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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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익을 잃지 않는 삶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통도사 주지
   구룡사 회주


산과 들에 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벌써 꽃망울을 터트린 뒤 지는 꽃도 있고, 이제 막 꽃대를 올리고 있는 꽃들도 있습니다. 그 꽃들을 바라보면서 불현듯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큰 사랑과 자비심으로 마음을 두드려도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이 굳게 닫혀 있으면 소용이 없겠구나.󰡑
꽃들이 아무리 예쁘게 꽃망울을 터트리고 봐달라고 해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이 번잡하다면, 꽃이 꽃으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정스님의 열반소식이 알려지자 세상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합니다. 스님께서 끝마무리를 잘 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이 맑고 향기로운 삶과 모습을 그만큼 갈구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오탁악세의 현실에 대한 거부감이, 그래서 맑고 깨끗한 삶의 마무리가 기다려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맑고 깨끗한 삶을 갈망하고 인생의 끝마무리를 잘하도록 살아가는 것이 불자들이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지 20년쯤 지난 어느 날 왕사성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 비구들이여, 이 대중 가운데서 누가 능히 나를 위해서 십이부경(十二部經)을 받아 지니고 좌우에서 필요한 일을 공급하여 주며 그러고도 자기의 좋은 이익을 잃지 않겠느냐』
이에 최초의 부처님 제자인 교진여(驕陳如)가 대중 속에 있다가 앞으로 나오면서 대답했습니다.
『제가 능히 부처님 가르침을 받아 지니며 좌우에서 시봉하면서 그러고도 자기의 이익할 일을 잃지 않겠나이다.』
교진여는 부처님께서 유성출가(踰城出家)해서 설산수도 하실 때 아버지인 정반왕(淨飯王)이 태자의 안위가 걱정이 돼서, 요즘 말로 경호 차원에서 다섯 명의 시자를 보냈는데,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진여는 부처님과 함께 수행을 하게 됐는데, 부처님께서 고행을 멈추고 수자타라는 여인으로부터 유미죽 한 그릇을 공양 받아 드시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서 타락했다며 떠났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에 게의치 않고 유미죽으로 기력을 회복하시고 네란자라 강물에 목욕을 하신 뒤, 한 그루의 보리수 아래 길상초를 깔고 가부좌를 하신 채 칠일칠야 동안 선정에 들어 깨달음을 이루신 후,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교진여를 비롯한 다섯 비구를 찾아가 최초로 설법을 해주셨습니다.
그 스님이 부처님을 모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교진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진여여, 그대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할 터인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겠는가?』
부처님께서 이렇게 되묻자, 이번에는 사리불(舍利弗)이 또 나서서 말했습니다.
『제가 능히 부처님의 온갖 말씀을 받아 지니며 필요하신 대로 시중을 들겠사오며, 그러고도 스스로의 이익한 일을 하는 것도 잃지 않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사리불이여, 그대도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고자 하는가?』
이렇게 묻고 대답하기를 계속했는데, 결국에는 그 자리에 모인 오백아라한(五百阿羅漢) 모두의 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때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目連尊子)가 선정에 들어서 부처님 가까이 다가가 보니까, 부처님이 사촌동생인 아난(阿難)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십대제자들과 상의한 끝에, 함께 아난을 찾아가서 얘기를 합니다.
『아난존자여, 스님은 내 말을 듣고 부처님을 모시면 큰 이익을 얻을 것이오.』
그러나 아난은 처음에는 싫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십대제자들의 간곡한 권유가 계속되자, 그들을 향해 정중히 무릎을 꿇고 앉아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러 스님들이시여, 일이 그러하시다면, 꼭 내가 해야 된다면, 부처님께서 나의 세 가지 청을 들어주시면 스님들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십대제자들이 그 세 가지 소원을 물으니 아난이 다시 대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설사 낡은 옷을 주셔도 저는 받지 않을 것이며, 부처님께 시주가 별청을 하였을 때에 따라가지 않을 것이며, 저의 출입에 일정한 시간이 없음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 얼마나 간곡하고 겸양이 묻어 있는 멋들어진 대답입니까?
아난은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니, 부처님 옆에 있으면 옷을 입더라도 좋은 옷 얻어 입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을 할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는 천을 손수 짜서 입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부처님께 옷 공양이 들어오면 아마도 좋은 옷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난은 그것을 이미 간파하고, 나아가 한 수 더 떠서 부처님이 입다가 헤진 옷이라 할지라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덕을 보기 위해 곁에 있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부처님께서 시주 집에 별청이 있게 되면, 시자로서 부처님을 모시고 가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물론 별청으로 공양을 받게 되면, 평상시의 공양보다 진수성찬이 차려질 것은 당연하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자리는 안 가도 용서를 해주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나의 출입이 일정한 시간이 없음을 허락해 달라는 것은, 시자로서 부처님을 제대로 보필하려면 시와 때를 가려서는 제대로 시자노릇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때고 부처님을 보필할 수 있도록 시간과 경계의 제약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교진여 등 500명의 스님들이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들이 아난에게 가서 권했더니 세 가지 소원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들어주시면 대중의 뜻을 따를 것이고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부처님께서 거절하시면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지혜가 구족해서 미리 혐의 입을 일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의식주를 위해서 부처님 시중을 드느냐? 하겠으므로 먼저 낡은 옷일지라도 받지 않고 별청에도 따라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아난은 지혜를 구족하였으니 들고나는 시간이 한정되면 사부대중을 위하고 사부대중의 이익을 구하는 일을 널리 지을 수 없으므로 출입하는 시간이 제한되지 않기를 구하는구나.』
그렇게 해서 부처님의 허락을 받아 아난이 시봉을 하게 됐는데, 아난의 부처님 시봉은 처음 약속한 세 가지를 단 한 차례로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아난을 칭찬하신 것으로도 입증이 된다 할 것입니다.
『아난은 여덟 가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을 구족하였다. 한 번도 별청에 따라가지 않았고, 한 번도 나의 헌 옷조차 받은 적이 없고, 나를 시봉한 이후로 수시로 드나들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때 아닌한 번도나에게 온 적이 없고, 내가 왕이나 장자들을 만날한 번도그런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번뇌를 구족한 일이 없었다.』
아난의 여덟 가지 불가사의한 일이란 첫째, 아난은 부처님의 시봉이 된 이후 단 한 차례도 신도의 집에 별청으로 따라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부처님을 시봉한 이후로 부처님의 낡은 옷일지라도 단 한 가지도 받지 않았으며, 셋째, 아난에게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부처님 처소에 들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었는데도, 단 한 차례도 때가 아닌 때에 부처님을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부모자식 간에도 서로의 사생활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함부로 방문을 열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자식의 방에 들어갈 때에도 반드시 노크를 하거나 헛기침을 통해서라도 알리고 들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언제 누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대비를 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월하 노스님께서는 그러한 면에서도 철저하게 사셨던 어른이십니다.
월하스님께서 노환으로 누워 계실 때, 노스님 처소에 가서 다리를 주물러 드리곤 했는데, 그렇게 다리를 주물러드리다가 소스라치게 놀란 일이 있습니다. 발목의 댓님 매는 자리가 손에 잡힐 정도로 푹 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큰스님께서는 대중들을 조심스럽게 여기며 사셨다는 증거입니다.
넷째, 부처님을 시봉하다 보면, 지체 높은 사람, 돈 많은 부자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지만 절대 탐욕을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난도 탐․진․치(貪嗔痴) 삼독심(三毒心)을 완벽하게 떨쳐 내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도 단 한 차례도 거기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부처님이 그동안 말씀하신 법문을 받아 지니되 한 번 들은 것은 다시 묻지 않고, 마치 병에 든 물을 다른 병에 붓듯이 그대로 토설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요즘의 DVD나 녹음테이프와 같이 부처님의 말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아난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지혜인 타심통(他心通)을 얻지 못했음에도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시는 것은 항상 알아서,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실 때는 결코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곱째, 소원대로 할 수 있는 지혜인 원혜지를 얻지 못했음에도 사문의 네 가지 과보인 수다원과(須陀洹果)·사다함과(斯陀含果)·아나함과(阿那含果)·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으며,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덟째, 부처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덟 가지의 부사의한 일을 구족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드린 이유는 누가 사찰을 찾든 또 누구를 만나든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러고도 우리는 좋은 이익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에서입니다.
집에서 어머니로서의 노릇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궂은일 다 하는데, 그러고도 자기의 이익을 잃지 않아야만 합니다. 그 좋은 이익이 없는 사람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화가 나고 짜증나고 신경질이 날것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이익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인데 하물며 부모권속으로 맺어진 인연은 얼마나 지중하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조건이 없는 삶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무조건 사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할 짓입니다. 따라서 무조건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살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건 없이 살면, 그렇게 지혜롭게 살면, 그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무엇을 바라지 않아도 항상 좋은 이익이 함께 할 것입니다. 좋은 텃밭에 좋은 종자를 잘 가꾸면 거기서 좋은 결실의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극락가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복 받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성불하기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그 이익을 위해서는 중상모략 시기질투 권모술수를 써가면서까지 이루려고만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바로 하면 자연스럽게 깨달음의 자리도, 왕생극락하는 불국정토도, 복과 덕과 지혜를 구족할 수 있는 수행자의 덕목도 이뤄지는 것이니, 그래서 더욱 좋은 이익을 잃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발문1>
아무리 좋은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큰 사랑과 자비심으로 마음을 두드려도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이 굳게 닫혀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꽃들이 아무리 예쁘게 꽃망울을 터트리고 봐달라고 해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이 번잡하다면, 꽃이 꽃으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발문2>
조건이 없는 삶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무조건 사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할 짓입니다. 따라서 무조건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살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조건 없이 살면, 그렇게 지혜롭게 살면, 그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무엇을 바라지 않아도 항상 좋은 이익이 함께 할 것입니다. 좋은 텃밭에 좋은 종자를 잘 가꾸면 거기에서 좋은 결실의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