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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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평등·인권선언 실천할 때

도가니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영화 <도가니>는 지옥의 아비규환 같은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모습을 그린 영화다. 공지영씨의 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에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일은 안개의 도시 무진에서 일어난다. 실제 광주광역시를 영화는 무진시로 바꿨다. 광주를 옛부터 무진주라고 한데서 따온 듯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사건은 2000년부터 4년 동안,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일어났다.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청각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성폭행을 저질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사건의 가해자와 책임자들이 대부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고 지금까지도 교단에 선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솜방망이식 처벌과 언론의 무관심으로 인해 사건은 금방 잊혀졌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도가니>의 피해자들은 미성년자인데다가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장애인이라는 점에서 보다 큰 공분을 샀다.
더구나 장애인들의 인권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 특히 엘리트들이 얼마나 썩었고, 이기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등어>와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을 쓴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지난 2009년 출간 때부터 큰 화제를 낳았다. 이 소설은 2008년 11월부터 2009년 5월까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6개월 동안 온라인에 연재되었는데, 무려 1600만 클릭이라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공지영씨가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는 신문기사 한 줄이었다고 한다. 믿기 힘든 이 사건을 보고 공지영 작가는 그 동안 준비해오던 다른 소설을 접고 <도가니>를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도가니는 영화로 개봉되면서 다시 전국을 ‘울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서울에서 내려온 강인호 선생님이 안개 낀 무진시로 접어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배우 공유가 연기한 강 선생님은 광주인화학교에 부임해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아이들은 어딘지 많이 이상하다. 깊은 충격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강인호 선생님은 어느날 늦게 퇴근하는 날 여자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간다. 하지만 수위가 달려와 “여기 아이들은 가끔씩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면서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그 뒤 민수라는 학생들을 무지막지하게 폭행하는 동료 교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또 한 여학생이 그의 손을 잡아끈 곳으로 가서는 학교 여직원이 다른 여학생들의 머리채를 세탁기 수조에 담궈 유린하는 모습을 보고 만다.
이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이런 폭력 뒤에 도사린 더 무서운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교장이 어린 여학생을 자기 방에 유인해 묶어놓고 성폭행을 하고 남교사는 남학생인 민수 형제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한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는 민수의 동생은 기찻길로 나가 기차에 치어 목숨을 잃는다. 분노에 차 항거하는 민수는 남교사의 모진 주먹질에 연일 초주검이 된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의 가장 큰 울분을 산 것은 학교장과 직원들의 성폭행 말고도 변호사, 판사, 검사, 경찰, 무진시청과 무진교육청 간부들의 행태다. 장애를 지니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처참한 인권 유린에 대해서도 눈을 감은데서 더 나아가 ‘어둠의 카르텔’을 형성한 가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거기서 행복해하는 모습은 관객들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엘리트와 권력자들의 행태와 함께 관객들의 공분을 산 또 하나는 기독교 교인들의 모습이다.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교장은 한 교회에서 존경받는 장로로 나온다. 목사와 교인들은 “우리 장로님은 그럴 분이 아니다”면서 막무가내로 그를 옹호하면서 시위를 하는 가해자들을 오히려 내몬다. 그들은 재판이 열리는 방청석에서도 가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를 받으면 “아멘”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이성적 판단 분별의 눈을 가려버린 종교적 도그마와 맹신이 얼마나 무서운 독이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선 ‘있는 그대로’ 보는 여실지견(如實之見)을 가장 중요시한다. 여실지견은 도그마와 편견과 아집을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자신이 빨간 색안경을 끼고 있으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 색안경을 끼고 있으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기 마련이다. 색안경을 벗었을 때 사물과 사건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불교는 2500여년 전 계급사회의 굴레 속에 하층민들과 여성들의 인권이 전혀 보장되지 못하던 당시 ‘모든 중생이 평등하다’는 부처님의 인권 선언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래서 만중생을 평등하게 보고, 자비와 연민의 시선으로 보려는 수행이 중시됐다.
그래서 불평등하고 반인권적인 모습이 기독교에 비해 적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불평등과 반인권을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오히려 기독교보다 적었다.
<도가니>에선 기독교인들의 한심한 모습을 드러냈지만,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에서 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아 피해자들의 인권을 위해 가장 앞장서 싸운 것은 기독교 목사였다.
장애인들이 목사가 되거나 가톨릭 신부가 되는 경우는 적지않지만, 장애인이 승려가 될 수 없는 현실도 불교의 인권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남방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선 ‘불국토’라면서도 여전히 군사독재가 맹위를 떨치고 있고, 중국 침공으로 나라를 뺏기고 인권을 유린당하는 티베트에선 벌써 10명이 넘는 스님들이 온몸을 불사르는 분신으로 항거하고 있지만, 이처럼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도 미미하기만 하다. 기독교도들의 맹신과 무지와 도그마를 질타만 할 것이 아니라 인권문제 개선을 위한 그들의 노력에 대해 불교가 더 자극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다.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안락하고 행복하며,
괴로움과 재난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해악(害惡)과 미워하는 마음,
근심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이들이 진정한 행복과
마음의 평온을 즐기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분노와 기만
남을 해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서,
남에게 해를 끼치고 살해하는 일에는
티끌만큼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불교의 자비관이다. 어찌 보면 기독교가 맹신에 갇혀있었다면, 불교는 2500년간 관(觀)에만 갇혀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의 자비관 수행도 꼭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관에만 그쳐선 안 된다. 이제 반인권의 도가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자들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힘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부처님의 평등 선언, 인권 선언을 ‘관’만이 아니라 실천함으로써, 불교가 세상을 울분의 도가니가 아닌 환희의 도가니로 만들어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