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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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통도사 주지
  구룡사 회주






인생(人生)은 꿈이 있어야 하고 인생은 희망(希望)이 있어야 하고 장래(將來)가 보장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서 사회활동을 하는 시기를 1기 인생이라 하고 은퇴한 이후의 삶을 2기 인생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삶은 3기의 인생으로 나누어서 설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옛 어른들이, 일생을「어린 시절은 부모(父母)에 의지해서, 장년(壯年)이 되어서는 배우자에 의지해서, 말년(末年)에는 자식에 의지해서 산다.」고 하셨듯이, 1기 인생은 태어나서부터 20~30년의 기간이요, 2기 인생은 정년(停年) 연령과도 비슷하게 사회에서 활동하는 20~30년 동안이며, 3기 인생은 사회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노년(老年)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은퇴(隱退)의 시기가 따로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그 기간을 일률적으로 적용(適用)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감안(勘案)한다 하더라도 기간의 길고 짧음은 있을지언정 인생의 1, 2, 3기는 누구에게나 다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3단계로 나누어진 인생에서 어느 단계가 가장 중요하겠습니까? 나는 서슴없이 3기의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즉 1기의 준비기간을 거쳐 사회와 어울림을 가졌던 2기의 인생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인생의 마무리를 해야 하는 3기의 인생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1기와 2기의 인생도 평가(評價)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기의 인생은 결코 사회로부터 내몰린 시기가 아닙니다. 자기 근본(根本)을 망각(忘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도리를 다 하려고 노력(努力)했던 그 모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춰진 모습 속에는 그 사람이 성공(成功)한 인생을 살아왔는지, 실패(失敗)한 인생을 살아 왔는지를 평가하는 시기가 바로 3기의 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1기의 인생을 살고 있든, 2기의 인생을 살고 있든, 어느 한 순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을 통해서 불교(佛敎)를 한 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불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 삶의 터전과 그 터전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생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몇 해 전 인도를 여행하던 중, 달라이라마 스님을 친견(親見)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달라이라마께 불교가 무엇이냐고 물었답니다. 이에 달라이라마께서는‘불교는 과학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순간 도올은 감격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고 합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만약 유명한 과학자가 달라이라마께 불교가 무엇인지를 물었다면 무엇이라 대답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달라이라마는 아마 불교를 철학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학은 객관적(客觀的)인 학문(學問)입니다. 철학은 주관적(主觀的)인 학문입니다. 반쪽의 객관과 반쪽의 주관을 합해야만 불교라는 종교를 온전(穩全)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앞에서 나는 불교는 인생이라고 했고, 불교는 우리 삶의 터전이라고 했고, 불교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거기에 하나 더해서 불교는 인간학(人間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신 분, 편안하신 분, 넉넉하신 분, 너그러우신 분, 포근하신 분, 온화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또 이분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내 어버이, 내 형제, 내 선생님, 나는 불교는 인생이라고 했고, 불교는 우리 삶의 터전이라고 했고, 불교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거기에 하나 더해서 불교는 인간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신 분, 편안하신 분, 넉넉하신 분, 너그러우신 분, 포근하신 분, 온화하신 분입니다.
내 선배, 내 후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관심(關心)과 배려(配慮)로 친절(親切)하게 서로 어울림을 가질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불교이기 때문에 불교는 인간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우리 불자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우리도 부처님같이 세상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넉넉하고, 편안하고, 너그럽고, 포근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건강한 몸과 행복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1기, 2기, 3기의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욕심 부리지 말고, 화 내지 말고, 짜증내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그 욕심만큼 화를 잘 내고 짜증을 잘 부리며 신경질을 잘 냅니다. 각자 자신의 주위를 한 번 살펴보십시오.
화를 잘 내고 짜증을 잘 내고 신경질을 잘 부리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이 욕심이 없다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은 어리석거나 무지한 사람입니다. 어리석고 무지한 만큼 화를 잘 낼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세간법(世間法)과 출세간법(出世間法)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마음 없는 마음이 참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마음 없는 마음이 어떻게 참마음일 수 있겠습니까? 분별하지 않고, 시비하지 않으며, 한결같은 마음이 마음 없는 마음이요 참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스님이「까마귀 검다 말고 해오라기 희다 말라. 검 은들 모자라며 희다고 남을 소냐.」라고 설파(說破)했던 것도 같은 표현이라 할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접하고 보면 결국 이(理)라고 하는 본질과 사(事)라고 하는 현상이 원융무애(圓融無碍)하며 결코 둘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건강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건강 역시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건강은 운동을 통해서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건강은 어떻게 얻어야 하겠습니까? 앞서 설명했던 짜증, 신경질, 욕심 대신 사랑의 마음, 자비(慈悲)의 마음을 내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道理)와 근본(根本)을 잊어 버리지 않는 진지한 자기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1기, 2기, 3기의 인생에 관계없이 매 순간을 노력해야합니다.

거북이와 토끼 경주에 대한 우화가 그냥 웃음거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대단히 심오한 불교사상(佛敎思想)이 들어있습니다. 디지털(Digital) 방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세대에게 토끼와 거북이 중 누가 이겼을까를 물어보면 당연히 토끼가 이겼다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토끼가 거북이
보다 훨씬 빠른데 거북이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날로그(Analog)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토끼는 생각이 갈팡질팡, 횡설수설, 우왕좌왕하는 사람에 대한 비유를 들기 위해 설정해놓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이 빠르다는 것만 믿고, 가다가 놀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는 토끼의 모습보다는 느리지만 주위의 상황에 개의치 않고 시종일관(始終一貫) 진지한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현명(賢明)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하루는 제자들에게‘인생은 얼마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 중에 몇 년이라고 대답한 사람도 있었고, 몇 달이라고 대답한 사람, 며칠이라고 대답한 사람, 몇 시간이라고 대답한 사람 등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호흡 하나에 있다고 대답한 제자도 있었습니다. 대답을 다 듣고 난 뒤 부처님께서는 한 호흡에 있다고 대답한 제자 말고는 모두가‘아직 인생을 알기에는 멀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뱃속에서 나올 때 모두가‘응애’하고 첫소리를 터트린 뒤 죽는 순간 숨을 거둬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반복하는 호흡은 단지 들락 날락만 할 뿐 하나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은 호흡 하나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세상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리면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매진(邁進) 하면 됩니다.

시인 천양희씨도 그의 시 <상실>에서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 인생에 포기는 없다.

존재를 잃어버리면 가슴을 잃는 것이다.
가슴을 잃어버리면 자신을 잃는 것이다.
자신을 잃어버리면 세상을 잃는 것이다.
세상을 잃어버리면 인생을 잃는 것이다.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공부할 때는 공부에만 매진하고, 일할 때는 일에만 집중하고, 운동할 때는 운동에만 매진하고, 잠잘 때는 잠자는 데만 집중하고,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데만 집중하면 됩니다.
그렇게 현재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만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살면 됩니다. 그러면서 주위와 함께 어울림을 가지고 살아가면 됩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인생살이를 행복한 삶, 성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E-mail : venjungwoo@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