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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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최윤필
한국일보 기자


최근 출간된 <자아 폭발>이라는 책의 ‘자연의 종말’이라는 장은 이런 구절로 시작합니다.
“우리의 외계인 관찰자는 전체 인류가 집단 자살조약에 서명했다고 결론 내렸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는 인류가 정신적 불화를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거나, 타락한 정신을 통해 보는 암울한 현실관이 참아내기 어려운 정도라고 요약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어 인류가 핵무기라는 극단적인 방법 대신 우리 행성의 생명지원 시스템 파괴라는 보다 점진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멸종의 길을 선택한 것 아닌지, 역시 외계인의 추론을 빌어 의심합니다. 온난화와 기후변화, 물 부족, 생물 종 파괴…. 인류의 이 모든 자기파멸적 삶의 궤적을 저자는 과거의 한 특정 시점부터 일어난 ‘자아 폭발’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합니다.
자아의 철학적 개념은 무척 다양하고 또 가치론적으로도 양가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심리학자인 이 책의 저자 스티브 테일러는 ‘자아’를 대타적 존재로서의 ‘나’라는 존재론적 인식에서 나아가 ‘나’의 경계를 확장하려는 탐욕의 주체로, 요컨대 다분히 부정적 의미로 상정한 듯합니다. 그 같은 인류 자아가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B.C.4000년)의 아주 특별한 순간에 폭발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했고, 이후로 지금껏 “인류는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아왔다”는 게 저자의 주된 주장입니다.
고고인류학적 문헌과 유물 자료에 따르면 문제의 시점(B.C.4000년)에 북아프리카에서 중동,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비옥한 지역에 참혹한 한발(가뭄)이 닥쳤고, 삶의 위기에 봉착하면서 인류는 ‘개인성’에 대한 자각과 함께 사방으로 대규모 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인류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변화상에 대한 저자의 고고학적 논증들은, 유전자나 호르몬의 작용에 근거해 세상의 이치와 변화를 설명하는 진화사회학이나 서구 물질문명의 가치기준으로 주입된 미개(?)사회에 대한 우리의 왜곡된 인식을 가차없이 공격합니다. 저자는 이전 시대- 인류의 탄생이래 B.C. 6000년까지-를 전쟁이나 가부장제, 사회적 불평등이 없는, 신화에서 말하는 황금시대라고 단언합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원시 수렵채취인은 생계를 위해 주당 12~20시간만 일했다고 합니다. 현대사회의 1/3 수준입니다. 늘 사냥감을 쫓으며 허기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듯합니다. 저명한 인류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에 따르면 유골화석 연구 결과 농경이 시작되고 이집트문명(B.C.3200년경)이 열린 이래 평범한 농민의 단백질 섭취량이 수렵채취인보다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수렵채취인은 늘 사냥만 한 것도 아니어서 여성이 식량의 약 80%를 식물 채취활동으로 조달했습니다. 소규모로 이동하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사적 소유나 집착도 없었고, 성 불평등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폭력과 억압, 전쟁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껏 확인된 300여 개의 후기 구석기 동굴벽화 어디에도 무기나 전사의 모습, 전쟁 장면은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의 무덤 크기가 달라지고 권력자와 피지배자의 부장품 양이 달라지는 것도 고대문명이 탄생한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고고학자들이 ‘파괴층’이라고 부르는 지층, 즉 대규모 요새와 전쟁 학살의 유적이 발견되는 것도 이 시기입니다.
물론 자아의 폭발적 신장으로 인류는 실용과 창의 면에서 거대한 지적 성취를 이뤄냅니다. B.C.4000~3000년 기간 동안 인류는 바퀴와 수레, 쟁기를 발명했고, 돛단배를 이용하게 됐습니다. 문자와 숫자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찬란한 고대문명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중앙권력과 군대, 계급, 억압과 차별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신(神)과 종교를 만들어냅니다. 
원시 인류에게 신앙이란 특별할 게 없었다고 합니다. 일상이 곧 신앙적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세상 만물에는, 돌이든 물이든 나무든 바람이든, 그들의 정령이 있었습니다. 또 모든 정령들은 하나의 전체로서 조화하며 세상을 유지했습니다. 즉 모든 존재는 살아있는 신이었던 셈입니다. 이 같은 원시 종교의 흔적은, 꽤 긴 세월 동안 서구 문명에 오염되지 않고 남아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호주 원주민, 중남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동시대 인식 속에도 남아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평원의 어떤 인디언들은 생존을 위해 들소 사냥을 한 뒤에는 반드시 들소의 정령에게 사죄했고, 또 어떤 인디언들은 초봄에 밭을 갈 때 쇠붙이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쇠붙이 농기구는 갓 잠을 깬 땅의 정령에게 가혹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문헌상 일신교를 창안한 이는 B.C. 14세기 이집트의 파라오 아케나톤입니다. 그는 태양신 ‘아톤’만이 유일신이며, 자신은 아톤의 자손이라 선언함으로써 지상(至上)의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유대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모세가 애급(이집트) 출신이며, 유대교에서 분화한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 강고한 유일신종교라는 사실을 이 책의 저자는 의미심장하게 언급합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뒤 기독교는 강력한 로마 군대와 함께 세계로 전파됐고, 이슬람교 역시 아랍 군대에 의해 세를 확장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유일신 종교가 인류의 영혼을 지배함으로써 인류는 자연 영혼의 힘에 대한 인식을 상실했고, 나무와 바위와 강은 위대한 내면적 존재에서 생명 없는 물체로 전락했습니다. 동시에 인간 역시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는, 쓰린 고통을 감당하기 시작합니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한 구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시니라”(1장 28절)는 영적으로 한 몸이었던 인류와 자연이 분리됐음을 공포하는 선언문이기도 합니다.
이 우울한 분석 끝에 저자는 인류가 지난 세기 이래로 자아초월의 거대한 운동의 물결이 다시 시작됐다고 진단합니다. 어린이와 동물 학대에 대한 저항, 여성과 장애인 차별에 대한 반감, 자선과 공감의 문화, 반전운동, 환경운동 등의 범지구적 확산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불교가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아초월의 첫 물결을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로 명명한 B.C.600년 전후의 시기를 꼽고, 특히 붓다의 가르침을 의미심장하게 소개합니다. 붓다가 설파한 공감과 자비의 가르침, 자연과 인간을 나누지 않고 살생을 경계하는 연기(緣起)와 불이(不二)의 철학, 경계인식을 지우는 데 이바지하는 명상(참선)의 의미 등입니다. 과연 시방 연기가 법계심이요, 일체중생 개유불성이라는 불법(佛法)의 가르침은 자아폭발 이전 인류의 초심과 빈틈없이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영적 수행은 진화적 긴급 사안이다. 당신이 앉아서 명상할 때마다, 당신이 요가를 하거나 기공체조를 할 때마다, 또는 당신의 의식 에너지를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는 다른 행동을 할 때마다, 당신은- 아무리 작은 방법이라 할지라도- 인류 전체를 대신하여 그 행위를 하는 것이며, 우리를 구원할 진화적 움직임에 약간의 힘을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영적 수행이 필요한 모든 것은 아니다. 변화는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우리는 적어도 생활의 일부를 봉사활동에 바침으로써 자아단절감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이 책 427쪽)
조계종단은 최근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나섰습니다. 최근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자승 총무원장은 한국 불교의 고유 용어인 ‘참선’을 일본 용어인 ‘젠(zen)’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교계 내부에서도 간화선 중심의 한국 불교 수행법에 대한 문제제기를 비롯, 선수행에 대한 발전적 제언들이 활발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스님처럼, 연기의 세계를 넘어 사회적 실천과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요 며칠 저는 이 <자아 폭발>이라는 두툼한 책을 읽으며, 인류의 긴 역사 속에 지금 한국 불교가 선 자리, 또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들을, 저의 병든 자아와 틈틈이 겹쳐보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을이군요. 참선하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