리심이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인간을 가장 이상적인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흘러간 과거에 메여있지 말아야 합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목말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을 잘 살면 어제도 잘 산 것이고 오늘을 잘 살면 내일도 잘 살 것입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미루지 말고, 누가 있어, 내일 그날이 올 것을 알겠습니까. 오늘을 잘 살게 되면 여한 없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뵙고 북인도 히말라야 순례길에서 설산사雪山寺와 라닥크의 심장재단 가는 길에 혜초를 만나고 현장을 만나다 나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불자 여러분 다녀오겠습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