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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전兄前 상서上書

신규탁
한국선학회 회장


1.
〇〇형께서도 아시다시피, 제가 불교의례에 관심이 참 많습니다. 이런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또 제가 스승으로 마음속에 뫼시는 어른의 영향임도 형도 오래 전부터 알고 계셨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스승님께 배워온 지도 벌써 40년이 됩니다. 우연한 기회에 스승님 따라 봉선사 근처 장현 시주 댁 시달림에서, 우리 스님께서 우리말로 안좌安座하시는 것을 들었지요. 모두들 경청하고 있던 모습이 선한데 엊그제 같네요.


〇〇형. 그간 두루 편안하셨는지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덕분에 저희 내외는 여전합니다만, 어머님께서 점점 기운이 없어지시네요. 금년이 88세이시니 그럴 연세도 되셨지만, 그래도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네요. 영감님 보내시고 혼자 계신지가 5년이 되시는데, 가신 분을 봐도 그렇고 남아계신 분을 봐도 그렇고, 마음이 아프네요. 생로병사의 도리를 책으로만 배웠지, 막상 제가 겪고 보니 어찌 말로 다 할 수가 없네요. 얼마 남지 않은 이별이 아쉬워서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이렇게 집에서 주로 원고를 씁니다. 요새는 재가불자를 위한 일요법회 식순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형께서 한번 살펴주시고 많이 가르쳐주세요.


2.
재가불자를 위한 <일요법회>에 사용할 의례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의 역사가 긴 만큼 그에 따르는 의례의 범위 또한 넓고 양도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칙을 도입해보았습니다. 자연 사부님의 책을 참고하게 되었습니다.
(1)첫 단계로는 『삼화일용집』(김월운 편집, 도서출판 연꽃, 1986)을,
(2)둘째 단계로는 『삼화행도집』(김월운 편집, 기원정사, 1980)을,
(3)셋째 단계로는 『통일법요집(스님용)』(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엮음, 조계종 출판사, 1998)을,
(4)넷째 단계로는 『통일법요집(신도용)』(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엮음, 조계종 출판사, 1998)을 ‘기준’삼았습니다.
이 중 (1)과 (2)는 월운 강백께서 개인적으로 출판한 것이고, (3)과 (4)는 월운 강백께서 상임편찬위원장 직을 맡아 종단에서 공식적으로 출판한 것으로, 네 책 모두 같은 분이 주관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약간의 글자 출입出入과 광략廣略과 차서次序는 있습니다.
..형. 재가불자를 위한 일요법회 우리말 의례집을 만들자니 자연 옛날의 한문투를 한글로 번역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글 번역이란 의미 자체에 결정적인 오류가 없는 한, 번역자가 선택한 어휘와 문체를 존중해야 합니다. 번역이란 또 다른 창작이기도 합니다. 결국 번역자 개인의 탁월한 ‘천재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존중되어져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1)과 (2)를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2)는 (1)보다 6년 뒤에 나온 것으로 편저자의 수정보완이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우선적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한편, (3)과 (4)를 편차 할 때에 월운 사부님께서 비록 ‘상임편집장’이었다고는 하나, 약 50여 명으로 구성된 ‘편찬위원’이 있었기 때문인지, 거기에는 한글의 번역 문체에 출입이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위와 같이 단계적 서열로 ‘기준’을 매겼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종단 차원의 의례집을 편찬하거나 또는 종전宗典의 번역 내지 편수를 위해서는,
(1) 해당 분야의 탁월한 인물을 선별하여 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맡겨야 합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보조자일 뿐입니다.
(2) 다음에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다음에는 종단의 공식적 기구를 통해 공인하여 반포해야 합니다.
(3) 끝으로 이렇게 공인 반포된 책을 종단의 전 구성원이 존중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글줄이나 안다고 저마다 번역해서 사용한다면, 책임 있는 ‘종단’이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3.
전통적 봉건시대에 불교는 재가 대중을 위한 상시적인 법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러니 그에 따르는 의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비록 <상주권공>, <시왕각배>, <영산작법> 등에서 ‘헌공’과 ‘설법’을 병행한 사례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죽은 자에 국한됩니다. 아쉬운 대로 그것을 활용하여 ‘불공佛供’과 ‘청법聽法’이 어우러지는 한글 의례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상주권공> 등은 전문의식이기 때문에, ‘급조승’을 배출한 아픈 역사의 질곡 때문에, 소리 낼 줄 아는 출가 불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에, 현재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고 있는 전통 의식을 대본으로, 그것을 한글화 하는 방안을 모색해 본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널리 쓰이는 <삼보통청>을 응용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입니다. 
〇〇형. 저는 이 일을 위해 우선 역사상의 부처님 일행께 공양을 올렸던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1) 집 안팎을 잘 청소하고,
(2)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3) 부처님과 승단에 초청장을 내고,
(4) 부처님 일행이 집안으로 오시면 자리를 내어 앉으시게 하고,
(5) 공양을 권하여 드시게 하고,
(6) 자신이 얼마나 부처님을 존경하는지를 찬양하여 아뢰고,
(7) 그 끝에 세상살이의 고민도 여쭈어 도와주실 것을 축원 올리고,
(8)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모인 대중들에게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 열반으로 향하는 가르침을 설해주십니다.
(9) 끝으로 법문을 들은 대중들은 수행할 것을 발원하며 부처님 일행을 배송합니다.
그래서 ‘송주’로 (1)과 (2)를 상징화 했고, ‘거불’로 (3)을 상징화 했고, ‘헌좌’로 (4)를 상징화 했고, ‘예참’으로 (5)를 상징화 했고, ‘탄백’으로 (6)을 상징화 했고, ‘축원’과 ‘설법’으로 (7)과 (8)을 각각 상징화 했고, 마지막 ‘발원’으로 (9)를 상징화했습니다.
이렇게 의례를 상징화하는 과정에서 고민스러웠던 점이 많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 하나만 제시하여 〇〇형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의례집을 이상과 같이 편집하면, 상단과 중단은 각각 공양을 올렸지만, 하단이 빠지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영가님들도 이미 승불신력承佛神力하여 법당 안의 영단에 모셔졌고, 게다가 <가지권공>도 했고, 또 축원에서 왕생극락하실 수 있도록 부처님께 빌어드렸고, 더군다나 법문도 우리와 함께 들으셨으니, 그것으로 이미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비록 그것이 유교식儒敎式이겠지만 조상님께 전奠을 올리는 세간의 풍습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렇다고 넓은 양푼에다 머슴밥처럼 떠놓고 그 위에 고슴도치처럼 숟가락을 있는 대로 꼽아놓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귀신은 촉식觸食을 한다는데, 그래서 그 대안으로 <광명진언>을 근념勤念토록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제는 순서를 어디에 넣어야 좋을지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상단에 이어 중단 퇴공을 했으니, 내친 김에 한 단 더 내려 하단으로 내려 쓰는 동시에 <광명진언>을 하면 어떨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자니 <가지권공>과 중복이 돼서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 의례 속에는 이미 <진언변공眞言變供> 의식이 들어있습니다.
제일 바람직한 것은 전래의식 속에 전시식奠施食이 여법하게 정비되어 오늘에 이어지고 있으니, 영가를 위한 전문 법요는 거기에서 별도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의례집이 영단을 향해 <광명진언>으로 영가의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순서를 택한 이유는, ‘삼단공양三壇供養’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〇〇형님. 이런 저런 생각을 두서없이 늘어놓았습니다. 이러고 있는 사이에 어머님께서는 아들 먹으라고 이런 저런 과자며 과일들을 계속 나르시네요. 혼자 말로, “세월아 가려면 자네나 가지, 아까운 이 청춘을 왜 데려가는가?”라시며, 이 못난 아들 머리를 만져주시네요.
〇〇형, 일별 시간 내서 저희 집에 한 번 오세요. 어머님께서도 무척 반가워하실 겁니다. 옛일들을 많이 잊어 가시지만, 어미님 기억 남았을 때 꼬-옥- 다녀가세요.
끝으로 봉선사 사부님 소식은 다음 편지 때에 소상히 전하기로 하고, 오늘은 강녕하시다는 말씀만 전하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