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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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인연 소중히 여기며, 무거운 짐 내려놓고 떠나려 합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그 무덥던 여름도 입추가 지나니, 무더운 날씨 속에도 시원한 바람이 배어나오는 것을 느낍니다. 바람이 불면 무더운 열풍 속에서도 그 틈새로 선선한 바람이 묻어 있습니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의 기후는 북서풍과 남동풍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북서풍과 남동풍이 불어오는 계절에는 서로 부딪치면서 구름이 형성되고 무게 중심이 떨어지면 장맛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자연현상이 흐트러지면서 국지성 호우를 만나고 있습니다. 지구의 온난화는 심각한 자연생태계의 파괴가 그 원인이라고 합니다.


칠월칠석과 우란분재일이 지났습니다. 칠월칠석을 지내는 것은 샤머니즘이라 말하는 이도 있지만, 우리 조상들이 지닌 따뜻한 정신과 계합된 명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명절로는 단오와 칠석, 동지와 입춘이 있습니다. 그 24절기 민속명절을 불교에서는 받아들인 것입니다.
옛날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칠석에는 불자들이 쌀과 보리를 신주단지에 조석으로 조금씩 모아 두었다가 절에 가져왔습니다. 그 공양미는 가을철까지 스님들의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일들을 쉽게 해결하고자 합니다. 바쁜 현대사회의 편리함도 있겠지만, 정서적으로는 아쉽고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몇 년 전, 불자들과 해남 미황사 순례 길에서 농어촌에 사는 불자들이 스님의 원력에 동참하여 자신들이 거둔 농산물들을 법당에 올리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불자는 단감을, 어떤 불자는 사과와 배를, 바닷가에 사는 이들은 미역과 김을 가져와서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농촌의 다양한 곡물들을 산더미처럼 공양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궁금해졌습니다. 저런 공양물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그런데 주지스님이 먼저 대중들에게 매년 이렇게 모이는 공양물은 어렵고 힘든 이웃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장엄하고 정성스러웠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필요한 것들을 나누며 살아가는 지혜를 보았습니다. 절에서 이루어지는 만발공양을 우리들의 전통으로 다른 사찰에서도 본받았으면 합니다.
30년을 불자들과 함께 해 오면서 성도재일을 부처님의 성도지 부다가야에서 삼일씩 함께 해왔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절 성도재일은 사라지다시피 하였습니다. 이 또한 안타까운 일입니다.
씨앗이 없으면 싹을 틔울 수 없고, 뿌리 내리지 않으면 꽃을 피울 수 없고, 꽃 피우지 못하면 열매는 맺지 못합니다. 한 톨의 건강한 씨앗도 비옥한 토양의 땅과 물, 햇빛과 거름과 농부들의 수고로움이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인간학이다. 인간학을 설시說示 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성四姓계급을 타파하고 만민의 평등함을 실천하셨던 분이십니다.


『금강경金剛經』을 설법하신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 부처님이 탄생하신 가비라국은 코살라에 합병되고 말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실 때에도 가비라국을 향해 누우셨습니다.
부처님과 동년배인 코살라국왕은 훗날 부처님께 여쭙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원이 있고 그것을 이루고자 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 소원을 이루고 또 후세에도 그 소원이 성취될 수 있겠습니까.’
그 때 부처님께서, “그것은 오직 한 가지 게으르지 않는 것이요, 누구나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을 하면 그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소원성취는 게으르지 않는 것이 으뜸입니다.
오늘은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입니다. 그 사이 사이로 가을 기운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모든 소원을 이루고자 하면 게으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처님의 비유설법에, 야명조소夜鳴鳥巢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히말라야 설산雪山에 살고 있었는데, 그 새는 평생 동안 집이 없습니다. 그래서 밤만 되면 춥고 무섭고 배고프니까 밤새도록 벌벌 떨면서 다짐합니다.
‘이 밤이 새고 나면 반드시 집을 지어서, 내일 밤부터는 무서운 일들은 겪지 않으리라.’
그러나 아침 동녘에 햇살이 비치면 얼었던 몸이 녹으며, 어제 밤, 생각들은 다 잊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이리 저리 날아다니면서 춤추고 노래하며 놀다가 춥고 무서운 밤을 다시 만나며 그렇게 살다가 죽어가는 새입니다.
어찌 그 새뿐 이겠습니까.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그런 하루하루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 새만 그 새가 아님을 깊이 인식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힘과 용기와 지혜는 수행정진의 덕목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들여다보면 왜 이렇게 헐떡거릴까, 왜 이렇게 목말라할까를 생각하게도 될 것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요? 기운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기운이 넘치는 사람은 먹지 않아도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냥 앉아 있으면 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명 끼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무속인은 굿하다 졸지 않습니다. 배우들은 며칠씩 야간 촬영을 해도 끄떡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명이 있어 그렇습니다. 배우나 무속인이나 무용가나 과학자가 신명이 없으면 며칠씩 연구하고 며칠씩 잠 안 자고 며칠씩 몰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방에서 선정삼매에 들면 시간이 정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고 있는데 선정삼매로 시간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젊은 시절, 철야정진기도를 해 보면 긴 향 꼽아놓고 한 5분이나 지났을까 싶으면 향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목탁 잠깐 내려놓고 향을 다시 피우고 기도를 하면 또 이내 향이 없습니다. 누가 이 밤중에 일부러 기도하는 법당에 들어와서 꼽아놓은 향을 빼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염불삼매 이었습니다. 몇 번 향을 사루다 보면, 새벽 도량석 목탁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지난날, 구룡사에서 100명의 스님을 모시고 백고좌 법회를 5년간 했습니다. 오전 9시부터 기도하고 청법聽法 하고 백팔대참을 세 번 하고 나면 오후 1시입니다. 급히 물 한 바가지 끼얹고 흠뻑 젖은 옷을 벗어놓고 1시부터 4시까지 불교대학 강의, 저녁 7시부터 두 시간 강의하던 시간은, 지금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역시 삼매에 들었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한 송이의 꽃을 깊이 들여다 볼 때, 우리는 그것이 꽃이 아닌 다른 요소들인 햇빛, 물, 흙, 거름, 공기, 그리고 시간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깊이 들여다보면, 그 꽃이 거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만일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그 꽃이 썩어 갈 때 우리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유기농 거름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 역시 꽃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꽃과 거름이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꽃과 거름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정원사는 거름을 결코 하찮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원사는 꽃만 존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면 헤어질 것을 대비해야 합니다. 헤어지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해야 합니다. 원하는 바에 대한 확신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념이 신심으로부터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보리심은 씨앗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씨앗인가 하는 것은 각자의 자기 분상에서 그 씨앗의 종자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씨앗이 씨앗으로만 남아 있는 한, 씨앗은 씨앗일 뿐입니다. 발현시켜야 합니다.
신심이라는, 원력이라는, 정진이라는, 회향이라는 진지한 삶 속에서 배어있는 보리심이 씨앗이 되었을 때, 그것이 줄기를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는 다시 종자가 되면 씨앗이 되는 이치를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훌륭한 정원사는 유기농 거름과 꽃과 과일을 둘로 보지 않듯이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수없는 일들을 자양분으로 삼고 취사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로움을 닦아서, 잘 사는 이는 모범으로 삼고 못 사는 이는 경계로 삼으면 두 사람 다 나에게 큰 스승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영가천도의식이 있는 날이었지만, 여기 계신 영가들이 아직도 구천에 떠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불자 여러분들은 훌륭한 가족입니다. 지금 우리들 가까이에서 함께 살아가거나 아니면 먼 곳에 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소중한 삶의 현장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우리들의 깊은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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