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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지난 4월 16일 진도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사고가 우리 국민 모두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가슴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이 유명을 달리 한 가족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동체대비의 마음으로 고통 속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직간접적으로 많은 일들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날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랄 것도 없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도 하나같이 걱정하며 슬퍼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달라이라마께서도 희생자 가족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위로의 전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청와대 춘추관에 전했습니다.
지난 며칠간 안타깝고 가슴 아픈 구조현장을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보면서, 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나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을 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이곳이 진정 내가 살아야 할 곳이고,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던 삶일까.’
그러면서 불현듯 《법화경法華經》의 「삼계화택三界火宅」이 떠올랐습니다.
옛날 한 장자가 큰 집에서 자식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집에 큰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안에서 놀고만 있었습니다. 장자는 다급하게 아이들을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쳤지만, 아이들은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장자(아버지)의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여기 있으니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좋은 장난감이 있다는 소리에 아이들은 불타는 그 집에서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밖으로 뛰쳐나오자 기뻐하면서 보석으로 장식된 진귀한 물건들을 선물로 주었다는 방편설법입니다.
우리들의 삶 또한 불타는 집에 사는 것과 같다 할 것입니다. 그런 위급한 상황이 생겼어도 선장은 장자와 같은 지혜로 슬기롭게 승객 모두를 갑판이나 비상구로 안전하게 탈출시킬 수 있었어야 합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개인적 어리석음과 자신만의 욕심으로 승객 모두를 버리고 자기들만 탈출하였습니다.
선장이 승객들에게 갑판 위로 올라오라는 방송만 하였더라면…, 하는 안타 까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번 사고가 재난災難이 아니라 인재
人災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국민들 가슴에 멍울진 아픈 응어리가 풀리려면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럽의 시인 토마스 캠벨은 ‘뒤에 남겨진 사람의 가슴속에 살아있다면 그것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廻를 부정하지 않는 불자로서 ‘나는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했었는가, 나는 그들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왔는가.’를 되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因緣이라 하였는데,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온 동시대의 모두를 내 몸처럼, 내 가족처럼 소중하게 생각 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달라이라마 스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고통의 원인을 바꿔 말하면 혼란과 착각을 가져오게 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감정적인 경험”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행의 두 수레바퀴의 축을 방편과 지혜로 삼아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짧은 시간이 아닌, 진지한 삶의 현장에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인생에서 자유로워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평상시에 항상 이어져야 합니다. 매일, 기도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흔들림 없이 그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힘은 누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극복하고 헤쳐 나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고통을 녹여낼 수 있는 불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에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 이것이 대장부의 기상이요 이것이 어른의 모습이 아니겠느냐. 허물을 고쳐서 스스로 새롭게 태어나면 그 잘못은 이내 사라질 것이다.’
‘승객들을 왜 대피시키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선장은 ‘대피시켰다’고 하였다는데, 이 선장이 깊이 새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참회는 자기가 지은 허물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범하지 않겠다는 맹세입니다.
《본생경本生經》에,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은 곧 우리들 자신의 한 부분의 죽음을 뜻한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들 차례에 대한 예행연습이기도 하고 현재의 삶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하였습니다.
천재지변天災地變과 삼재팔난三災八難은 시간과 대상과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난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불안전한 이 세상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절박했지만, 승객들을 다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을 잘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삶이 불확실한 인생이라고 모두가 다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순탄하게 평생을 잘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백세 넘게 살면서도 병고액난이나 삼재팔난으로부터 큰 어려움 없이 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북인도 히말라야 깊은 산을 순례 하던 중 만났던 한 노스님이 있었 습니다. 그 스님은 어두컴컴한 작은 골방에서 8절지 크기의 창문 하나를 두고 평생을 사시다가 100세에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 스님은 환갑이 되던 해부터 40년 동안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예 불 끝에 대중들  이 스님께 인사를 드리면 “나 내일 죽는다. 나 내일 죽는다.”는 말을 했 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서 그 스님은 대중들에게 만날 수 없는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희망의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같은 감로법을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의 삶, 나의 인생의 생활 속에서는 한두 차례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용서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참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침몰한 여객선 승객들의 절망 앞에서는 그럴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잘 죽는 일은 잘 사는 일과 직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희생된 선생님의 숭고한 죽음 앞에 비겁한 선장과 선원들의 삶이 들여다 보입니다.
‘위대해지지 않아도 자유로워질 수 있지만 절대로 자유롭지 못한 이가 위대해 질 수 없다’는 이 말을 가슴깊이 살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떤 순간의 삶도 다 소중합니다. 이 순간을 가장 귀한 시간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순간순간들을 소중하게 살지 못해서 반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뉘우침이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후회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서로가 다독거리며, 서로가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더욱 침몰된 여객선 희생자 가족들의 몸부림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남의 아픔과 고통이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인생수업〉에, ‘만일 타야 할 자전거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 그것을 할 때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타야 할 자전거가 있다면 지금 타야 합니다. 사랑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 사랑해야 합니다. 다음에 사랑하지, 다음에 위해주지, 다음에 잘해주지 해서는 인생이 너무 늦습니다.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십시오. 너무 도덕적이 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삶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자신을 속이게 될 것입니다. 도덕적인 것 이상의 목표를 가지십시오. 그저 좋은 사람이 되지는 마십시오. 뭔가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십시오.’ -헨리데이빗 소로우
그렇습니다. 좋은 사람 되려고 하지 말고, 좋은 일을 하면 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보이기 위해서, 또 남의 이목 때문에 좋은 일을 하고 보이기 위해서 착한 것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향을 싼 종이에 향 내음이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 비린내가 나는 평범한 가르침도 있긴 하지만,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더 좋은 덕목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너무 도덕적이지 말라는 것은 도덕적으로만 살면, 삶의 많은 부분이 자기 자신을 속이고 속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목표를 가지라는 것은, 그저 좋은 사람이 되지만 말고 뭔가 좋은 일을 하면서 살게 되면, 그것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진도 해안에서 침몰 사고로 희생된 가족들에게 석가여래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전해져서 하루속히 그 고통의 아픔과 슬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부처님오신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함께 불보살님의 가피를 발원 합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