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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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신 온전할 때 민주정부 꽃 피우길

인도 다람살라 = 가연숙


옛말에 ‘인간은 태어날 때 주먹 쥐고 와서는 결국 죽음 앞에선 그 손을 편다.’는 말이 있다. 손을 꽉 쥐고 태어나는 것은 인간의 삶이 지닌 욕망과 탐착을 의미한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 순리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허튼 소리다.
엄청난 업력으로 인간 세에 태어나 그 과보를 지우고 또 다시 쌓으면서 주어진 업을 개척하며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이다. 실제로 삶을 영위하는 동안 내가 쥔 것을 타인에게 펴 보여 나눠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경쟁의 승패가 삶의 행복을 좌우한다고 교육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중동 지역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은 인권 그리고 자유가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반증했다. 민주화 운동이 정권 교체를 수반하면서 요르단(내각 총사퇴), 예멘(현 대통령 출마 포기), 이집트(대통령 사임), 리비아(내전) 등으로 확산되었고 마침내 중국의 쟈스민 혁명으로 그 불씨가 번지기에 이르렀다. 일련의 민중봉기는 지도자의 독재정권이 부른 빈부격차와 높은 실업난의 지속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분노였다.
그러나 여기 독재와 강압과는 반대되는 한 인물이 있다. 국민 모두가 “떠나지 말아 달라. 부디 우리 곁에서 숭고한 지도자로서 머물러 달라”며 말려도 굳이 본인은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사양하는 이가 바로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14대 달라이라마(텐진갸초, 76)다.
 
지난 3월 10일은 티베트민중봉기 52주년이었다. 이날 달라이라마는 다람살라 쫄라캉에서 내외국인과 함께 1959년 3월 10일 중국정부의 티베트 영토 강제 침공에 대항했던 티베트 국민들의 저항 시위를 추모하는 기념식에 참석했다. 달라이라마는 현재 중국정부의 통치하에 삶을 영위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현실을 토로하고, 중국정부의 티베트 환경 파괴 만행에 대한 권고에 이어 현재 북아프리카에 불고 있는 민주주의 인권 회복의 폭풍을 중점 거론했다.

같은 자리에서 티베트망명정부 수상(칼론트리파) 삼동린포체는 전 세계 티베트인들의 염원을 담아 부디 현 달라이라마의 위치를 변함없이 수행해 줄 것을 재차 간청하는 눈물의 호소를 보였다. 지난해 달라이라마의 미국 방문 이후로 달라이라마의 정치적 지도자 은퇴설은 세계 언론의 도마 위에 올라 왔다.  
그리고 3월 14일 달라이라마의 정치적 지도자 직무 존폐에 관한 확고한 결의가 담긴 총 7장의 서신이 티베트망명정부 국회 쟁점 의제로 올랐다. 이날 아침 10시(인도시각) 국회 회기에서 의장 뺌빠체링이 달라이라마의 서신을 대독했으며, 달라이라마는 민주정부 수립에 관한 확고한 최종 의지를 밝혔다.
같은 시각 달라이라마는 태국 불자들의 요청으로 티베트사원 쫄라캉에서 법회를 주관했다. 법회는 <37 보리도 자체>를 주제로 했으며, 달라이라마는 정치적 은퇴 혹은 티베트망명정부 현안에 대해 절대 거론하지 않았다. 달라이라마의 서신에 담긴 골자는 다음과 같다.
티베트 초대 황제 ‘냐티짼보’로부터 마지막 황제 ‘티렐빠짼’에 이르는 천년 역사를 거슬러 보면 티베트의 수도 라싸와 암도 그리고 캄 지역이 모두 화합된 지도력으로 당시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다. 7세기 ‘송첸캄보’ 황제에 의해 인도로부터 불교가 도입되었고, 9세기 마지막 황제기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권력이 점차 약화 되어 세 지역은 자치적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이후 13세기 몽골의 징기스칸이 티베트와 중국을 침략 점령하였고, 480년 간 내전의 역사를 거쳐 티베트의 국력은 점차 쇄락했다.

1642년 5대 달라이라마(롭상갸초)는 라싸와 암도 그리고 캄 지역을 하나로 통합한 중앙정부 시스템을 처음 구축했다. 이로부터 후대 달라이라마는 정신적인 티베트인들의 지도자임과 동시에 정치적인 지도자를 동반 수행하게 되었고, 국민의 복지가 증진되고 종교적 안정을 찾는 태평성대를 누렸다.
13대 달라이라마(툽텐갸초)에 이르러서는 공식적으로 외부와 단절돼 있던 티베트가 인도와 중국 그리고 몽골과의 교섭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이후로 티베트는 1912년 독립된 국가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하부 권력 지도자들의 결탁과 비리로 결국 티베트는 중국정부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되었다.
1950년 14대 달라이라마의 세속 나이 16세에 중국의 강제 침략으로 다급히 달라이라마 승왕의 자리에 승임될 때까지 달라이라마는 국제 정세와 외교에 대한 통찰력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어릴 적부터 민주주의 정부 구조에 흥미를 가지고 그에 관한 설계를 고심해 왔기에 활로의 방향은 이미 열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59년 4월 인도에 망명했을 때 달라이라마가 중점적으로 다룬 정치 모색은 민주정부 수립의 터전 마련이었다. 따라서 기초적인 내각을 설립하고 당시 티베트로부터 함께 망명한 국민들과 함께 투표로써 의원을 선출했다.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독재정권은 절대 국민을 위할 수 없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날 6백만 티베트인을 위한 최선의 정부구조는 민주주의라는데 달라이라마의 의지는 확고했다. 1960년 티베트망명정부 국회가 정식 출범됐고, 달라이라마는 민주정부를 올바르게 수립하기 위한 권고와 토론을 사양치 않았다. 마침내 1990년에 이르러 티베트 공식헌법이 제정됐다. 비로소 2001년에는 국민의 선거로써 티베트의 정치적 지도자인 수상을 선출하기에 이른다.
달라이라마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티베트망명정부가 달라이라마의 정치적 역할 수행 없이도 올바른 민주주의 정부를 지속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체계를 확립했다는데 확신했다. 지금까지 수행했던 모든 달라이라마의 정치적 직무는 이미 헌법에 내정돼 있는 바, 전적으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수상의 책무임을 확고히 표명했다.

달라이라마의 은퇴 관련 소식이 공식적으로 언론에 비춰진 이후로 달라이라마는 현 수상 삼동린포체와 국회의원 그리고 티베트 국민으로부터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아왔다. 그 상황마다 달라이라마는 한결같은 답변을 주었다. 달라이라마의 정신이 온전하고 신체가 건강할 때 민주주의를 활짝 꽃 피운 민주주의 티베트망명정부를 확인하는 것이 현재 그의 유일한 서원이라고 밝혔다.
티베트는 전통적으로 모든 국가의 현안을 달라이라마에게 의지해 왔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달라이라마의 냉철한 판단이자 선택이다. 지금이 바로 그 시작의 올바른 때라는 것을 확신했다. 티베트 국민들은 국가적 현실을 바로 보고 국제의 정세를 차갑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안주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향후 달라이라마는 티베트헌법 또한 달라이라마의 목소리를 점차 줄이고 국익 증진을 위한 방향으로 수정되어야 할 필요를 서신의 마지막으로 피력했다. 달라이라마는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최상의 조건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에 티베트망명정부 국회는 달라이라마의 의지를 충분히 받들 것으로 보인다. 3월 15일 이어진 국회 회기에서 수상 삼동린포체는 달라이라마의 취지를 따르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과 이해가 요구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400여 년간 달라이라마에 의존해온 티베트인들의 숙업이 단시간에 바뀌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 역시 이러한 염려에 대해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실무에서 은퇴하지만 조언을 구한다면 흔쾌히 응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연설한 바 있다.

3월 20일은 티베트망명정부 수상 선거일이다. 선거는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티베트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1개월여 기간이 걸릴 예정이다. 2001년도 초대로 선출된 삼동린포체는 2006년도에 국민의 투표로써 재선임 되면서 총 10년의 임기를 채웠다. 20일 선거로 선출된 수상은 5월부터 정식으로 티베트망명정부 내각의 총리직을 수행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티베트망명정부는 수상선거 결과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달라이라마는 정신적 지도자의 존재로서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될까? 현 달라이라마는 세속 나이 76세다. 종종 법회에서 “100세가 넘도록 나는 장수 할 것이다.”라고 언급해왔던 그다. 달라이라마의 예언대로라면 이번에 선출되는 수상의 임기가 5년이기 때문에, 앞으로 다섯 차례의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것이다. 그 안에 과연 티베트망명정부는 민주주의를 꽃 피울 수 있을까. 달라이라마는 민주주의의 향기를 향유할 수 있을까.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피운 꽃은 어떠한 향기를 지닌 과실을 맺게 될까.
또한 여기서 14대 달라이라마의 후임에 관해서도 염두 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티베트는 환생의 방식으로써 달라이라마를 책봉해 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달라이라마의 환생이 어떠한 방식으로 조화를 이뤄 나갈 수 있는가 역시도 미지수다. 이에 대해 달라이라마는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후대 달라이라마가 환생 할 것, 본인의 죽음 이전에 달라이라마를 책정할 것, 여성으로 환생할 것, 환생을 멈출 것’ 이상의 네 가지 방안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티베트의 환생 제도는 많은 이들이 오해하듯 영혼의 이동 혹은 육신의 교체가 아니다. 겔룩파의 전통에서 이어온 철저한 지혜의 전승이자 철저한 업의 논리다. 또한 달라이라마의 환생은 다른 파에서 대행할 수 없는 겔룩파만의 용어다. 다시 말해 다른 파에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 하더라도 달라이라마가 될 수 없고 수승한 스승(린포체)으로서 양립될 뿐이다. 오로지 일체 중생의 깨달음을 서원으로 화현하는 보살,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달라이라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 부디 그의 활로가 티베트망명정부에 민주주의의 올곧은 뿌리를 심는 것을 머릿돌 삼아 인류애와 인권의 회복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는 티베트망명정부의 문제를 넘어 인류가 지향하는 선의 관심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