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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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포교의 새 지평 연 구룡사

- 우연히 찾아낸 1993년 “화엄경산림 백고좌 회향 전야 대법회” 영상을 보고 -


이범관
붓다TV PD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년간 서울 양재동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100분의 큰스님을 모시고 백고좌 법회가 성황리에 봉행됐었습니다. 구룡사를 오랫동안 다니셨던 불자님들께서는 생각이 나실 겁니다.


3년간 구룡사에서 100분의 큰스님을 모시고 화엄경산림 백고좌 법회를 봉행했다고 하니, 이는 대한민국 불교사에서 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법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단하고 환희 법열한 법회였지요.…
매일 법사스님께 화엄경의 법을 청하며, 100일 동안 매일 1천명 이상 불자들이 구룡사 법당을 빈자리 없이 가득 매웠으니 이 얼마나 환희로운 법석이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 밀려옵니다.


우연히 자료를 찾다보니 1993년 12월 12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봉행된 구룡사 화엄경 산림 백고좌 회향 전야 대법회의 영상이 VHS로 보관 되어 있더군요. 당시의 감동이 밀려와서 그냥 보관하기 보다는 불자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유튜브에 올려놓았습니다. 보시고 그 당시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부대중의 모습을 보시면서, 구룡사를 서울 가회동에서 양재동 허허벌판으로 이전해서 천막법당을 짓고 매일 108배(3번) 기도와 법회, 불교대 강의를 열고, 그리고 전국 사찰 최초로 1만 부처님을 조성하고 모신 회주 정우스님의 원력을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구룡사 천막 법당이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양재동 주변에는 농장 한 채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절 부지 주변에는 있을 곳이 없어 말죽거리 주변 2층집을 세를 내서 장화를 신고 불사현장을 찾아 다니셨다고 합니다. 남대문시장에 가서 100평 규모의 천막을 사서 텐트를 치고 스치로폼을 깔았는데, 그게 바로 유명한 구룡사 천막법당입니다.
그리고 큰 길목마다 표지판을 세웠고 합니다. ‘통도사 서울 포교당 구룡사’ 성남행 대로 등 8곳에 현판이 붙었다고 합니다. 정우스님은 이렇게 회고합니다.
“이름은 거창했지. 통도사 서울 포교당이니 얼마나 근사한가.”
이름 보고 왔다가 실망해서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스님은 천막 법당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입소문도 났던 것이죠.
젊은 스님이 아무도 없는 벌판에서 열심히 기도한다는 소식에 불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것은 전에 없는 모습이었지요.
불광사나 구룡사 등 1980년대 도심포교당이 생기기 전 사찰과 스님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스님이 천막을 치고 논밭 한가운데서 불자들과 일일이 인사하고 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정우스님이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놀았던 것이죠.
아이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놀라움이었습니다. 모두 전에 없던 모습이었지요.
정우스님은 아이들이 오면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며 함께 놀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손에는 꼭 염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지금도 법당 절반을 비운 운동장은 아이들 놀이터로 조성할 정도로 정우스님은 아이들 포교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아이들이 절에 와서 노는 것을 좋아하자 불자들도 움직였습니다.
스님은 “아이들 포교 성공이 구룡사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시며 “아이들을 보고 어른들도 구룡사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회고하십니다.


이게 바로 구룡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대한민국 불교사에서 도심포교의 선구자 역할과 새로운 장을 연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구자적 역할에는 바로 구룡사 회주이신 정우스님이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