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붓다기획
    금강계단
    다람살라소식
    구룡사 한가족
    구룡사 한가족 2
    명상과 수행
    깨달음을 주는 영화
    절문밖 풍경소리
    취재현장에서 본 불교
    즐거움을 뿌려라
    치아건강 칼럼
    입시광장
    건강한 생활

과월호보기

사랑은 존중







   성운(星雲)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인간의 생명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학설을 세워 연구하고 토론을 하지만, 사실은 매우 간단한 이치입니다. 생명은 바로 ‘사랑’에서 온 것입니다.
‘사랑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사바세계에 태어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나도 부모를 사랑합니다. 나의 정성(識情) 속에는 사랑과 미움이 많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인간 세상에 환생한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저마다 ‘사랑’을 외칩니다. 사랑이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사랑이 있으면 따스해 집니다. 사랑은 마치 태양, 공기, 물에다 비유할 수 있습니다. 태양, 공기, 물이 없다면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존중받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 사랑의 허울 좋은 이름으로 추한 짓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사랑을 집착으로 여기고 사랑을 소유로 보며, 사랑을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이 증오의 원인이 되게 합니다.
현대의 청춘남녀는 사랑을 하면 상대가 살기를 바라고, 증오하면 상대방이 죽기를 바랍니다. 사실 사랑은 희생이요, 봉헌이요, 소중함이요, 보호하는 것입니다.
내가 재물을 좋아하면 대중과 함께 그 재물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명예를 좋아하면 그 명예로 대중을 보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지식을 좋아하면 지식을 후세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하고, 내가 정이 있다면 정을 다른 사람이 행복을 이루도록 사용해야 합니다.
세간에서 남녀가 결혼하는 것은 사랑의 승화요, 사랑의 결정체요, 사랑의 합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적절하지 못한 사랑은 밧줄처럼 우리를 속박하고 심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며, 쇠사슬처럼 우리를 속박하고 잠시도 편안할 수 없게 하며, 눈먼 장님처럼 우리를 암흑 속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하고 고해의 바다처럼 괴로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결혼에 관해 다음과 같은 우스개가 있습니다.


이태리 사람은 결혼을 ‘오페라’라 여기고, 프랑스 사람은 결혼을 ‘희극(喜劇)’이라 여긴다. 영국 사람은 결혼을 ‘비극’이라 여기고, 미국사람은 결혼을 ‘해학극’이라 여기며, 중국 사람은 결혼을 ‘추태’라 여긴다.


사실 사랑은 아름답고 진실한 것이며, 또한 순수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랑을 좁은 의미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나 가족만을 사랑하는 데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대중과 국가, 세계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부처님이 불법을 세상에 널리 펴서 중생을 이롭게 하고, 가르침을 보이시며 기쁘게 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관세음보살께서 대자대비로 고통의 바다와 어려움 속에서 구하는 것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은 당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의 뜻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당신을 존중하는 것이요, 당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요, 당신을 편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사랑스러우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모든 중생에게까지 확대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은 자비로 사랑을 널리 퍼뜨려야 하고 지혜로 사랑을 정화해야하며, 존중으로 사랑을 대하며 희생으로 사랑하는 바를 성취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면 우주세간이 어찌 드넓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