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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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명 밝혀 일체 중생을 살펴야

지금 여기 스스로 사유하는 자 누구인가
문수보살을 관상 하네
일체의 법 두루 살핀 붓다의 법
보리심의 씨앗 피워 지혜광명 비추어
중생의 선업 진실로 수희 찬탄 하리라
오로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함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붓다를 성취하도록 하소서.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초발심을 떠올려 봅니다. 중생을 향했던 마음자리를 다독여 봅니다. 내 양 손위에 놓인 자등명 법등명의 심지를 바르게 세워 봅니다.
월칭 보살께서는 입중론에서, ‘암라 열매와 같은 지혜의 빛으로 광명을 밝히는 이여. 삼계가 본래 생함이 없음을 알아 오로지 멸제로 나아가라. 항시 멸제에 속한 선정으로 중생에게 연민의 마음을 일으켜라. 세속과 진여의 양 날개를 펴 붓다를 성취하신 공덕의 바다, 그 피안으로 향해야 하리라.’ 라고 권고 하셨습니다.
연민이란 승리자의 결실이며 붓다의 씨앗입니다. 바른 수행자는 가장 먼저 최승의 자비심을 찬탄합니다. 일체 중생에게 위신력을 발하여 보리심의 꽃을 피우는 이는 오로지 이로운 마음으로만 보살행 위에 섭니다. 더불어 과거 선지식의 귀한 논증을 통해 우리는 삼라만상의 이치를 심오하고 광대하게 해석합니다. 월칭 보살께서는 논서를 통해 불호 보살의 논서를 재 증명함으로써 심오한 공성의 논리를 확고히 바로 잡았습니다. 역대 나란다 승원 논사의 완고함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참되고 귀한 말씀을 사사 받게 되었습니다.
티베트불교에서는 백여 권의 경서와 이백여권의 논서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티베트불교에 귀의한 이는 이 경과 논서를 항시 참구하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보살계를 수지함에 있어서는 지계품을 항시 그 저본으로 수행의 뼈대로 삼습니다. 번잡하다 느끼는 우리의 일상에서 지계를 유념하기 위한 방법으로 입보리행론을 가까이 하면 도움이 됩니다.
무지의 일체 습기를 제거하신 분을 일컬어 붓다라고 명합니다. 붓다를 중심으로 천신의 모습을 한 여덟 보살님과 가섭을 위시한 칠대 붓다를 비롯하여 나란다 승원의 열일곱 논사를 향하여 항시 공경하는 마음을 내도록 합니다.
칼라차크라 수행자 등 금강승 수행자는 불교 수행자의 일부에 해당합니다. 개개인의 근기와 성향에 따라 법을 수용하는 데는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현교는 보다 대중적인 반면 밀교는 소수를 그 대상으로 합니다. 수행자의 기 맥 정의 운행 정도에 따라 밀교 수행자의 근기를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 차별된 금강승만의 법을 수행하는 이들입니다.
외도의 수행법과 차별되어 금강승 수행자가 공성 본연의 삼매에서 느끼는 구생의 환희심이 있습니다. 좌우의 정맥으로 혈이 들어가 구업이 정화됨으로써 보신을 완비하는 능력을 성취합니다. 법의 지도를 든 스승의 인례를 따라 스라와스티를 받음으로써 전신을 정으로 채웁니다. 이때 정수리로 흘러 들어온 정의 희열을 오롯이 느끼며 지혜를 성취합니다. 이러한 비밀관정 수행법은 세속인의 거친 기심의 상황에서 크고 작은 오해를 일으킵니다. 때문에 스승이 반드시 필요하며 수행자의 근기는 점검 되어야 합니다.
무상을 거듭 사유하며 거친 공성을 아무리 닦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소지장은 쉽게 제거되기 어렵습니다. 제 7식의 습기 의식은 무척 거칠기에 대상의 무자성을 깨우치기란 쉽지 않습니다. 실제 하는 습기는 과연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요? 공성을 직접적으로 지각한 미세한 기심으로써 정광명을 필요로 합니다. 좌우의 맥이 중맥으로 들어가 거친 오감을 통한 식과 기운이 멸하였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심오하고 광대하여 원만 무애한 관정을 받아 수행의 길에 들어선 이에게 정광명이 발현됩니다. 마침내 의식의 소지장이 제거 되었기에 구생의 희열을 느낍니다. 허물의 습기가 제거 되었기에 금강지불과의 인연이 성립됩니다. 대상과 주체가 구별이 없는 하나가 되었기에 색신과 법신의 구분이 없는 붓다를 성취합니다. 세세생생 붓다의 모든 의중을 두루 헤아려 진실한 신심으로 귀의하였기에 일체 중생을 위하는 성불을 이룹니다.
“옴 아라 바자나 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