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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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관리법(7)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지난호에 이어서>
수 년 동안 해마다 설날에 거행되는 분재전시회는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분재에게 무대를 제공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예불하러 오시는 신도들에게도 마음과 눈이 즐겁고 불광산이 더없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증 선생은 불광산에서 분재가 전시될 때 참관하러 온 사람들 숫자가 그들이 1년간 전시할 때 왔던 숫자보다 더 많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분재전시회 하나가 여러 사람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고, 향리 주민과의 거리도 점차 좁혀주었습니다.
저도 인사관리의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타인을 돕다 보면 뜻밖에도 어느새 제 자신 역시 편리함을 얻게 됩니다. 저는 서로 모두가 기쁜 것이 가장 좋은 관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매결연 사찰
수십 년 전 정부는 외교를 확대하기 위해 많은 도시와 다른 도시들과의 자매결연을 추진하고, 많은 단체와 외국 단체들과의 자매결연을 추진했습니다. 저는 이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두 국가·두 도시가 마치 자매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당신은 동방에 있고, 저는 서방에 있으니 더 많은 왕래를 위해 우리도 자매결연을 합시다. 중국 고대에 유비·관우·장비가 의형제를 맺으며 맹세한 ‘도원결의’가 천 년을 전해 내려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악비岳飛와 탕회湯懷·장현張顯·왕귀王貴·우고牛皐가 의형제를 맺고 송나라의 강산을 수호하는 데 합심협력한 일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민간소설에서는 『칠협오의』나 『수호전』처럼 단결하기 위해 형제자매로 맺어져 서로 돌봐주고, 더욱 우의를 나누며, 자주 왕래하고, 역량을 배가시킵니다. 이것도 관계를 관리한다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통도사通度寺는 한국에서 가장 큰 가람 중 하나입니다. 몇 천 헥타르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특히 부처님의 금란가사와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에 불보사찰이라 부릅니다. 이미 1,500년의 역사를 가진 그들은 당시 주지스님이셨던 성파性波 스님과 영축총림 방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셨던 월하月下 큰스님과 상의한 후, 불광산과 자매결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 개산한 지 겨우 30년 밖에 안 된 불광산은 언감생심 유구한 역사와 한국 제일 대가람과 자매결연은 생각도 할 수 없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성파 스님께서는 “우리가 비록 유구한 역사를 지니긴 했지만 이미 늙고 쇠약하여 이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기 힘듭니다. 불광산은 새롭게 시작하는 도량이고, 교육·문화·자선 등을 운영하는 홍법이 모두 시대를 앞서가고 있습니다. 역사를 간직한 도량이 현대적 도량과 함께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라 하겠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감복한 저는 1982년 10월 23일 가오슝시 중정문화센터(中正文化中心)에서 자매결연 의식을 거행했고 5,000명 이상이 함께 했습니다.
자매결연 후 한국의 신도들도 끊임없이 불광산을 방문하고, 불광산의 제자들도 한국에 가서 많은 환대를 받았습니다. 특히 불광산이 서울에 도량을 건립할 때도 그들이 많이 보살펴 주었습니다. 유학생 의은依恩 스님과 다른 제자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그들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에는 기꺼이 타인과 협력하고 왕래하며, 기꺼이 서로 인정하면 우의가 생기고 역량은 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두 나라도 협력 단결할 수 있는데, 양안(兩岸: 중국과 타이완)의 동포는 왜 이처럼 분열되어야만 합니까? 춘추오패春秋五覇·전국칠웅戰國七雄·삼국연의三國演義·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수당오대隨唐五代·군벌軍閥의할거 등, 중국인은 분열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도 되는 겁니까?
현재 중국과 타이완 양안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어느 당파에서는 중국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생각한다니 정말 생각조차 못 할 일입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 인정하고, 민족과 민족 간에도 인정하고, 국가와 국가 역시 서로 인정하고 왕래해야 상호 간의 역량이 증가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분열은 반드시 쌍방 모두가 상처를 입는 지름길입니다. 우리 모두는 염황(炎黃: 염제 또는 신농씨와 황제黃帝. 중국인들의 시조로 받들어짐)의 자손이니, 양안이 일가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기를 희망입니다.
한국 통도사와의 자매결연이 전통과 현대의 결합이라면, 태국 담마가야(法身寺)와의 자매결연은 남전불교南傳佛敎와 북전불교北傳佛敎의 결합입니다. 비록 신앙적으로 역사와 배경, 교육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부처님의 제자이자 모두 부처님 믿는 사람들입니다. 다 같은 불문의 제자인데 협력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협력할 수 있으면 화목할 수 있고, 화목할 수 있으면 쌍방이 모두 승자입니다. 관리를 알면 쌍방이 모두 승자입니다.
관여치 않는 관리에서 자연스럽게 질서가 생긴다
항상 사람들은 제게 “불광산의 출가제자가 천여 명인데, 모두가 함께 생활하며, 인아人我의 다툼이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모두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는 대사님의 관리방식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사실은 저도 관리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 다만 진정한 문제의 원인은 모두 인아를 분별하고 대립하기에 분쟁이 생겨난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광산에서 입도한 제자에게 인아 관계가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대사형·둘째 사형·셋째 사형이란 이런 분별을 하지 않고, 너의 제자·나의 제자·그의 제자라는 규칙을 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분별은, 스승 된 자는 비록 분쟁이 없더라도 그의 제자는 분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분이 나의 스승이다, 저 분이 나의 스승이다 이렇게 분별하기 때문에 본래 아무 일도 없다가도 너의 것이니 나의 것이니 하는 명분으로 인해 분쟁을 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자를 받아들이는 초기에 한 가지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제자는 개인의 소유가 아닌 불교의 소유이자 모두 불제자입니다. 3할은 사도師徒 관계이고, 7할은 도반 관계이며, 모든 제자는 개인적으로 제자를 받는 전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代’라는 제도는 있습니다. 모두를 일대, 이대, 삼대로 나눕니다. 예를 들어 처음 백 명에서 이백 명까지는 일대, 삼백 명에서부터 사백 명까지는 이대인 것이고, 오백 명에서부터 육백 명까지는 삼대인 것입니다. 이대인 제자는 일대와 분쟁할 수 없고, 삼대인 제자는 이대와 분쟁할 수 없습니다. 분명 선후의 윤리가 존재합니다.
“먼저 들어온 자가 사형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불광산에서는 ‘자慈’자 항렬, ‘의依’자 항렬, ‘영永’자 항렬처럼 그들의 항렬자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대 한 대를 관리하면서 질서가 생겨나고 제도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너와 나를 나누지 않고 법에 의존해 대중을 통솔하고 다스리고 있습니다.
관리학 면에서 관여치 않는 관리에서 자연스럽게 질서가 생긴다 합니다. 그래서 불광산의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질서가 있습니다. 누가 상중전上中前에 자리하든지 언제나 질서가 있습니다. 인아 간에는 자연히 존중하고 의좋게 지냅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분쟁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인사에 관하여 관여하지 않으면서 관리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