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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공양의 유래와 의미
“범상한 사람 백을 공양하는 것이 착한 사람 하나를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착한 사람 천을 공양하는 것이 다섯 가지 계행 지키는 사람 하나를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다섯 가지 계행을 지키는 사람 만萬을 공양하는 것이 수다원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수다원 백만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사다함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사다함 천만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아나함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아나함 일억만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아라한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아라한 십억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벽지불 한 분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벽지불 백억 분을 공양하는 것이 부처님 한 분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부처님 천억 분을 공양하는 것이 생사고락의 모든 차별법을 초월하여 닦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자성을 깨친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나오는 대중공양大衆供養의 공덕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흔히 절에서 밥 먹는 것을 공양供養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양의 원래 의미는 음식물이나 의복 등을 삼보三寶와 부모, 스승, 망자亡者에게 베푸는 것을 말하는데, 그 유래는 부처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설산에서 고행하시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극단의 고행이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으시고 마을로 내려와 수자타로부터 우유죽 한 그릇을 공양 받고 원기를 되찾아 다시 명상에 든 뒤 깨달음을 얻어 부처를 이루었다는데서 그 첫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후 교단이 형성된 뒤에는 출가수행자들은 일체의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대신 탁발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했습니다. 이것은 수행을 위한 방법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구걸행위와는 다른 엄격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매일 오전 정해진 시간에 탁발을 다녀야했고 공양하는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곱 집 이상은 다니지 않았으며,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해서도 안 되었습니다.
이처럼 수행자에게는 무소유無所有와 하심下心의 수행을, 재가자에게는 공덕功德을 쌓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행해졌던 풍습이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반승飯僧이라는 의식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려시대의 반승재飯僧齋인데, 기록에 의하면 이 반승재에 적게는 1만 명에서 많게는 10만 명의 스님들에게 공양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전통이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사라졌다가 최근에는 안거 기간에 선방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을 예우하고 공경하기 위해 도반道伴스님이나 불자들이 음식이나 의복 등 여러 가지 물질적 혜택을 베푸는 아름다운 풍습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이 풍습은 승보에 대한 존경의 표시지만 나아가서는 스스로 선善을 행함으로써 그 업이 모든 중생에게 미친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습이 널리 확산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