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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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사랑만이 등불이라

달라이라마, 6월 1~2일 양일간 사가다와 특별 법회 법문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내면의 힘을 증장하는 비결


티베트불교 사가다와(티베트력으로 음력 4월 15일은 부처님오신날인데, 이날을 기점으로 앞뒤로 보름씩 한 달간 열리는 축제) 한 달은 대다수 불자들이 의미 있는 채식을 한다. 신성한 이 기간은 새벽부터 사원이 붐비고 버터 등은 종일 불을 밝힌다. 사원 밖 꼬라 길은 히마찰 주를 넘어 찾아든 넝마를 걸친 걸인들이 줄지어 보시물을 기다린다. 매달 6월 첫 주는 오랜 티베트불교의 전통에 따라 학생과 학인을 위한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6) 성하의 특별 법회가 열린다. 지난 6월 1~2일 양일간, 다람살라 남걀사원의 축라캉 남걀사원 광장은 1만여 불자들로 야단법석을 이뤘다.


얼마 전 나의 도반 꾱라 라또 린포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라또사원은 나에게 만달라를 권청하였습니다. 린포체께서 어서 빨리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 사원에서 대중에게 제공하는 빵과 차 그리고 승가에 올리는 금전적 보시 모두 라또사원에서 설판제자를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본인 달라이라마는 키롱 조우 붓다의 상과 두 분의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포탈라 사원의 방에서 명상하기를 즐겼습니다. 인도로 망명하여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티베트 캄의 전사 츄시강둑과 사원의 승려들이 뜻을 세워 키롱 조우 붓다를 은밀하게 티베트에서 이곳으로 모셔왔습니다. 마침내 네팔을 거쳐 다람살라에 도착하였을 때 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다람살라에 망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라사의 조캉사원을 방문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다섯 가지 특징을 가진 자아 발현의 관세음으로 알려진 마하깔루 상과 마주 하였습니다. 마치 나에게 윙크를 하며 손짓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그를 안았고 그는 미륵에게 바치는 기도의 한 구절을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연한 인내력을 통해
평온에 머물러
법력에 의지한 채
나태함에 빠지지 말고
결연한 마음 자세로
정진하는 바라밀을 완성하라.


서로의 신뢰와 사랑이 확고하다면 저의 법어를 듣는 제자와 제가 그 아무리 멀리 있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6년간 고행을 통해 성불하셨습니다. 오롯이 당신이 듣고 사유하며 수행한 경험을 근거로 하는 법어를 설하셨습니다. 또한 붓다의 가르침 역시 금을 다루듯 면밀히 살피라 제자에게 항시 당부하셨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혼란스럽습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많은 이들이 평온을 찾으려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의 관계가 모나지 않도록 다듬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제 종까파께서 공성의 본래 이치를 논하시며 상호 의존하여 연기하는 일체 존재함의 찬사를 노래하신 바 그 중도의 지혜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이 인간의 몸을 어떻게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생을 사는 생명 지닌 동물 가운데 인간의 몸을 받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욱이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중생의 업은 그 아무리 신성한 물로 씻으려 해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법의 이치란 몸소 체득해야 하는 무엇입니다. 붓다께서는 오직 자비심으로 중생에게 깨달음의 이치를 설하셨고, 무릇 제자는 이를 사유하여 바르게 실천해야 합니다.
중도의 6장에서는, 사물이 본래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 인해 일으키는 논리적 오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존재한다는 바의 의미가 공허와 대치되는 관념이라 여기는 것에 주의를 시킵니다. 관습적인 진리는 이성적인 마음의 분석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현상의 절대적 인과 관계는 부정될 수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변화하지 않는 것이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샨티데바의 말씀을 기억해 봅시다.


세상에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에 대한 열망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열망 때문에 그러하다.
자신의 행복을 남의 고통으로 바꾸지 못하는 사람에게 붓다의 성취는 절대 불가능하다.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있는가.
나의 안락을 상대의 아픔과 완전히 바꾸지 않는다면, 이생의 안락이란 없다.


연기의 도리를 찬탄합니다. 붓다께서 이루신 성취에 귀의합니다. 의존하여 연기하는 일체의 끊임없는 윤회에서 무지의 본성, 그 뿌리를 보고 무상의 도리와 그 방향을 발견하세요. 논리적 분석을 통해 오고 감의 분별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중도의 문에 들어섬이 증명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