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컬럼니스트, 번역가

부처님께서 80평생을 마치고 사바세계를 떠나신 지 2553년이 지났다. 봄소식과 함께 올해도 어김없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았다.

이날을 맞아 평소 궁금하게 여겼던 것 몇 가지를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화는 가상(假想) 인드라 망을 이용해 이루어졌다.

 

李 : 반열반에 드시던 순간까지도 중생 제도를 멈추지 않으셨던 부처님이시니 혹 제가 여쭙는 내용이 마음이 들지 않으시더라도 널리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시리라 믿습니다.

佛 : 그대도 잘 알겠지만 나는 상대의 출신 성분이나 나이 등을 따져서 만나거나 만나지 않은 적이 없소. 120살이 된 노인이나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나, 이교도이나 관계하지 않고 언제든 만나 진리를 전하였소. 그러니 그대가 하는 말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그럴 일이 없소.

 

李 : 부처님께서는 당시 바라문들이 제사장을 세습하며 대중들을 속이는 행위를 비판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불교계에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고 가르치기보다는 갖가지 명목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정초가 되면 전국의 절에는 “올해 운수를 봐달라!”는 신도들이 넘쳐나고, 입춘과 동지가 다가오면 부적을 나누어주는 것이 정례 행사가 되었습니다. 절에서 스님이 사주(四柱)를 봐주는 것에 대해 일반인들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을 정도로 ‘불교 = 사주팔자’라는 상식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불교는 그것이 “불교인지, 아니면 힌두교나 샤머니즘인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하였습니다. 부처님,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혹 부처님께서는 답을 알고 계십니까?

佛 : 나도 그것이 답답하기 짝이 없소. “제사를 잘 지낸다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다”고 그토록 자주 가르쳤건만, 내 제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왜 이렇게 제사에 매달리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답은, “그것이 내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것이오. 이렇게밖에 답을 할 수 없는 내 마음을 이해해주기 바라오.

 

李 :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훌륭한지 아닌지는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자신의 행위에 따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장이셨지요. 그런데 지금 부처님 제자들은 오히려 신분과 계급 제도를 옹호하는 듯합니다. 심지어 출가 햇수에 따라 가사를 구별해서 입는 제도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막 출가하셨을 때조차 거대 왕국의 왕 앞에서도 당당하고 의연하셨습니다. 이 모습에 감동한 대왕이 “나중에 깨달음을 성취하시면 저를 제도해 주십시오”라는 당부를 드리기까지 하셨지요. 그런데 오늘날 부처님 제자들은 바깥세상의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요?

佛 : 나 또한 이렇게 변할 줄은 미처 몰랐소. 내 제자들 숫자가 많아지면서 예상치 않았던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교단 제도를 만들게 되었고 그에 따라 교단 내에 위계가 생기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을 것 같소만, 수행자들이 입는 옷을 차별해서 입게 한다는 발상은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구려. 본래 수행자에게 옷이란,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고 눈비와 바람을 막고 추위를 견뎌내는 데 필요한 것 아니겠소?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계급 표시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지 나도 답답하다오. 바깥세상의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제자들이 있고, 심지어 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제자들까지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런데 이 또한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구려. 혹 이런 일이 너무 심해져서 말법(末法)시대로 가는 일정이 당겨지지 않을까 걱정할 뿐이오.

 

李 : 부처님께서는 율(律)이 깨진 교단은 살아남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반열반에 드실 때 ‘부처님 열반 후의 일’을 여쭙는 제자에게도 “내가 가르친 진리인 법(法)과 승단의 규율인 율(律)이 내 빈자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불교에서는 율의 정신이 사라지고, 심지어 “무엇이 부처님 제자가 지켜야 할 율인지?”에 대해서도 무지하기 짝이 없습니다. 금이 가고 깨져서 물이 새는 질그릇처럼, 계율이 무너진 승단의 존립이 위험한 상황에 있습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 정해주신 율이 이렇게 무시당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아니면 혹 부처님께서 율을 잘못 제정하셔서, 제자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을 담아놓으셨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지금 제자들에게 문제가 많은 것일까요?

佛 : 나는 그 당시 실정에 맞는 율을 정했다고 지금까지 확신하고 있소. 그리고 그때 율의 여러 항목을 정했던 정신이나 의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오. 문제는 그것을 쉽게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게 분명하오.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는 맙시다. 세상 모든 일에 높낮이 주기가 있으니, 우리 교단에도 다시 계율이 청정한 훌륭한 이들이 많이 나와 모든 것을 바르게 잡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오.

 

李 : 부처님께서 여성 출가를 받아들이면서 이른바 <비구니팔경계법>을 정해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후대에 덧붙여진 내용’이라는 가설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 <팔경계법>이 부처님께서 직접 제정해주신 것이든 후인들이 부처님을 가탁해 만들어낸 것이든 상관없이 이것이 남녀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세계 여러 곳의 불교 교단에서 다른 계율은 존재조차 모르거나 아예 무시해버리면서도 이 <팔경계법>만은 귀중한 보물처럼 받들어 모시며 비구니 출가를 용인하지 않거나 비구니에 대한 차별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삼고 있습니다. 부처님, 2,500년이 흐른 지금 부처님께서 바라보시는 교단 내 여성의 지위는 어떤 것인가요? 여성에 대한 차별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佛 : 비구니 출가를 허락하면서 정말 많이 망설였소. 그것은 여성을 차별해서라기보다는, 여성을 보호해야겠다는 뜻이 강했었기 때문이오. 요즈음도 치안이 불안한 곳에서는 여성들이 마음 놓고 외출을 하거나 여행을 다닐 수 없는데, 그 시절 인도 땅에서야 어느 정도였겠소? 자칫 잘못하다가는 곳곳에서 큰 문제가 생겨날 것 같아, 망설이고 망설였던 것이오. 그래서 여러 조건을 붙여서 가능한 여성 출가를 어렵게 했던 것이오. 그런데 여성에 대한 보호를 위해 만들었던 제도가 요즈음은 그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구려. 하지만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고 태어났다. 여성 또한 수행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은 내 제자 비구니들이 남긴 『테리가타(長老尼偈)』에 증거로 남아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