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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행복하기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선재여, 번뇌를 낳는 왜곡된 견해를 끊고자 한다면
본래 실상과 여실히 마주할 수 있어야 하리라.
나, 윤회의 결과가 된 이상 선의 인을 낳도록 해야 하니.
중생심으로 언제까지 원치 않는 괴로움에 속박될 것인가.
윤회의 뿌리가 되는 무지의 의식,
그 무명의 껍질을 깨고 나갈 때이다.
                                             -티베트불교의 논사 용수보살 말씀 가운데-
 
나의 의식 속에서 분석이 되는 대상이 본래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을 일컬어 실집 또는 법집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바깥의 경계에 의해서가 아닌 내면에 의해 변화함을 스스로 알아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날 우리는 현대과학의 마음 연구에 대한 성과로써 과거 인간의 역사를 통해 왜곡된 사상이 야기한 다양한 번뇌의 본질을 바르게 바라보는 훈련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다방면으로 취향에 맞는 선택을 통해 체험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종교에서의 수행입니다. 다만 마음의 변화와 심층적 분석에 있어서 종교적 관점으로 명확히 증명한다는 것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오차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불교에서는 다양한 마음의 감정에 대한 논증을 석가모니 붓다의 깨달음의 핵심인 근본 사성제를 본질로 지난 2천 5백년 이상 구체적으로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해 왔습니다.
용수보살의 논서 중론에서는 법집으로써 어떻게 윤회를 하는가를 논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뿌리에 박힌 근본 번뇌를 어떻게 온전히 뽑아낼 것인가. 중생의 괴로움은 나 아닌 다른 이가 대신해서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붓다의 가피로써 자량을 베풀어 목욕하듯 업을 씻겨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붓다는 본래의 실상을 체계적인 논증의 방식으로 깨우쳐줌으로써 중생 스스로가 비로소 무명을 보고 붓다께서 발견한 진면목과 같이 따라 발견하도록 조력하셨습니다. 자신의 괴로움을 스스로 파악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나의 보호자이자 안내자임을 숙지해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의 의지처는 어디의 누구에게 있습니까.
불교도에게 의지처는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사성제의 도제에 입각하여 체계적 수행을 하는 분을 우리는 승가라도 합니다. 오늘의 재가불교 공동체 역시 승가 못지않은 차제적인 수행의 단계를 통해 심도 깊은 불교 수행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지관의 방식으로 공성을 직접적으로 자각하려는데 주력을 합니다.
수행을 하려 한다면 무엇보다 바른 사유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이제 막 수행을 시작하는 법우가 있다면 입보리행론으로 마음 훈련으로 초심을 단련하기를 추천합니다. 이 자리에서 법을 설하는 본인 달라이라마는 이생에서 자량도의 과위만이라도 성취한다면 그로써 충분히 만족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생에 붓다의 경지에 이르리라는 생각은 저에게 무리라고 여깁니다.
일상에서 바라밀 행을 통해 덕과 복을 증장시키십시오. 사소한 일에 마음을 쓰지 않도록 하십시오. 정작 큰일을 하려 할 때 속박된 소소한 작은 일들로 인해 방해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남을 이롭게 하는 것에 마음을 쓰도록 해야 합니다. 일체 중생을 위해 살아 있는 생명체를 위해 항시 보시를 베푸는 마음자리를 내십시오. 자비심이 완벽해질 때까지 쉼 없이 꾸준히 행하십시오. 깊은 연민의 자비심으로 이타를 위해 베풂에 대한 확신을 지녀야 합니다.
행복을 구하는 불교도라면 보리심과 공성의 연대를 신중히 참구해야 합니다. 심도 있는 금강승 수행을 하더라도 현교에 대한 정확한 이론의 토대를 세워야 합니다. 정법의 정진에 써야할 이 몸 역시 사사로운 일에 잘못 쓰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몸은 이생과 다음 생을 잇는 씨앗으로 소중히 다루어져야 합니다. 때문에 지계 행으로써 자신을 기만하지 않도록 돌보아야 하겠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알아차림 훈련을 통해 하루를 마무리할 것을 권유합니다.
공성의 지혜가 없이는 보리심이 있다 하더라도 붓다의 길에 온전히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실상의 모든 것이 무자성이며 공함을 숙지해야 합니다. 무자성의 지혜가 기반이 되었을 때에 붓다께서 걸으신 길과 더불어 밝히신 이치를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깊은 내면의 보리심으로 일체 중생을 위해 회향해야겠습니다.
당신의 스승은 어떠한 분입니까. 수행자의 길을 보여주는 스승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제자를 향한 연민심과 더불어 스승도 또한 수행력과 법의 구전을 두루 갖추어야 합니다. 진정한 참된 스승은 자신의 마음 다스림을 위한 삼장을 여법하게 갖춘 분이셔야 합니다. 이는 일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형적 체제뿐만 아니라 교사로서의 자질을 바르게 두루 갖춘 분이어야 합니다. 본래 스승이신 붓다의 말씀과 어긋난 법이 아닌 논리를 나의 스승이 논한다면 제자는 의심을 들어 바르게 사유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행해야 할 것은 반드시 행하십시오. 동시에 알아차림으로 깨어 있으십시오. 항시 법과 더불어 본래 실상을 헤아릴 때 나의 진면목과 마주하게 됩니다. 기억할 것은 인욕을 통한 성냄의 허물을 아는 것입니다. 한 순간의 티끌과 같은 분노조차 아무런 이로움이 될 것이 없음을 명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