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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불교의 청사진(20)

성운星雲 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지난호에 이어서>


일상생활에서는 자연적이고 부자연적인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자연적이면 신심을 유쾌하고 일 처리를 순조롭게 만들지만, 부자연적이면 신심을 피로하게 하고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까지 상처를 입힌다. 예를 들어 정을 주고받을 때는 깊이 생각하고 상대방을 포용할 수 있어야 자연적이다. 일 처리를 할 때는 사리에 어긋나지 않아야 자연적이다. 돈을 사용할 때는 수입에 맞게 지출해야 자연적이다. 이와 반대로 행동하면 부자연적이 된다.
천·지·인이 조화로우면 외물外物과 자아는 서로 막힘없이 아주 가깝다. 자연이란 인심人心이자 진리이며, 천명天命이자 우주의 강상綱常이다. 안팎의 역사를 살펴보면 역대 제왕 중 천명과 민심에 순응하는 자는 흥하고, 천명과 민심에 역행하는 자는 망국을 맞았다. 그들의 흥망성쇠와 자연의 법칙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의 생활 역시 자연과 부합되어야 행복하고 원만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문해야 한다. “돈은 자연에 부합되게 수입에 맞춰 지출하였는가?”, “정은 자연에 부합되게 치우침이 없었는가?”, “말은 자연에 부합되게 상대방을 배려하였는가?”, “일 처리는 자연에 부합되게 도리와 원칙에 어긋나지는 않았는가?”
자연은 곧 순응이다. 지나치거나 또는 미치지 못하면 결국 폐해를 가져온다. 오래 누워서 일어나지 않고, 오래 서서 앉지 않고, 오래 일하고 쉬지 않고, 오래 가만히 있고 움직이지 않는 것 등은 생리학 측면에서 사대四大의 부조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사람은 병이 생기기 시작하고, 육신은 썩어 문드러져 세상과 작별을 고하게 된다. 이밖에도 최근 몇 세기 동안 인류는 생산과 소비 과다로 인해 미생물이 환원할 수 있는 정도를 초과하였으며, 이는 자연의 움직임을 파괴해 현재 생태계에 많은 문제를 가져왔다. 이로써 자연법칙을 소홀히 여기면 스스로 악한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일상생활에서 세상을 마주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 일방적인 감정은 자연에 순응치 못하나 오래가지 못한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재물을 얻음은 자연에 순응치 못하니 패가망신하는 근심이 생긴다. 사람에게 환심을 사 얻은 명성은 자연에 순응치 못하니 결국 누군가에게 업신여기게 된다. 가만히 앉아 남이 거둔 성과로 누리는 지위는 자연에 순응치 못하니 비난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여실한 생활을 하고자 하면 반드시 자연법칙에 순응해야 한다. 부부 간에 서로 존경하고 양보하며, 이웃과 친구와는 화목하게 지내고, 같이 일하는 동료는 서로 이끌어주어야 한다. 창업하려면 마땅히 시장조사, 자금조달, 인력자원, 경영계획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 정치가는 민의를 이해하고 충신을 중용하며, 바른 말을 살펴 듣고 부지런히 바른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특히 불교신자는 더더욱 남보다 먼저 실천하여 모범을 보이고, 복을 더 많이 짓고 인연을 맺으며, 선정을 닦고 지혜를 늘리며,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도’와 부합된다는 것은 자연적 생활이자 생명의 가르침이니 이보다 더 간절한 염원은 없을 것이다.


18. 정치관政治觀 : 참정지도參政之道
정치는 대중을 관리하는 일이다. 인간은 집단적 동물이라 무리와 떨어져 홀로 살 수 없다. 무리를 떠날 수 없으므로 대중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고,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권모술수, 모략謀略, 당파, 투쟁 등과 연결 지어서 말한다. 그래서 화합과 다투지 않기를 강조하는 불교의 신도들은 종종 정치 이야기를 피한다. 심지어 사회 인사 중에서는 “종교는 종교이고, 정치는 정치다”라며 정치에서 멀리 떨어질 것을 부르짖는다.
실질적으로 국가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한, 정치 참여는 국민의 권리이다. 공고의 권리를 박탈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정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불제자 중에서 출가 승려들도 세금을 내고 병역의 의무를 지고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한다. 출가가 출국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불교는 자신을 제도하는 것은 물론 타인도 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던가. 불교와 정치는 방법은 다르나 추구하는 목적은 같다. 둘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상호 보완의 역할을 한다. 정치는 불교 교화의 도움이 필요하고 불교 역시 홍법을 위한 정치의 보호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불교는 정치와 분리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줄곧 훌륭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모든 나라를 돌며 제도하시고, 수시로 왕궁에 들어 설법을 하며, 어진 임금의 치국의 도리를 설법하셨다. 빔비사라 왕(Bimbisāra, 頻婆娑羅王), 아쟈타삿투 왕(Ajātaśatru, 阿社世王), 파세나디 왕(Pasenadi, 波斯匿王), 우다야나 왕(Udayana, 優塡王) 등 수많은 인도국의 왕들이 부처님의 감화를 받고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불교의 호법이 되었다. 또한 나라를 안정시키고 건전한 사회를 건설하며 백성을 복되게 하는 데 불교의 참된 가르침을 응용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든 뒤에는 아쇼카 왕(Aśoka, 阿育王), 카니슈카 왕(Kaniska, 迦膩色迦王), 하르샤바르다나 왕(Harṣavardhana, 戒日王), 밀린다 왕(Milinda, 彌 蘭陀王) 등 수많은 왕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렸으며, 맑고 투명한 정치를 하여 인도 역사에 찬란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중국에서도 역대 선사들은 제왕과 빈번하게 교류하며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그중에 조정을 보좌한 공로로 국사에 추대된 스님으로 남양南陽 혜충慧忠 선사, 법장法藏 현수賢首 선사, 청량淸凉 징관澄觀 선사, 오달悟達 지현知玄 선사, 옥림玉林 통수通琇 선사, 천태天台 지의智. 선사 등이 있다.
또한 조정에 출사하여 재상이 된 예도 있다. 송 문제文帝가 재상으로 삼은 혜림慧琳 선사는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기에 당시 사람들은 ‘흑의재상黑衣宰相’이라고 불렀다. 당 태종은 명첨明瞻 스님에게 나라를 안정시키는 도리를 설해 달라고 청했다. 이때 명첨 스님이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라고 설하자 태종이 기뻐하며 재상으로 추대했다. 명나라 때 요광효姚廣孝는 본래 도연道衍 선사이다. 영락제永樂帝가 그 영특함을 높이 사 환속하여 조정을 도우라는 칙령을 내렸고, 명나라 초기의 국풍을 맑게 하는 데 공헌이 컸다.
이 외에도 위진 남·북조 시기부터 조정에는 승정僧正, 승통僧統, 승록사僧錄司, 대승정大僧正 등의 승관僧官을 설치했으며, 일본에서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테베트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정교합일政敎合一’을 실시하고 있다. 태국, 스리랑카, 네팔 등에서는 불교가 정치를 이끌고, 정치는 불교를 존중한다. 일본은 불교를 국교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은 삼보를 신봉하고 집정자는 삼보에 예경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불교가 존중을 받고 있다. 한국도 불교를 국교로 삼은 적이 있으며, 특히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목판에 대장경을 새기기도 했다. 이는 불교와 정치가 밀접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손문 선생이 “불교는 세상을 구하는 자애로움이며, 정치를 보좌함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 것처럼 정치는 불교 교화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불교는 정치와의 화합 기능뿐만 아니라 소외계층을 제도하고, 증오심을 해소하고, 완강함을 누그러뜨리는 등 자비를 통해 교화시키는 공덕으로 정치를 도울 수 있다.
『전계정법傳戒正法』에서 “만약 백 가구의 마을이 있는데, 열 사람이 오계를 지키면 열 사람이 온순해지고, 백 사람이 십선을 수행하면 백 사람이 화목하다. 이 풍속과 가르침을 우주 내에 널리 전파하면 인자한 사람이 백만이다. 착한 일 한 가지를 하면 악한 일 한 가지를 없애는  것이 되고, 악한 일 한 가지를 없애면 형벌 하나를 쓰지 않게 된다. 한 집에서 한 가지 형벌을 없애면 형벌 하나를 쓰지 않게 된다. 한 집에서 한 가지 형벌을 없애면 온 나라에서 백 가지 형벌이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하면 국왕이 다스리지 않아도 절로 태평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불교의 오계는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공헌을 한다.
정치에 대한 불교의 영향과 공헌은 역대 기록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생산에 도움을 주고, 교통을 발전시키고, 생태계를 보호하고, 사회의 소외계층을 구호하고, 문화를 창출하고, 군인과 민간인을 안정시키고,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의료 봉사를 실시하고, 재무 운용 및 과학기술, 문학 등에 도움을 준다.
불교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난세에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항상 해왔다. 부처님은 마가다국의 신하 우세優勢에게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칠불퇴법七不退法’을 들려줌으로써 오묘한 솜씨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해결했다.
당나라 때 안녹산이 거병하여 반란을 일으켰지만 조정에서는 군비가 부족했다. 이에 불제자들은 자신의 도첩을 팔아 군비에 보탰으며, 안사의 난을 평정하는 데 가장 큰 힘을 보탰다. 강남에 새 도읍을 정한 남송의 고종 황제는 법도法道 선사를 청해 국사를 함께 의논했다. 선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군량도 풍족하게 모았고, 참전하는 군대의 상벌을 분명히 함으로써 군기를 확립했다.
절도사를 지내다가 선승이 된 유병충劉秉忠은 원나라의 황제가 중원에 들어온 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야율초재耶律楚材에 의해 기용되었다. 유병충은 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무고한 살생을 피하기 위해 선뜻 나서, 조정朝廷의 의식儀式을 세우고 제도를 제정했다. 야율초재를 보좌하며 한족 문화 보급에 힘써 한민족의 명맥을 유지시켰다.
원나라 때의 지온至溫 선사는 왕이 덕행을 베풀도록 커다란 공을 세웠으므로 세조에 의해 불국보안佛國普安 대선사로 봉해졌다. 중국 공산당 남부지구 사령관 허세우許世友는 소림사 승려였었다. 예로부터 정치를 보좌하고 교화했던 불교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 밖에도 부처님께서 어진 정치를 펼치도록 교화했다는 내용이 수많은 경전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부처님은 『대살차니건자소설경大薩遮尼乾子所說經』에서 “정권을 가진 자는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듯 백성을 염려해야 한다”고 설하셨다.
『여래시교승군왕경如來示敎勝軍王經』에서는 국왕이 된 자는 “온 나라의 모든 중생은 부리는 노비이거나 보좌하는 신하이거나, 응당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섭四攝으로 그들을 섭수攝受해야 한다”라고 설하였다.
『장아함경』에서는 “군신은 화목하고, 상하가 서로 공경해야 한다. 이러하면 그 나라는 오래도록 편안하다”라고 하였다.
『불설패경초佛說.經抄』에는 “왕이 된 자는 고금의 것을 밝게 탐구하여 통달하며, 움직일 때와 고요할 때를 알고, 강하고 부드러움의 이치를 얻어 아랫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백성들을 이롭게 하며, 공평하게 베풀어야 한다”라고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