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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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를 보내는 상념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중국과의 외교무대에서 한시 구절이 등장했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보내는 메시지를 표현한
시 구절은 인터넷을 통해 많이 알려지기도 한 내용인데 다음과 같다.


一花獨放不是春 한 가지 꽃이 홀로 핀 것은 봄이 아니고
일화독방불시춘


百花齊放春滿園 백 가지 꽃이 일제히 피어야 봄이 정원에 가득한 것이라네
백화제방춘만원


시진핑이 외교무대에서 활용한 구절이다. 중국의 춘추시대에도 외교관들은 사서삼경 중에서 시경에 있는 구절을 주고받으면서 치열한 외교 전략을 펼쳤다.


시경에 보면 물가를 사이에 두고 밀당을 하는 남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간략하게 번역문으로 감상해보자.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진수를 건너오세요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없지 않걸랑요
이 멍청이 미친 남자야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유수를 건너가겠어요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없지 않걸랑요
이 멍청이 미친 남자야


물가 저쪽에 있는 남자의 애간장을 바짝바짝 태우는 내용이다. 이 비슷한 문자를 받고 국제공항으로 달려가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춘추시대에 한 나라의 사신이 다른 나라의 사신에게 이 시경 구절을 노래하면 당신 나라의 정치적인 입장을 조속한 시일 내에 표명하시오 하는 내용이 된다.


조선시대에도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시경의 구절을 인용해서 외교를 했다. 중종 때 중국 사신이 왔다. 경복궁에서 거대한 연회를 베풀고 중종이 중국사신에게 말한다.
시경에서


樂只君子 즐거울사 우리 군자님이여
락지군자


邦家之光 나라의 빛이로다
방가지광


하였는데, 이렇게 우리나라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외교수사가 이어질 것은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중국의 사신도 시경의 구절을 인용해서 화답한다.


立屛之翰 세워서 울타리가 되고 막아서 담기둥이 되어주시니
입병지한


百.爲憲 온갖 제후들이 모범으로 삼는다네
백벽위헌


지속력으로 우리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달라는 내용이다. 모범이 된다는 표현은 외교적 수사인 과장 칭찬법이다. 칭찬은 과장인 줄 알면서도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 않을 수가 거의 없다.
그리고 거나한 연회가 계속되었을 것이다. 이번 중국과의 외교에서 우리나라가 보낸 메시지에 중국 측에서 시구절을 인용해서 화답했다.


春江水暖鴨先知 봄날 강물이 따뜻해지는 것을 오리가 먼저 안다네
춘강수난압선지


서서히 관계가 따뜻하게 개선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백 가지 만 가지
꽃이 활짝 피어서 봄기운이 세상에 가득해지길 바란다.


자료를 조사해보니 이 시 구절은 중국 송나라 때 소동파가 지은 시에서 따온 것이다. 소동파가 그림 그리는 화승인 혜숭惠崇스님이 그린 춘강효경春江曉景, 봄 강의 아침 풍경에 붙인 화제시畵題詩이다.
전체 내용을 이런 기회에 감상해본다.


竹外桃花三兩枝 대숲 바깥쪽 복사꽃 두서너 가지에 봄기운이 도는데
죽외도화삼량지


春江水暖鴨先知 봄 강의 물이 따뜻해지는 것을 오리가 먼저 안다네
춘강수난압선지


蔞蒿滿地蘆芽短 물쑥이 온땅에 가득하고 갈대싹 여린 잎이 짧으나마 올라오니
누호만지로아단


正時河豚欲上時 바로 복어가 강물로 오르려는 때라네
정시하돈욕상시


그림을 직접 보지 않더라도 시의 내용을 통해서 머릿속 화전지에 각자 나름대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듯도 하다.
복어는 맑은 강물 하류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서식한다. 복사꽃 가지와 강물과 강물 속에 잠겨있는 오리의 발과 물쑥 잎과 갈대의 여린 싹과 복어가 동시에 각자의 율동을 펼쳐내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점은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때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내면세계에는 봄 풍경이 펼쳐질 수도 있고 여름 풍경이 헤엄칠 수도 있다.
전에 한문 공부를 같이 했던 지인이 얼마 전에 문자를 보내왔다.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절기가 차가워진 연후에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고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世亂然後知君子之不改 세상이 어지러워진 연후에 군자가 절개를 바꾸지 않음을 안다
세난연후지군자지불개


라고 했는데, 미리 알아주면 안 되는 건가요 잠깐 동안 길게 음미하고 나서 담문자를 보냈다.


좋은 말씀이시지만, 후에도 알아주기가 힘든데…
조금 있다가 답장이 왔다.


제 욕심이 오버했나 봅니다.


은행나무들도 미련 없이 이파리들을 훌훌 털어내고 있다. 또 그렇게 텅 빈 가지를 하고 늠름하게 겨울 찬바람과 대화를 나눌 것이다. 은행나무도 한 해를 보내고 새로 맞이하고 우리도 그렇게 보내고 맞이하면서 다들 나름대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송나라 야부선사의 짧은 선게를 읽으면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씩씩하게 맞이하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無限野雲風卷盡 한도 끝도 없는 들판의 구름을 바람이 모조리 말아들이니
무한야운풍권진


一輪孤月照天心 한 수레바퀴 외로운 달이 하늘 한 가운데서 빛나네
일륜고월조천심


달빛이 바다 속 깊은 곳도 비추어 주고 산 나무 작은 가지도 비추어 주고 산길을 걷는 사람과 서울 도심을 걸어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차별 없이 비추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