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 보 1
    화 보 2
    특 집 1
    특 집 2
    특 집 3
    특 집 4
    절문밖 풍경소리
    지상법문
    취재현장에서 본 불교
    붓다기획
    반야샘터
    건강한 생활
    입시광장

과월호보기

기도를 통한 체험과 확신











 

정우(頂宇)스님 | 본지 발행인  
통도사 주지  
구룡사 회주  




부무상계자 / (夫無常戒者)는
입열반지요문 / (入涅槃之要門)이요,
월고해지자항 / (越苦海之慈航)이라.
시고(是故)로 일체제불 / (一切諸佛)도
인차계고 / (因此戒故)로
이입열반 / (而入涅槃)하시고,
일체중생 / (一切衆生)도
인차계고 / (因此戒故)로
이도고해 / (而度苦海)하느니라
.


무상계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말씀을 풀어본다면,「 무릇 무상한 이치를 아는 사람은 번뇌망상(煩惱妄想)이 일어나지 않는 열반에 들 수 있고 고해바다를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도 무상한 이치를 통해서 열반에 드셨고 일체중생 또한 무상한 이치를 알아야 고해바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비유를 더 들어본다면,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선가구감(禪家龜鑑)에서「단번뇌(斷煩惱) 명이승(名二乘)이요, 번뇌불생(煩惱不生) 명대열반(名大涅槃)」이라고 하셨으며, 부처님께서는 열반경(涅槃經)에서「단번뇌(斷煩惱) 명해탈(名解脫)이요, 번뇌불생(煩惱不生) 명열반(名涅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물질적이고 유형적이고 형상적인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두두물물(頭頭物物)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변한다는 이치를 잘 알아야만 번뇌를 끊고 해탈과 열반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번뇌란 무엇입니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또 망상이라는 것은 재물욕(財物慾), 색욕(色慾), 식욕(食慾), 명예욕(名譽慾), 쾌락욕(快樂慾) 등 그림자처럼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 함께 존재하는 것들 입니다.

진정한 내 모습을 찾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아름다운 삶과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살이가 다 번거롭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세상 또한 맑고 깨끗하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마치 초상집에 가서 상주에게 남 잘된 일 이야기 해봤자 건성으로 듣게 마련이고, 결혼식장에가서 남 안 된 일 걱정을 해본들 혼주에게는 건성으로 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즉,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서는 아름다운 삶과 아름다운 사랑,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분론법(二分論法)으로 보면 세상에는 두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있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믿는 사람 중에서도 절에 가는 사람과 절에 가지 않는 사람이 있으며 절에 가는 사람 중에서도 예배하는 사람과 예배하지 않는 사람이, 예배하는 사람 중에서도 법문 듣는 사람과 법문 듣지 않는 사람이, 법문 듣는 사람 중에서도 지극한 마음으로 듣는 사람과 건성으로 듣는 사람이, 지극한 마음으로 듣는 사람 중에서도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과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생각한대로 행동하는 사람 중에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하는 사람과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이분론법으로 보면 세상에는 잘나고 못난 것에 대한 비유를 수없이 들 수 있지만, 진정으로 불교를 믿는 불자라면 지혜 있는 사람중에서도 믿는 사람, 믿는 사람 중에서도 절에 가는 사람, 절에 가는 사람 중에서도 예배하는 사람, 예배하는 사람 중에서도 법문 듣는 사람, 법문 듣는 사람 중에서도 지극한 마음으로 듣는
사람, 지극한 마음으로 듣는 사람 중에서도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 생각한대로 행동하는 사람 중에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불자야말로 진정으로 수승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수승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방법의 하나로 첫째 자신의 자화상(自畵像)에게 물어보는 연습을 부단히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내 자신과 이야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어느 때는 나를 계단 위에 앉혀 놓기도 하고, 어느 때는 법당에 서 있는 정우를 불러들이기도 했습니다. 또 힘들고 어려울 때는 벌러덩 들어 누워 쉬고 있는 정우에게「너는 지난날의 그림자만 좇아 추억하면서 그리워하다가 한 생을 마감하겠느냐?」고 반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반문을 하는 속에서「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나머지 시간과 바꾸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진정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나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두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진정으로 불교를 믿는 불자라면 어느 한 순간이라도 기도의 삶을 놓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현재 어디에 어떤 위치에 있든 기도하 는 마음과 자세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절에 찾아와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날짜를 맞춰서 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절에 와있든, 집에 있든, 사람을 만나든, 길을 가든, 일상생활 속에서 늘 함께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나고 죽는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원한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길은 팔만사천의 문이 있다고 했듯이 단 한 순간이라도 기도의 마음과 자세를 놓지 않고 생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진정한 내 모습을 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로 진정으로 불교를 믿는 불자라면 죽음에 대한 준비를 잘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좋은 법문 많은데 왜 하필 죽음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에 대한 준비를 잘하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과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길인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반드시 태어나면 죽게 되어있습니다. 태어난 이들은 늙지 않을 이 없고 병들지 않을 이 없으며 죽지 않을 이 없기 때문에 힘있고 젊었을 때 여한 없이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구분 지어야 할 것은「어차피 죽을 인생, 가고 나면 다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인생, 될 대로 되라. 멋대로 살겠다.」라는 심정
으로 마구잡이로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힘이 있을 때 그 힘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내 자신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젊음도 어느 날인가는 늙는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건강도 어느 날인가는 그 건강이 약화되어서 병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생각해서 보면 건강했을 때 그 건강을 발산해서 값지고 귀하고 소중한 인연 아쉽고 미진하고 부족한 인생으로 살아가지 말고 우리가 노력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 해야만 목숨이 다 했을때 후회하지 않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절에서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를 지내고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지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앞서 가신 이에 대한 영가 천도도 중요하지만, 바로 살아있을 때 죽음을 대비하여 예비 영가인 자신을 스스로 미리 천도하는 일 또한 중요한 일임을 의식을 통해서 가르쳐온 것입니다.

네 번째로 방일(放逸)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
코살라국의 왕이 부처님께「사람들은 누구나 소원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이룩하고자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그것은 오직 한 가지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그가 원하는 바는 다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불방일에 의지하여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살게 되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아내나 남편, 또는 자식이나 부모 역시 그것을 본받아서 열심히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위기가 되었을 때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지킬 수 있고 또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세상살이 에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와 인연 맺은 가족들을 위해서는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사찰의 기도에 동참하는 것은 물론 집에서도 늘 기도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면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49재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길인 것입니다.

어렸을 때 배운 가르침 중에「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한 평생 탐착한 재물은 하루아침의 먼지와 같다.」는 이 가르침대로 평생을 허망한 인생으로 살기보다는 단 사흘이라도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불자들이 되 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허망하지 않으면 그가 곧 보살」이라고 했습니다. 몸은 비록 복 없이 말법시대(末法時代)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이 마음이 고요하고 허망하지 않으면 하고 있는 그대로가 바로 보살행이라는 말씀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그 무엇도 명약(名藥)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의 어떤 이치도 독 아닌 것이 없습니다.젖소는 물을 먹고 우유를 만 들어 내지만 독사는 같은 물을 먹고 독을 만들어 낸다는 평범한 말씀을 우리는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리스 머독이라는 서양의 여류 소설가의 글 중에「행복은 때때로 슬픈 얼굴이 되어서 다가오더라. 나의 얼굴은 슬픈 얼굴이 되어서 다가온다. 나의 얼굴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너무 슬퍼서 오랫동안 그것을 불행인줄 알고 내 던졌었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기쁜 얼굴만 행복인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슬픈 얼굴도 행복이더라는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슬퍼서 먼 곳에다 던져 놓고 그것이 불행인줄 알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까 그것도 행복이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가 짊어져야 할 짐 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들은 대부분 우리네 부모들이 짊어져 왔습니다. 이러한 인과의 도리를 안다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누 군가 짊어져야 할 짐이 있다면 스스로 짊어질 수 있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췄으면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그 짐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는 스스럼없이 그 짐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는 자세를 갖췄으면 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나쁜 업이든, 불행이든, 슬픔이든, 고통이든, 기쁨이든, 즐거움이든, 행복이든,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금생에 잘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설혹 나에게 주어진 나쁜 업으로 인해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으로 다가오더라도 노력을 통해 잡풀을 뽑듯이 뽑아내주고, 낙엽을 빗자루로 쓸듯이 쓸어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그것을 힘들고 어려운 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의 말씀을 드립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 관문을 스스럼없이 통과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용기가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확인을 하는 것이 기도를 통한 체험이고 기도를 통한 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