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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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민주, 자유, 평등의 참뜻을 논함

성운星雲 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지난호에 이어서)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 모여 성취함(衆緣所成)’, ‘나와 남이 공존 공영함(同體共生)’, 더 나아가 ‘공유공공관리(公有共管)’, ‘공동창작(集體創作)’ 등이 모두 민주의 원칙이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는다.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위경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불교의 사의지四依止가 곧 민주주의 법칙의 사상이다.
신화동주身和同住, 구화무쟁口和無爭, 이화동균利和同均, 계화동수戒和同修, 견화동해見和同解, 의화동열意和同悅이라는 불교의 육화경六和敬을 통해 승단이 신·구·의의 견해와 사상, 언행 면에서 다툼 없이 화합하는 데에도 또한 민주의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유가집요염구시식의瑜伽集要焰口施食儀』 권1에 “초지의 보살이 맹렬히 수행하면 백복百福이 장엄해지고, 일체의 행원行願이 다 원만해진다. 십지를 초월하면 일생보처위의 길상을 증득하고 삼승을 빨리 증득하며 결국 정각을 이룬다(初地菩薩勇識者, 百福莊嚴, 一切行願皆圓滿, 頓超十地, 證入一生補處位吉祥, 三乘速證竟成正覺)”라고 하였다. 사람이 저마다 법문을 들으면 바로 깨달을 수 있고, 바로 성불할 수도 있으니 이 역시 민주이다.
불교에서 부처님은 민주, 자유, 평등을 제창하셨고, 선종에서는 부처와 조사도 꾸짖으며 사람들에게 당당한 자아를 찾고, 신의 권위에 굴복하지 말라고 권장하는 등 민주 사상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구마라집鳩摩羅什과 반두달다槃頭達多를 대승과 소승에서 모두 스승으로 삼는 것은 민주 관념의 표출이다. 문수보살이 지혜가 뛰어난 여덟 살짜리 동녀童女에게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는 것은 바로 ‘나는 나의 스승을 사랑하나, 진리를 더욱 사랑한다’는 것이고, 민주 사상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태허太虛 대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고, 황벽 선사는 “부처에게 구하지 말고, 법에 구하지 말고, 승려에게 구하지 말라” 하셨다. 혜충慧忠 국사는 시자를 “부처님!”이라고 불렀지만, 시자가 “저는 부처님이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당당히 받아들이지 못함을 꾸짖었다.
이러한 선문의 공안公案은 모두 불교가 주장하는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이 다르지 않다(『반야경』)”는 것을 충분히 설명 않고 있다. 전형적인 민주를 표현한 것이다.
총림 생활 중에는 ‘울력’이라는 제도가 있다. 근기의 깊고 얕음에 구분 없이 모두 독같이 평등하게 일을 하는 울력에는 민주 정신이 충분히 발현되어 있다. 총림의 제도 중에는 청정한 대중 가운데 주지를 선출할 수 있다고 한다. 한때 나무꾼이었던 육조 혜능 대사도 일대 조사가 될 수 있었으니 민주 정신의 표시이다.
그러므로 불교 총림에서 ‘덕망 있는 자에게 자리를 물려준다’는 것, 고대 요순임금이 ‘천하를 양위’한 것, 손문 선생이 ‘천하는 모두의 것이다’라고 한 것 모두가 민주이다.
이 외에도 불교의 승단은 매사 회의를 열어 세 차례에 걸쳐 심사숙고한 다음 대중의 결정이 나오면 비로소 모두에게 공표하여 실행했다. 이것이 바로 민주정치의 선례가 아닐까.
부처님께서는 한 국가의 정치조직을 설립할 때는 “여러 차례 서로 모여, 바른 일에 대해 토의한다(『장아함경』)”는 원칙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가장 고귀한 승단제도를 남기신 뜻은, 승단 안에서는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행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회의를 거쳐 결정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민주의 정신이다.
부처님 생전의 회의 형식은 포살布薩, 갈마.磨, 멸쟁滅諍, 설법說法 등 4가지가 있다. 그중 갈마는 수계受戒·참회懺悔·결계結界 등 교단내의 모든 일을 결정하는 방식이며, 이로써 멸죄생선(滅罪生善: 악을 그치고 선을 기름)을 얻기 위한 의식이다.
계를 받을 때 갈마 화상이 지계법持戒法의 의의를 일깨우며 세 번에 걸쳐 갈마를 행하는데, 번번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지킬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계를 받는 자는 “가르침을 따라 봉행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로써 수계했음을 증명한다.
불교의 승단은 투명한 갈마 방식을 통해 고도의 민주 정신을 발휘한다. 대중의 의견과 역량으로 승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원만히 해결하고 육화경六和敬을 지키는 생활을 한다.
불교의 갈마 방식과 현대의 회의 방식은 서로 비슷하다. 갈마의 형식에는 다음 세 종류가 있다.


① 단백갈마單白.磨: ‘크게 말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으며, 늘 행하는 일 등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대중에게 고지告知한 뒤 큰소리로 한 번 더 말하면 성립된다. 이런 방식은 현대의 회의에서 관례업무를 보고하는 것과 같다.


② 백이갈마白二.磨: 한 번 고지하고 다시 한 번 물어 모두의 동의를 구한다. 보통 회의처럼 제기된 안건은 모두 회의에서 토론, 수용, 의결 등을 통해 효력이 발생된다.


③ 백사갈마白四.磨: 한 번 고지하고 다시 세 번 읽는데, 읽을 때마다 동의를 구한다. 안건에 대하여 갈마를 세 번 반복한 뒤에도 침묵하면 이의가 없다는 표시이다. 갈마가 성립되고 안건은 만장일치로 통과된다.


현대의 회의 순서와 비교하면 불교 회의의 정신은 더욱 장엄하고 신성하며 또한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회의에서는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통상 과반수가 안건에 찬성하면 통과로 친다. 그러나 갈마법에서는 만장일치 채택을 요구하며, 승단에서 누군가 이견이 있다면 갈마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갈마법 중에도 투표를 통한 다수결 방식의 멸쟁갈마滅諍.磨가 있다.
‘멸쟁’이란 승단의 논쟁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며, 부처님은 공정과 평화의 원칙에 입각해 대소사를 처리하라고 칠멸쟁법七滅諍法을 제정하셨다. 칠멸쟁법은 개인의 권익 보장은 물론 인정(情)과 이치(理), 법률(法)까지 아우르며 승단을 청정하고 화락하게 만든다.
부처님은 ‘법에 의지해 대중을 거두라!’는 계율로 정하고, 교단을 움직이는 권력을 대중에게 넘겨주었다. ‘승가의 일은 승려가 처결하라!’는 말에서 민주와 법치의 정신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영구의 명작 정치 에세이인 『인도의 유산』에서는 불교의 이 민주회의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세드런Sedran, 셰틀랜드Shetland 귀족 후작은 “오늘날 국회제도의 토대를 2천여 년 전 인도 불교도의 회의에서 볼 수 있으니, 놀랍고도 기이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현대 민주국가의 회의제도는 불교의 사상에서 계승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처님 입멸 후에도 승단은 부처님께서 제정한 회의법을 따르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점차 서로 다른 유형의 회의가 많이 생겨났다. 예를 들면 승단은 내부적으로 회의를 소집하여 공통된 인식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때론 신도와 함께 사부대중이 함께 참여하는 회의를 가지기도 한다.
부처님 입멸 뒤 제자들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오래 이어지도록 연이어 부처님의 교법을 정리하고자 여러 차례 결집을 가졌다. 제1차 결집은 부처님 입멸 뒤 첫 여름(기원전 485년경)에 마하가섭 존자를 상좌로 모시고, 아난존자가 교법을, 우팔리 존자가 계율을 소리 내어 암송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칠엽굴七葉窟에서 제1차 결집을 할 때 500여 명의 아라한이 참여하였으므로 ‘오백 결집’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후로 ‘바이샬리(毘舍離) 결집(또는 칠백 결집)’, ‘대중부 결집(또는 국외결빕窟外結集)’이 있었으며, 마가다국 화씨성(華氏城: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였던 파탈리푸트라p.taliputra. 오늘날의 파트나 인근)에서 거행된 ‘제3차 결집’과 부처님 입멸 후 400여 년 뒤에 이루어진 ‘제4차 결집’까지 결집 때마다 대중의 의견대로 결정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것은 불교의 민주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