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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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오계의 인간불교적 의미

성운星雲 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지난호에 이어서)


자신이 훔칠 성격도 아니고 그런 행동을 한 적도 없다고 하며, 오계 가운데 ‘도둑질 하지 말라’는 계가 가장 지키기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받아 지니기 가장 어려운 계가 바로 이것이다. 예를 들어 책상 위에 차 한 잔이 있는데 당신에게 마시라는 이야기를 안 했어도 알아서 가져다가 마셨다든가, 남의 정원에 예쁘게 핀 꽃을 하나 꺾어 머리에 꽂았다든가, 사무실에 있던 펜을 나도 모르게 집에 가져와 사용했다든가 등이 모두 주지 않는데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이 계율은 그렇게 엄격하지는 않다. 이 계율의 규정에 의하면 5전(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화폐 단위) 이상의 가치가 나가는 물건을 훔쳐가는 행위는 바라이의 기본을 범한 것이다. 그 이하의 가치가 있는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도 되는지, 아니면 역시 돌길라에 저촉되는지의 설명은 없지만 그 행위만은 비판받아야 한다.


③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
부처님께서 계율을 정하여 불교의 재가신도에게 정당한 연애, 정당한 결혼, 정당한 이혼 후 재혼까지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모두 불교에서 허락하는 감정생활이라고 했다.
다만 현대인들은 부부간의 정당한 관계 이외에 사음으로 가정의 불행과 사회의 혼란을 조장하니 그 죄가 참으로 크다! 사음을 범한 당사자는 ‘간음’이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고,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좇아다녔다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설령 상대방이 당신을 좋아했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사랑의 방법 중에 하필 적합하지 않은 이성을 찾는가?
자고이래로 사음의 죄를 범하면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자녀가 상처를 받으며, 금전적 손실을 가져오고, 윤리가 무너지며, 도덕이 훼손되고, 잘못하여 법망에 걸리기라도 하면 상대방 가정에 수치심과 모욕을 안겨주게 되니, 사음으로 인한 결과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양귀비를 사랑한 당 현종의 경우, 양귀비는 본래 며느리였는데 후궁으로 들여 총애했다. 이로 인해 윤리가 어지럽혀졌고, 심지어 안녹산의 난까지 일어나 하마터면 망국의 길로 들어설 뻔하지 않았던가. 양귀비를 총애했던 당 현종의 부당한 사음으로 당시 학대받고 상처 입은 백성이 백만 명 이상을 헤아린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유정중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랑도 합리적인 상황과 계율의 범위 안에서 해야 몸을 보호할 수 있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으며, 사회에 유익할 수 있다. 사람이 저마다 사음하지 않으면 자신의 행위가 건전해짐은 물론 가정윤리와 사회도덕 역시 이로 인해 더욱 높아질 것이다.


④ 망령된 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망령된 말에는 욕, 이간질, 꾸민 말, 거짓말 등이 있다. 망령된 말은 바로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고, 본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며,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분란을 조성하고, 옳고 그름을 전도시키며,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타인의 좋은 일에 훼방을 놓는다. 자신은 말 한마디 뱉을 뿐이지만 그로 인해 타인은 지극히 큰 상처를 받는다.
망령된 말에는 악의에 찬 무고, 함부로 내뱉는 말로 인한 상처, 편리한 거짓말 등 수많은 종류가 있다. 악의로 하는 말과 편리하고자 꾸미는 거짓말 외에도 남에게 상해를 입히는 말이라면 모두 망어로 보아야 한다.
‘십악업十惡業’에 입으로 짓는 업인 구업口業이 4개나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은 입으로 평소 ‘돌길라’의 죄업을 많이 짓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러분이 수지해야 하는 것은 ‘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이미 증과證果했다’, ‘나는 신통력이 생겼다’라고 거짓말하는 바라이의 ‘대망어大妄語’ 계율이다. 자칭 ‘린포체’니, 자칭 ‘활불’이니 하는 사람은 대망어 계율을 범한 것이며, 그 죄는 더욱 무겁다.


⑤ 독을 마시지 말라(不吸毒)
이 계율을 과거에는 ‘술을 마시말라(不飮酒)’고 했었지만, 사실상 ‘독을 마시지 말라(不吸毒)’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독’에는 ‘술’도 포함되며, 또한 마약은 술보다 위험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과거 서방국가는 마약의 일종인 아편을 이용해 중국을 멸망시키고자 했다. 사람이 독을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일할 생각도 안 하며 가산까지 탕진하게 된다. 심지어 삿되고 악한 수많은 죄들이 이로 인해 발생하니 ‘동아병부(東亞病夫: 동아시아의 병든 사람)’란 칭호가 이때부터 생겨났다. 사람이 저마다 오계를 엄격히 지킨다면 화목하고 환희에 가득한 국가와 사회가 절로 만들어질 것이다.


4. 삼귀오계 종론綜論


이상으로 ‘귀의삼보’와 ‘수지오계’의 요점을 나눠 소개하였다. 이제는 삼귀와 오계의 인간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설명(綜論)하고자 한다.
‘삼귀오계’는 불교에서 불도에 입문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지만, 사실 불교와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상은 일맥상통한다.
불교의 ‘귀의삼보’는 대지의 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고 사람은 누구나 부처님을 주장한다. 이것은 현대의 정치와 같다. 사람은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대통령은 전 국민이 선거를 통해 선출하며 우리는 이것을 ‘민주’라고 부른다. 불교의 ‘수지오계’에서 ‘계’의 정신은 ‘자유’이다. 수계한 사람은 남을 침범하지 않고 스스로를 잘 다스린다. 법률을 위반하지도 않으니, 자연히 법률의 제재나 속박을 받지 않아 어디에도 얽매임이 없는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시 부처님의 ‘삼귀오계’는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서로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오계를 수지하면 저마다 타인을 침범하지 않아 서로 자유로울 수 있고, 모두가 삼보에 귀의하면 종족, 국가, 종교의 구분이 없는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다. 이 얼마나 평등한 민주 정신인가!
불교는 시대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시대를 초월하기도 한다. 세계는 몇 천 년을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현대적 자유민주주의 시대를 열었지만, 2,500여 년 전 부처님은 이미 ‘삼귀오계’를 제창해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밝혔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귀의하라고 하지만, 부처님께 귀의해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진정한 귀의삼보는 실질적으로 스스로에게 귀의하고, 스스로를 자각하며,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원래 우리는 세상에서 걸어 다니는 시체와 다름없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도 인식하지 못한다.
“부처님 계실 적에 질곡을 헤매다가, 부처님 열반 후 나 세상에 태어났네. 이 몸의 업장이 많아, 여래의 법신을 뵐 수 없음을 참회하노라”라는 게송이 있다.
오늘 삼보에 귀의한 뒤에는 자신은 본래 부처이며, 자신은 부처 같은 지혜와 자비, 무한한 잠재 능력이 있으며, 부처님 같은 진여와 자성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삼보에 귀의함으로 부처와 동등한 지위까지 믿음이 승화할 수 있다면 더할 나의 없이 아름다운 일이다.
수지오계에서 오계는 5가지 조항으로 나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자유를 존중하기에 타인을 침범하지 않는다’라는 한 계율일 뿐이다. 살생하지 않음은 타인의 생명을 침범하지 않음이고, 도둑질하지 않음은 타인의 재산을 침범하지 않음이며, 사음하지 않음은 타인의 신체를 침범하지 않음이고, 망령된 말을 하지 않음은 타인의 명예를 침범하지 않음이며, 독을 먹지 않음은 자타의 건강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부처님이신가. 사람이 저마다 수계하면 자신의 생명과 재산, 신체, 명예, 소유물들이 타인의 침범을 받지 않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귀의삼보의 좋은 점은, 부처님께 귀의하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법에 귀의하면 축생계에 떨어지지 않고, 스님께 귀의하면 악귀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삼보에 귀의하면 악계에서 벗어나 인간계와 천상계에 들 수 있다. 그러니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무척 귀중한 일이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은 마음에 등불을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천년 동안 어두웠던 방에 등불 하나 들이니 훤히 밝아졌네”라고 하였다. 법에 귀의하면 물의 원천인 수원水源을 개발하는 것과 같아, 생명의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게 된다. 스님께 귀의하면 승보僧寶는 복을 짓는 밭이라, 우리가 그 밭을 경작할 수 있게 한다. 땅과 전답이 있으면 좋은 삼보를 받을 수 있는 인연을 자라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귀의삼보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불성佛性에 귀의한다’는, 부처님은 실증할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부모에게서 나고 자랐으며,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었고, 고난에서 구해주는 힘이 있다.
‘법성法性에 귀의한다’는, 법은 영원한 진리이며, 보편타당, 필연적 논리와 법칙, 평등성의 특징이 있다.
‘승성僧性에 귀의한다’는, 승은 화합의 뜻이다. 사람으로서 화평, 화합, 화목, 화락 등 네 가지로 타인을 대하면 일체 중생은 한 몸처럼 함께 공존해나갈 수 있다.
오늘 여러분은 이 자리에서 삼보에 귀의하였다. 처음 발심했던 그 신심을 벼이삭처럼 소중히 간직하며, 귀의한 뒤 적어도 매일 한번 『반야심경』을 꾸준히 읽으면 반드시 지혜를 깨우칠 것이다. 수지오계에서 계戒는 인생의 길이다. 오계가 있으면 안전하고 평탄할 수 있다.
삼귀오계는 사회를 정화하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소극적으로 오계를 수지하는 데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살생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생물을 보호하고, 도둑질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기쁘게 보시하며, 음행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존중하고, 망령되이 말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고운 말을 하며, 독을 먹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 계에는 악을 그치는 7중七衆의 별계(別戒, 별해탈계)인 성문계(聲聞界, 소승계)라는 소극적 의미 외에도, 선을 행하는 보살의 삼취정계三聚淨戒, 즉 섭률의계攝律義戒·섭선법계攝善法戒·요익유정계饒益有情戒라는 적극적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계는 소극적으로 그릇되고 악한 것을 방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하고 도덕적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삼귀오계는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최고 정신이다. 삼보에 귀의함은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의 불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오계를 수지함은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을 침범하지 않는 선행이다. 삼보에 귀의함은 민주이고, 오계를 수지함은 자유이다. 삼보에 귀의함은 자신의 희망에 귀의하는 것이고, 오계를 봉행함은 인생의 희망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