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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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위에서 함께 춤추기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정말 우연히도 거미가 거미줄 치는 광경을 한 시간여 감상했다. 처마 끝에서 저쪽 나뭇가지까지 길게 실을 연결시키고 먼 쪽에서부터 반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안쪽으로 위쪽으로 반원의 길이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그야말로 예술품을 그리 힘들이지도 않고 예술에 가까운 기계적인 동작으로 뽑아내는 솜씨라니. 꽁무니에서 실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것도 물론 경탄스럽지만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리 여덟 개를 절묘하게 움직이는 동작이었다. 맨 아래 양쪽 다리는 조금 전에 오른쪽으로 가로질렀던 줄에 가볍게 얹어놓고 이번에는 왼쪽으로 가로지르는 줄을 그린다. 중간의 다리로 좌우 중심을 잡고 맨 위의 양다리로 저 위쪽을 붙잡고 그야말로 슬로 모션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거미줄 모양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빌게이츠가 어렵던 시절 다락방에서 거미가 거미줄 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영감이 떠올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름이 나중에 생각나겠지만 중국의 어느 장군은 적에게 쫓겨서 피신하다가 에라 하고 동굴 속에 몸을 들이 밀었다. 잠시 숨을 몰아쉬다가 가라앉으려는데 거미가 나타나더니 잠깐 사이에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쳤다. 뒤따라오는 사람이 동굴 근처로 다가왔다. 에이고 이제 꼼짝없이 잡혔구나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거미줄이 쳐져있는 것을 보니 여기에 숨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데로 가보자.”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세상은 그저 한 줄기 거미줄 위에 피어 있는 한 송이 꽃인 것을.” 내심 “그 꽃 위에 펼쳐지는 화려한 댄스.” 뭐 이 정도의 답장이 오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아침나절에 문자를 보냈는데 늦게 확인했는지 저녁 늦게 답장이 왔다. “인드라망 거미줄~~” 그만 생각 속 한 송이 꽃 위에서 펼쳐지던 동작들이 거미가 거미줄 뒤에 달라붙듯 이 거미줄에 달라붙었다. 생각이야 거미줄에 달라붙어도 그만이지만 잠자리가 거미줄에 달라붙기라도 하면 잠자리 입장에서는 오백 층 빌딩 꼭대기에 불이 난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다.
조선시대 윤증이라는 선비는 틀림없이 잠자리가 거미줄에서 퍼덕거리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경험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선비가 시를 지었다.


蜘蛛結網罟 거미가 그물을 엮어서
지주결망고


橫截下與上 위아래를 옆으로 가로질렀구나
횡절하여상


戒爾蜻蜓子 잠자리들에게 경계 싸이렌 울리노니
계이청정자


愼勿簷前向 삼가 처마 앞으로 향하지 말지어다
신물첨전향


어릴 적에는 아무 생각 없이 거미줄을 걷어버리곤 했다. 거미줄 치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약간 신기하다고 여기고 지나갔었다. 거미도 그렇고 거미줄이 참 한심한 인간이 하나 지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한 시간여쯤 지켜보고 있자니 잠자리나 곤충이 거미줄에 걸리는 것이 아니고 햇살이 입체적으로 슬금슬금 거미줄 틈새 공간속까지 들어가면서 걸려들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바람도 함께 걸리고 저 위쪽 길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도 거미줄 한켠에 걸린다. 거미는 햇살이 비쳐들자 동작 그만 상태로 전환하고 한 중앙에 자리를 잡고 여덟 개의 다리를 멋지게 각각 배치하고 삼매에 들어간다. 거미는 죽은 듯 잠잠하다.


태풍에도 거미줄은 끄떡없다.
나무가 바람에 쓰러진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바람이나 비 때문에 거미줄이 끊어져서
거미들이 대피소동을 벌였다는 소식은
거미 통신망에도 뜨지 않는다.


밤이 되면 별빛도 걸리고 달빛도 거미줄에서 잠시 쉬고 땅바닥으로 내려간다.
가을밤의 달빛을 당나라의 대문호인 백거이 거사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霜草蒼蒼蟲切切 서리 내린 풀들 푸르기만 하고
상초창창충절절 벌레 울음소리 찌르르 찌르르


村南村北行人絶 마을 남쪽 마을 북쪽에
촌남촌북행인절 다니는 사람 끊어졌네


獨出門前望野田 홀로 문 앞에 나가
독출문전망야전 들판을 둘러보니


月出蕎麥花如雪 달 떠오르고
월출교맥화여설 메밀꽃이 눈처럼 하얗구나


저 메밀밭 옆 어느 숲에도 거미줄이 있어서 달빛을 받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이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거미줄에도 서리가 내리겠지만 시들지도 않는다.
보이는 거미줄에도 걸리고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는 더 많이 걸려들면서 하루하루 숨쉬고 살아가는 게 누구나의 일상이다. 거미줄 저쪽 끝 한 귀퉁이에 진동이 일면 저 반대쪽이나 옆쪽 끝의 거미줄도 동시에 진동을 한다.
지구촌 한 곳에서 일어난 일이 그 지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에 동심원의 파장을 동시에 일으킨다.
내친 김에 백거이 거사의 시 한 수를 더 읽어본다.


蝸牛角上爭何事 달팽이 뿔 위에서
와우각상쟁하사 다투어본들 무엇하리오


石火光中寄此身 부싯돌 불 반짝거림 시간속에
석화광중기차신 이 몸이 맡겨져 있는 것을


隨富隨貧且歡樂 부유하면 부유한대로
수부수빈차환락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不開口笑是癡人 입 벌리고 크게 웃지 못하면
불개구소시치인 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네


전 우주 공간에서 보자면 지구전체 덩어리도 좁쌀알보다 적다. 달팽이로 본 것은 엄청 지구의 크기를 후하게 쳐준 셈법이다. 지구촌의 남쪽에 달팽이 뿔 하나가 달려있고 북쪽에도 하나 달려있고 뭐 그 정도이다.
석화광중몽일장石火光中夢一場.
부싯돌 불 반짝거림 그 짧은 찰나에 꾸는 한바탕 꿈이 사람에 따라서는 한없이 지루하고 길어질 수도 있다. 사람은 눈에야 거미줄 전체 그림이 거미와 함께 한눈에 들어오지만 어쩌다가 거미줄을 기어가게 된 개미에게는 굽이굽이 반복되는 거미줄 미로의 오솔길이 제법 멀고도 길게 느껴질 수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일본의 동화에 등장하는 한 주인공은 온갖 죄를 거리낌없이 저지르는 바람에 지옥에 떨어졌는데 우연히 거미 한 마리를 위험에서 건져준 일이 있었다. 이 인연으로 부처님이 지옥에 거미줄 한 줄을 내려주었다. 꼬옥 꼬옥 잡으면서 지옥의 불구덩이 진흙탕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는데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없이 많은 지옥중생들이 거미줄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혹시 끊어질까봐 “이건 내 거미줄이야” 하고 소리치는 순간 거미줄이 툭 끊어졌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나는 거미줄 끊어지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함께 거미줄 위에서 즐거운 춤을 함께 출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