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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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주해

박경희
도서출판 중도 디자인실장



『반야심경주해』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반야심경』에 대하여 중국 원나라 말기부터 명나라 초기에 걸쳐 살았던 하도전(何道全, 1319~1399)이 주해한 책이다. 이번에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인 김호귀 박사의 번역으로 도서출판 중도에서 출판되었다.
낱낱의 문구마다 그 의미와 내용을 설명하고, 불교를 비롯한 유교와 도교 기타에서 동일한 의미로 활용되고 있는 내용을 인용하여 부연설명을 가하였다.
그리고 매 문구마다 마지막에는 사구로 된 게송을 붙였다. 그런데 경문의 63문구에 대한 해석은 한자로 번역된 용어에 따른 해석으로서 범어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완전히 무시되어 있다.
‘바라밀다’의 경우 ‘바라’와 ‘밀다’를 나누어 해석한다든가, ‘심’을 심장이 아닌 마음으로 해석하는 등 이와 같은 해석의 경향은 명대 이후가 되면 두드러지게 출현한다.
이와 같은 접근방식은 경문에 대한 학술적인 이해보다는 신앙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반야심경주해』가 지니고 있는 가치는 불교를 불교의 테두리 안에 가두지 않고 삼교에 드러내놓고 해석함으로써 불교가 지니고 있는 교리의 우월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당시의 불자나 불자가 아닌 사람을 막론하고 식자층에서 어떻게 불교를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책 속으로
대저 『반야심경』은 제불의 간심肝心이고 모든 성인의 명맥命脈이다. 이런 까닭에 당나라 이래로 거기에 주석을 붙인 사람이 대단히 많았다. 우연히 책방에서 송대의 무구거사 장구성이 주석한 1권을 얻은 것과 비교해보니, 선교 및 내전과 외전에서도 진상眞相을 밝혀주는 것으로 언급되었고,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밝은 등불이었으며, 안개 낀 바다의 나침반이었다. 이에 거기에 화점和点을 가하고 장인에게 책으로 엮도록 명하여 그 주석서를 널리 전승하게 되었다. 그러니 어찌 불법의 귀중한 보배가 아니겠고, 색과 공의 오묘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발문 중에서-


제법은 본래부터 마음에서 발생하여 
다시 그러한 마음으로부터 소멸되네
발생소멸은 모두 무엇을 말미암는가 
그대한테 청하노니 스스로 판별하라
그렇듯이 모두가 자기의 마음일진댄 
어찌 타인이 하는 말씀을 빌려 쓰랴
반드시 직접 자기 자신의 손을 써서 
무쇠로 만들어 놓은 소의 피를 뽑고
노끈으로 묶어두고 콧구멍을 뚫듯이 
허공을 꿰뚫어서 단단히 잡아놓는다
가는 삼베 한 가닥 무위의 기둥삼아 
그것으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도둑을 자식으로 인식하는 것이므로 
마음 및 제법을 모두 잊어야 한다네
남에게 내가 속는 것 일체 그만두고 
한주먹으로 일체의 반연을 부수어라
마음 관찰해도 그 또한 마음이 없고 
제법을 관찰해도 그 또한 법이 없네
주관과 객관이 모두 보이지 않을 때 
푸른 하늘은 맑고 또 밝아 깨끗하네
가을날 보름달은 둥글기 그지없는데 
번뇌 및 진실 왜 구별하지 못하는가
                         -제3 회향편 중에서-


본 『반야심경주해』는 명대의 송계도인松溪道人 혹은 무구자無垢子라고 불린 하도전何道全이 주석한 것이다. 발문에서 무구자를 북송 말기 남송 초기에 활동했던 주전파主戰派의 영수였던 장구성張九成으로 기록한 것은 오류이다. 하도전(1319~1399)은 원말元末 명초明初를 살았던 인물이다. 절강성浙江省 사명四明 출신으로 종남산終南山의 규봉圭峰에 은거하였다. 명 홍무洪武 연간에 가도현賈道玄이 그의 어록語錄과 시사詩詞를 모아서 편찬한 『수기응화록隨機應化錄』 2권이 전한다.
『반야심경주해』는 『반야심경』의 문구마다 그 의미와 내용을 설명하고, 불교를 비롯한 유교와 도교 기타에서 동일한 의미로 활용되고 있는 내용을 인용하여 부연설명을 가하였다. 그리고 매 문구마다 마지막에는 사구로 된 게송을 붙였다. 그런데 경문의 63문구에 대한 해석은 한자로 번역된 용어에 따른 해석으로서 범어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완전히 무시되어 있다. ‘바라밀다’의 경우 ‘바라’와 ‘밀다’를 나누어 해석한다든가, ‘심’을 심장이 아닌 마음으로 해석하는 등 이와 같은 해석의 경향은 명대 이후가 되면 두드러지게 출현한다.
가령 청대의 서괴정徐槐廷이 쓴 『반약심경해의般若心經解義』에서는 마지막 대목의 주문呪文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아제아제揭諦揭諦 바라아제波羅揭諦 바라승아제波羅僧揭諦 보리사바하菩提薩婆訶에서 아제揭諦는 묘제妙諦를 게출揭出하여 사람을 제도한다. 거듭해서 말한 것은 자기를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는 것이다. 바라波羅는 번역하면 피안인데 피안에 도달하고자 하면 반드시 이 묘제妙諦에 의지해야 한다. 승僧은 중衆인데, 소위 중생으로 하여금 함께 피안에 오르는 것이다. 보리菩提라는 말은 어떤 피안에 도달하는가 하면 대보리의 경지를 가리킨다. 사바하薩婆訶라는 말은 번역하면 속질速疾인데, 이 반야로서 보리를 획득하는데 신속하여 지체됨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반야심경주해』가 지니고 있는 가치는 불교를 불교의 테두리 안에 가두지 않고 삼교에 드러내놓고 해석함으로써 불교가 지니고 있는 교리의 우월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당시의 불자나 비불자를 막론하고 식자층에서 불교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모습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도전의 『수기응화록隨機應化錄』에 수록된 시 한 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불재령산막원구佛在靈山莫遠求
영산지재여심두靈山只在汝心頭
인인유개령산탑人人有箇靈山塔
호향령산탑하수好向靈山塔下修
부처는 영산에 있으니 멀리서 찾지 말라
그 영산은 바로 그대의 마음자리에 있다
모든 사람은 그 영산탑을 지니고 있으니
기꺼이 영산의 탑을 향해 믿고 정진하라 


이 사구게에서 언급하고 있는 제일구의 영산靈山은 본유本有의 불성佛性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제2구에서는 그 불성이 다름 아닌 모든 사람의 자성임을 말한다. 따라서 제1구와 제2구에서는 마음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는 도리를 말해주고 있다. 제3구에서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음을 개시해줌으로써 영산탑이야말로 모든 사람, 나아가서 사생과 육도의 중생에게 부처의 가르침이 전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제4구에서는 각자에게 부지런히 정진하여 무위진인無位.人을 찾으라는 당부의 말이다. 하도전이 『반야심경주해』를 해석한 의도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반야심경』의 이해를 통해서 먼저 자신을 자각하고, 자성을 믿으며, 이타의 마음을 일으키고, 그 성취를 위해 정진할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해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