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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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하는 불자가 되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구룡사 회주

부처님이 사위성(舍衛城)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이 부처님을 찾아와 여쭙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원이 있고 그것을 이루고자 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 소원을 현세에서도 이룰 수 있고 내세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 하시기를,
“오직 게으르지 않는 것이요. 누구나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하면 현세의 소원을 성취하고 내세의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 입니다. 비유하자면 씨앗을 뿌리거나, 물이 흐르거나, 집을 짓거나,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다 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듯이 현세의 소원과 내세의 소원을 성취하는 것도 불방일(不放逸)의 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소원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방일에 의지하지 말고 불방일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지요. 만약 대왕이 먼저 불방일에 의지하면 대왕의 부인이 그것을 따를 것이요, 부인이 그러하면 대신과 장군과 태자가 불방일에 의지할 것 입니다. 또한 온 나라 백성들도 대왕과 대신을 따라 방일하지 않고 불방일에 의지할 것이고, 대왕께서 불방일에 의지한다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며 부인과 자녀도 지킬 수 있을 것 입니다. 또한 창고의 재물도 더욱 늘어나 풍족해질 수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부지런한 것을 칭찬하고 부지런하지 않을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설해져 있는 부처님의 이 가르침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가장 적절한 법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는 1만불 시대를 지나 현재 2만불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또 얼마 있으면 3만불 시대에 접어들 것입니다. 이처럼 물질의 풍요는 점점 좋아지는데, 그에 반해 행복지수는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늘, 시간에 쫓기면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욕망으로 목말라 하는 욕심으로 살아가면서 게으른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각자는 열심인 것처럼, 그 틀 속에서 바쁘게 사는 것을 마치 잘 사는 것인냥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주 5일의 근무가 정착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 비추어보면, 명산(名山)마다 대찰(大刹)이 있는 불교에서는 포교할 수 있는 최고의 여건과 환경을 갖추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 《신(神)없는 사회》라는 책에서 ‘신(神)을 믿지 않아도 그들은 더 평화롭고 더 행복하다’는 글이 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간에 쫓겨 불안하고 초조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종교적으로는 멀어져가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이미 서양이라는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일들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현상이 만연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심있는 불자들을 보면, 뭔가 달라도 남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늘, 훈훈하고 따뜻한 기운을 느낍니다. 그러한 모습이 바로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모습 입니다.그 모습을 널리 세상에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맹이를 던지면 사방팔방으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여울살이 일어나듯이, 불보살님의 위신력과 가피력이 모든 이웃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부지런함을 칭찬하고 부지런하지 않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華嚴經) 십행품(十行品)》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중생들은 내 복밭이고 선지식(善知識)이다. 찾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몸소 와서 나를 바른 법에 들게 한다. 나는 이와 같이 배우고 닦아 모든 중생의 마음을 어기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어서 발원(發願) 합니다.
“내 보시를 받은 중생들은 모두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 평등한 지혜를 가지며 바른 법을 갖추어 널리 선행을 하다가 마침내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지이다. 만약 한 중생이라도 마음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최상의 깨달음(正覺)을 이루지 않으리라.”
오늘 법회에 모이신 여러분들이 그늘이 되어주시고 울타리가 되어주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구룡사가 있었겠습니까? 자유분방하기로는 천하를 넘나들어도 부족함이 없고 힘이 넘치기로는 태산준령도 무너트릴 것 같았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항상 함께 해 주셨던 불자님들이 저의 불보살님이시며 선지식 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바로 불보살(佛菩薩)의 행원(行願)입니다.
첫째, 어떤 일을 하든지 보시나 공양이 아니더라도, 우리들의 보살행인 바라밀은 스스로 마음을 내어서 하였으면 합니다.
둘째, 상대가 원하는 것이면 그 일을 찾아서 하였으면 합니다.
셋째,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잘못하는 일을 보면 경계로 삼고 잘사는 이를 보면 모범을 삼으면 두 사람이 다 스승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물질의 풍요에 도취되어, 점점 옹색해지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첫째, 가르침을 아무리 들어도 실증내지 아니하며,
둘째, 세상을 바르게 관찰하고 바른 생각(正念)으로 사유(思惟)하며,
셋째, 가르침을 따라 능히 실천 하며,
넷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선근(善根)을 장양(長養)함이라고 했습니다. 보리심을 처음 일으키는 것은 마치 비옥한 땅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춘삼월인 지금 씨앗을 뿌리면 움이 트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새싹이 돋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법구경(法句經)》에서도,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향기가 없는 꽃이 있듯이,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그것을 실천코자하지 않으면 열매는 맺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가르침에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는 불자가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재가자들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생업에 종사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주변에 닥쳐오는 온갖 일들을 해쳐나가면서도 삼보(三寶)를 잊지 않고 찾아서 예배하고 공양하고 찬탄할 수 있는 그러한 날들을 정해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4재일(四齋日)이며 6재일(六齋日)이고 10재일(十齋日)입니다.
4재일은 1일, 8일, 15일, 23일입니다. 또 6재일은 8일, 14일, 15일, 23일, 25일, 30일이며 십재일은 1일, 8일, 14일, 15일, 18일, 23일, 24일, 28일, 29일, 30일입니다.
부처님은 일주일 간격으로 4재일의 날을 잡으셨고, 6재일은 그 중 두 번은 연거푸 날을 잡으셨는데, 10재일의 간격도 오늘의 현실에서 들여다보면 어찌 이렇게도 자상하게 날짜를 정해놓고 절에 다녀갈 수 있도록 하셨을까?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이처럼 출발점은 믿음〔信〕이 바라밀 이었고, 성인(聖人)의 도에 융섭한 모습이 바로 아뇩다라샴먁삼보리의 덕목인 보리심 이었습니다.
재가불자들의 삶은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질적인 풍요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들의 모습이 더 불안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직장인들은 휴일(休日) 만이라도, 나태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법회에 올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복된 여인이 있다면, 우리네 어머니들 입니다. 우리나라의 며느리들이고 딸들입니다. 다른 나라를 보면 종교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남자들인데, 우리네 가장들은 돈 벌기 바쁩니다. 그래서 여인들이 가족들 몫까지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 복된 일을 가족 모두가 동참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법회에 함께 나오도록 권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꼭 종교를 믿어야 하고 종교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를 가지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당당하고 떳떳한 인생을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삶이 바로 종교성(宗敎性)일 것입니다.
불자(佛子)는 반드시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廻)를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내적으로는 삼귀의(三歸依), 오계(五戒)를 받아 지녀야하는 근본정신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선한 업을 지으면 천상락(天上樂)을 얻고 악한 업을 지으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집니다. 그러나 선한 업을 지어서 천상락을 얻어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 세상 역시 윤회의 세상을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은 윤회하는 세상입니다. 이 육도(六道)는 나 자신의 업이 아직 소멸되지 않아서 그 업(業)대로 다시 태어나서 죽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윤달을 맞이하면 윤회(輪回)의 세상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기도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齊)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영가들을 살피는 일들도 함께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시달리기는 매일반일 것입니다.
흔히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세상이 좋다고 합니다. 미운정 고운정 들어서 더 좋으시겠지요? 좋은 도량에 함께하고 있으니 좋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이 고체화 돼버리면 번뇌와 망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따라서 영가들을 위해서 재를 지내더라도, 그 영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집착해 있으면 안 됩니다. 안목이 없어 오롯이 볼 수 없다하여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세상을 한시적으로 정지된 상태처럼, 혼수상태에 있거나, 힘든 병고에 시달리거나, 직접 죽음을 경험한 이들은 깨어 났을 때 한결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은 함부로 살지 말아야겠다는 서원의 다짐은 바로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삶에서 시작 된 것입니다.
바닷물을 꼭 먹어보아야 짠지, 쓴지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오대양의 바닷물을 다 맛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지혜와 안목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다 살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집착하지 말고 언제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정진 하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생활 입니다.
우리는 생사윤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깨달음의 세계로 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념(一念)으로 기도를 하면, 그 기도의 가피력은 우리 모두 모두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항상 우리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 불보살님의 위신력이요, 가피력 입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내일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날이지만, 미래는 한걸음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으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인생은 감당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허무한 통한(痛恨)의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지극한 마음으로 위해주며 합장하는 삶을 한결같이 살았으면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불국정토의 도량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불자들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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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jungwoo@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