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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은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신라의 성사聖師이신 원효대사元曉大師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가야할 것이지를 묻고 있습니다.
『부제불제불夫諸佛諸佛이 장엄적멸궁莊嚴寂滅宮은 어다겁해於多劫海에 사욕고행捨欲苦行이요 중생중생衆生衆生이 윤회화택문輪廻火宅門은 어무량세於無量世에 탐욕불사貪慾不捨니라.』
모든 부처님이 적멸궁을 장엄하신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셨기 때문이요, 중생 중생이 삼계화택문三界火宅門에 윤회하는 것은 한량없는 세월동안 탐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발심정진기도 입재날인 지난 4월 16일 아침, 진도앞 바다에서는 여객선 세월호 침몰참사로 21일 봉축 기도는 내내 실종자의 무사귀환과 희생자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40여일이 지난 지금도 전국 사찰과 진도앞 바다에서는 통한의 기도를 올리고 있지만, 아직도 실종자들을 다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지 사십 여일이 지났는데도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온 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비겁하게도 도망 나온 선장과 승무원의 말만 믿고 여객선 안에서 자신들의 죽음을 목격하는 절박한 그 순간에 수백 명이 넘는 승객들은 얼마나 두렵고 겁나고 무서웠을까요.
《본생경本生經》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다시 한 번 들여다봅니다.
『가족의 죽음은 곧 우리들 자신 한 부분의 죽음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들 차례에 대한 예행연습이다. 현재의 삶에 대한 반성이다. 삶은 불확실한 인생의 과정이지만, 그 죽음만은 틀림없는 인생의 매듭이기 때문에 보다 더 엄숙할 수밖에 없다. 인생에는 한두 차례 시행착오는 용납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에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러니 삶은 바로 잘 사는 일과 직결되어 있다.』
연세가 드신 분들 중에는 어렸을 때 고향에서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동네 어른이 장수하시며 잘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시면 상가 집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함께 지내온 시간들을 추억하며 덕담을 나누면서 떠나보냅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뜻하지 않게 세상을 일찍 떠나게 되면 온 마을이 초상집이 되어서 조심하고 걱정하며 그 슬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민정서가 그렇다 할 것입니다. 구룡사를 비롯한 모든 사찰은 물론이요, 불교계 전체가 금년 부처님오신날은 봉축법회가 아니라 초상집에 문상객이 왕래하는 그런 심정으로 초파일을 치렀습니다.
《본생경》에 가족의 죽음은 (그 가족은 혈족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죽음을 뜻한다는 데에 깊은 들여다봄이 있었으면 합니다.
인간은 누구랄 것 없이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떠나기는 떠나야 하겠지만, 설마 나와 내 가족이 그렇게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 터키에서는 탄광이 무너져 300명이 매몰로 희생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또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진으로 산사태가 일어나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몰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연재해나 재난으로 인한 사고가 지구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가항력으로 일어나는 자연재해自然災害도 결국 주범은 우리 인간의 과욕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참사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몇 사람의 욕심과 어리석음에서 시작된 인재였습니다. 세계 환경기구는 지구온난화를 줄여서 자연재해를 막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결의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여객선 세월호 같은 어처구니없는 침몰의 인재人災는 막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점검에 점검을 거듭하고 재난팀은 구조훈련과 연습을 반복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조건반사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숙련공처럼, 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훈련이 사고를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질병은 초기에는 치료하기가 쉽지만, 진단하기는 어렵다.
시간이 흐르면, 진단하기는 쉬워지지만 치료하기는 어렵다.
인식하지 못하면 사태는 악화된다.
이윽고 모든 사람들이 알아차릴 때가 되면 어떤 해결책도 소용없게 된다.」
이를 응용하자면, 질병이 질병만이 아니고 사고가 사고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며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고 했던 그 구호를 다시 슬로건으로 적용하여, 각자는 늘 상기하며 생활화하기를 청하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나설 때 문을 잠궜는지 안 잠궜는지를 반드시 확인 합니다. 그리고 안 잠궜다고 생각이 들면 다시 돌아오는 수고로움을 가집니다. 이처럼 개인적인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반복해서 확인하고 다짐하고 재인식하듯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일들도 똑같이 하였으면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대소 차이는 있지만, 육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 쌍둥이가 그 형제 중에 무슨 일이 생길 때, 부부간에 서로 무슨 일이 생길 때 그 파장이 더 크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렇듯이 공동체 안에서도 좀 더 세심하게 귀 기울여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각을 놓쳐버리고 행동을 쉽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성에 젖은 안전 불감증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질병은 진단하기는 쉬워지지만, 반대로 치료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식하지 못하면 사태는 더욱 악화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릴 때 쯤 되면 어떤 해결책도 소용없게 된다’는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점검하고 점검하고 점검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 세월호 침몰 참사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영원한 것처럼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파탄을 맞으면 몸부림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모두가 무명無明의 얼굴입니다. 무지無知의 얼굴입니다. 그것들(죽음)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아도 어느 날 나 스스로가 떠나야 되는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이번 일처럼 여기저기서 직간접으로 고통 받는 일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인가를 스스로 알게 되면, 자연히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인과법因果法을 보고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지며 함부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영국의 섹스피어는, 「수행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의 완성이다. 그것은 죽음의 가치를 진정한 삶의 가치로 전환 시키려는 노력이다.」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경涅槃經》에서 달을 비유로 들어 하신 법문이 있습니다.
『비유컨대 마치 사람들이 달이 뜨지 않음을 보고 달이 없어졌다고 말하면서 없어졌다는 생각을 하지만 달의 성품은 참으로 없어진 것이 아니며, 다른 지방에 달이 뜰 때 그 지방 중생들이 달이 떴다고 말하지만 달의 성품은 참으로
나는 일이 없음과 같으니, 왜냐하면 수미산에 가리어져 나타나지 못할지언정 달은 항상 있는 것이어서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니라.』
달이 떴다가 없어지고, 초승달이 보름달 되고, 그믐달 되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해서 그 달이 없어졌다가 작아졌다가 늘어났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지만, 우리의 삶과 죽음을 사대육신을 빌어서 드러내지 않으면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 한 공성空性의 자리에 오고감이 없는 이치로 희생자 가족들에게 위로하기에는 사이버 공간 같은 중생 세계는 현실적으로 전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의사가 아들에게 의술과 약방문의 근본을 부지런히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약의 뿌리, 이것은 줄기가 약이 되고, 이것은 빛깔이 약이 되고 꽃이 약이 되고 … 이렇게 자세히 가르친 결과 그 아들도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믿고 받들어
부지런히 배워 의술과 약방문을 알게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이 울부짖으며 말합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다 배웠지만 빛과 모양과 약효를 아버지가 일러 주신대로 다 내가 알 수 있겠느냐?’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우리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계율을 제정하고 이렇게 지니고 이렇게 범하지 말고 정법을 비방 하거나 믿지 않는 이가 되지 말라하는 것은 오는 세상에 이런 일을 저지를 사람을 위하여 규모를 보이는 것이며 우리들도 부처님 열반한 뒤에 이것은 경전의 깊은 이치요 이것은 계율의 경하고 중대한 것이요 이것은 아비달마 교학의 분별하는 글귀인줄을 알게 한 것이니 마치 의사가 아들에게 한 것과 같다.』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원하는 바에 대한 확신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념으로 나타나는 덕목이 기도로부터 출발되고 수행정진으로부터 이뤄진다는 것을, 우리도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이라는 검진표를 성숙된 마음가짐으로 이어져 주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도,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성내거나 질투하지 말라.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마라. 위험에 직면하여 두려워 말고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를 모함하지 말라. 객기 부려 만용 피우지 말고 허약해서 비겁하지 말며 지혜롭게 중도의 길을 가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모습이다.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들이 업신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려 중도의 길을 지켜라.』
아직도 진도 팽목항에는 16명의 실종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참사로 실망과 분노와 좌절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반만년 역사 속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끈기 있게, 용기 있게, 지혜롭게 대처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렇게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러한 지혜와 용기를 본받아 우리들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공황장애를 일으키고, 온 동네가 줄초상 난 것처럼 좌절 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슬픔을 딛고 헤쳐 나갈 수 있는 토양 위에 보리수나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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