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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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법회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지난 호까지는 주로 재가 불자들을 독자로 예상하고 글을 썼다. 그런데 이번에는 출가 불자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대승불교를 추동하는 신앙운동의 구성원은 크게 둘로 나눈다. 하나는 출가자이고 하나는 재가자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사찰(절)이 하나 있으면, 그 곳에는 두 구성원이 있으니 스님들과 신도들이다. 삼보를 믿는다는 점에서는 스님들도 신도이기 때문에 용어 사용의 혼란을 피해, 출가 불자와 재가 불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대승의 정신과 역사에도 부합한다. 재가자는 재가자대로, 출가자는 출가자대로 고유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대승정신 실천과 전파에 협력해왔다.


2.
출가자와 재가자가 만나는 공적 현장이 법회이다. 필자의 경험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나는 1994년부터 연세대학에서 교편을 잡아 이때까지 화엄철학, 선불교, 중국철학사 분야를 강의하고 있다. 1994년 3월에 동경대학 중국철학과에서 화엄학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했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종종 법사 초청을 받았지만, 내가 제시하는 조건이 좀 까다로워 성사되지 못했다.
그 조건은 이렇다.
첫째, 불경이나 고승들의 문헌자료를 토대로 그것을 우리말로 읽고 해설하는 법회의 법사를 하겠다. 그 이유는 불조의 말씀을 중심 삼겠다는 것이다.
둘째, 반드시 불공을 드리는 과정 중에 법회를 하게 해 달라. 그 이유는 철학 내지는 사상으로 지식만을 다루는 강의를 법당에서 할 이유를 나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절의 모든 행사들 중에 법회를 제일 우선으로 해 달라. 그 이유는 각종 제사 및 연례적 기도를 한다고 법회 시간이나 인원을 빼 가는 그런 들러리 법회의 법사는 안 하겠다는 것이다.
넷째, 불공의식은 우리말로 해달라. 그 이유는 못 알아듣는 법회의 법사는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이상의 조건을 다 들어준 곳이 관악산 성주암 일요법회였다. 2001년부터 매월 첫째·셋째 일요일 11시~12시를 기해, 2018년 12월까지 해왔다. 위의 조건 중에서 첫째의 조건은 사실 내 쪽의 약속이니 성주암 쪽에서는 부담이 없었다. 둘째와 셋째의 조건은 성주암에는 이미 그런 전통이 있으니 어려울 것이 없었다.
문제는 넷째인데, 당장은 어려우니 점차적으로 그렇게 하자고 기대하면서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 과도기적인 방법으로 법회시간에 경전을 해설하는 틈에 수시로 재가 불자들에게 재래의 한문 불공의식을 가르쳤다. 의미도 해설해주고, 짓소리, 홑소리, 때로는 염불소리도 연습시켰다. 송주성, 거불성, 유치성, 가영성, 송자성, 고아게성 등등 말이다. 한글로 안 되니 한문을 재가자들도 배워 알아듣는 불공을 드리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돌아보면 결국 우리말 불공의례는 못하고 18년간의 성주암 법사 직책을 내려놓았다. 일요일을 온전하게 내 시간을 갖고 싶어서 그랬다. 나 자신에게도 수련이 되는 참으로 은혜롭고 의미 있는 세월이었다. 주지 스님과 여러 불자님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선한 불자 공동체이다. 불법이 생동하는 도량이다.


3.
그런데 인연의 고리란 참으로 강한 것이었다. 내가 봉선사 월운 강백께 인연 되어 불교학에 입문하게 된 사연은 알만한 분들은 다 아는 일이다. 여기서 다시 말하지는 않겠다. 봉선사 말사인 보광사의 주지로 월운 강백의 손자 상좌가 부임했다. 보광사 일요법회를 발전시켜보겠다며 법사를 제안했다.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였고, 또 위에서 든 네 조건을 다 들어 준단다. 게다가 그 절의 주지는 공심이 있다. 나도 여러 번 겪어보았고, 남들이 하는 말도 내 귀에 들렸다. 월운강백 망백기념 문집(『월운당가리사』, 조계종출판사, 2018년) 집필에도 내게 용기를 준 장본인이었다.
결국 그 인연들의 힘에 끌려, 또 내 속에 간직된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조건’이라는 강한 업의 힘이 발동되고 말았다. 첫째 일요일은 주지 스님이 반드시 담당하는 조건으로 둘째·셋째·넷째 일요일은 내가 맡기로 했다. 이번에는 첫 시작부터 우리말로 된 『일요법회요집』(신규탁 편·인묵 스님 감수, 중도출판사, 2019)을 인쇄 보급했다.
이리하여 평소 필자가 조건으로 하는 네 가지 조건이 ‘외형’은 갖추어진 셈이다. 이제는 ‘내용’이다. 첫째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내 몫이니 내가 노력할 일이다. 둘째와 넷째는 우리말로 된 『일요법회요집』 대로 진행하니 역시 충족되었다. 특히 둘째는 그렇다. 그런데 넷째의 의례 절차와 ‘소리’는 맞추어가는 단계인데, 집전하는 부전 스님도 참석하는 재가 불자들도 입에 익어지지가 않는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모두 노력하고 있으니 곧 장엄하고 여법하게 될 것이다. 법회 때마다 연습을 시키는데 잘들 따라주어 고맙다. 어려운 문제는 셋째이다.
성주암의 경우는 음력 재일기도(약사재일, 지장재일, 관음재일, 초하루, 보름)가 만약 일요법회와 겹치는 날이면, 일요법회를 오전에 마치고 오후에 진행했다. 그런데 보광사의 경우는 지금 주지 이전에는, 재일기도가 우선이고 일요법회는 나중이었다.
보광사는 전각이 매우 많은데, 그동안 각종 기도는 주로 대웅전, 관음전, 지장전, 응진전에서 해왔다. 결국 작년에 부임한 현 주지 스님이 용단을 내렸다. 각종 재일기도는 전각별로 10시 00분~11시 00분에 마치고, 10분간 이동하는 시간으로 쓰고, 11시 10분이 되면 모두 설법전으로 모이도록 조정했다. 일요법회는 설법전에서 10시 30분에 시작하니, 한글의례로 ‘축약된 공양의례’를 올리면 약 40분이 걸린다. 11시 10분에 경전 강론이 시작되니, 산중의 전체 재가자들이 법사의 ‘강론’을 듣기 위해 설법전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물론 각 전각에서는 재래의 한문으로 ‘온전한 공양의례’를 올린다.
음력 사용이라는 옛 전통을 아직 어찌하지 못하는 불교계 전체의 현실을 향후 어찌 해야 할지, 큰 숙제이다. 하루 빨리 종단적으로 대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일단은 과도기적으로 시간대를 나누어서 진행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할지…….


4.
의례의식의 한글화 물결은 이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불경의 한글화도 마찬가지이다. 봉선사의 운허와 월운 양대 강백께서 선구를 여셨다. 문제는 각 개별 사찰마다 언제 도입할 것인가 시기의 문제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중심 삼아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데에, 지금처럼 전달 효과와 이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한문으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한문은 전문 극소수 연구자의 몫이다. 한글화를 하려는 주지 스님을 위해 필자의 그간 경험을 나누어보려 한다.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첫째, 일요법회에 전용하는 한글의례집을 채택해야 한다.
이때에 반드시 각 사찰이 속한 종단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한 한글 의례를 사용해야 한다. 조계종의 경우는 이것이 마련되었으니 그것을 따르면 되겠는데, 문제는 주지가 4년마다 교체되니 차기 주지의 인수인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전임 주지가 한글로 시작했는데 후임 주지가 이것을 다시 되돌리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그런 면에서는 주지 임기가 거의 보장된 사찰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둘째, 중심 되는 경전을 고정해야 한다.
재가 불자들은 생업 종사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그러니 절에 있는 출가 불자가 재가자들을 위해 그들에게 필요하고 우선적인 경전을 선택해서, 그들을 위해서 연구하고 강의해야 한다. 각 종단마다 소의경전이 있으니 그것으로 하는 것이 명실상부하다. 그것을 우선으로 하고, 부수적으로 한 두 경전을 하는 것이 좋겠다. 법사의 설법이 신변잡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검증도 안 된 설익은 소리는 더욱 위험하다.
당연, 법사 역할은 주지가 해야 한다. 과도기적으로 불교학을 전문으로 연구한 재가의 박사들이 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주지도 한번 이상의 일요일을 담당해야 한다. 재가 법사에게만 맡기면 신앙과 괴리된 법회가 될 수도 있고, 또 해당 사찰 주지의 재가 불자 신앙지도 방향과 엇박이 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대중의 화합이 깨지고 신행의 효과가 떨어진다.


셋째, 의식을 집전하는 스님들에게 한글 염불을 숙련시켜야 한다.
염불의 생명은 박자이다. 박자는 호흡과 밀접하고, 호흡은 결국 삼매 체험과 연결된다. 또 염불은 현장성이 중요하다. 때문에 집전하는 사람은 대중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법당 내의 사물〔목탁, 요령, 북(태징), 종〕의 강약과 박자를 다루어야 한다. 전각이 많은 사찰의 경우는 반드시 전각별로 부전을 말뚝으로 정해두고, 그들 중에서 의례를 여법하게 배운 지전을 추대하여, 지전의 지휘 아래 수시로 모여 각종 소리를 연습하여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