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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불교의 청사진(22)

성운星雲 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지난호에 이어서>


20. 미래관未來觀 : 발전지도發展之道


자신의 장래에 희망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인생의 가장 큰 비애이다. 희망이 있어야 미래도 있다. 인간은 희망 속에서 살아간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것은 늙을 때를 대비함이고,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은 장차 큰 인물이 되길 바람이다. 일가친척끼리 사이가 좋고 이웃끼리 화목한 것은 장차 모두 즐겁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다. 꽃과 나무를 심고, 굶을 때를 대비해 곡식을 저장하는 등 기다림 가운데에도 무한한 희망과 미래가 있다. 중국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문을 계승하고 후손을 잇는다’는 것도 장차 종족의 수명을 연장하여 대대손손 이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이 아닐까? 현대의 장기이식도 미래에 생명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희망이다.
한 국가의 국민이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것은 장차 국가가 더 나아가기를 바라서이다. 도로와 교량을 건설하는 것은 미래의 교통이 더 편리하기를 바라서이다. 빈곤을 구제하는 것은 장차 사회의 복지에 부족함이 없길 바라서이다. 현명한 사람을 선출하는 것은 장차 정치가 더욱 민주화되기를 바라서이다. 국가 공무원을 징계하는 것은 장차 정부가 더욱 청렴하기를 바라서이다. 또한 천하태평과 국태민안을 바라고, 세계평화가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하는 등은 미래에 대한 현대인들의 가장 큰 바람이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불교는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더구나 미래는 우리의 희망이기에 더욱 중시한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장차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 세계에서 성불할 것이며, 불호는 무엇이라 하는지 등 ‘수기授記’하신 말씀이 수많은 불경에 나온다. 수기는 불법이 미래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불교는 ‘발원’에 대해서 말한다. 불제자는 장차 어느 불국토에 왕생하고, 대중에게 어떻게 봉사할지를 발원한다. 발원은 불교가 미래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설명이다. 염불하는 사람은 정토에 왕생하길 바라고, 참선하는 사람은 밝은 마음으로 천성을 깨닫길 기대한다. 더 나아가 보시하고, 인연을 맺고, 회향공덕을 하는 것 등은 모두 더 좋아지길 바라서이다.
인간은 희망 속에서 살아간다. 인생에 희망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 인간은 종종 희망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자포자기를 한다. 희망이 있기 때문에 미래가 있는 것이고, 미래가 없는 인생의 황혼의 아름다움과 같다. 짧은 시간, 잠깐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즐길 만한 가치가 없다.
아이가 어려서는 부모를 따라 예의를 익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지식을 배우는 것은 아름다운 미래를 갖기 위해서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도 밤에 야근까지 하는 것은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하는 까닭이다. 개미와 벌이 양식을 모으는 것 역시 미래를 위해서이다. 아이와 청소년을 보면 국가의 미래에 희망이 있음을 느낀다. 화초와 수목은 시들어 떨어지더라도 뿌리는 여전하기 때문에 생기生機가 있다.
미래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우리 생명의 본질이며, 쉼 없이 흐르는 생명의 강줄기이다. 단 하루의 인생이라도 백년을 계획하고 살아야 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은 생명이 짧지만 무한히 반복되는 미래가 있다.
저축은 미래를 위함이요, 열심히 일하는 것도 미래를 위해서이다. 미래는 아름다운 희망이다. 과학자는 인간에게 인류의 미래를 더욱 발전시키는 과학적 성과를 제공한다. 철학자는 풍부한 인생의 사상이 포함된 철학 이념을 전해준다. 문학가는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여 인간에게 그림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선사한다. 실업가는 생산을 통해 사회 대중의 생활을 더 낫게 한다. 미래의 희망을 위해 수많은 혁명가들은 나라에 기꺼이 몸을 바쳤다. 인류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희생하기 때문에 인류의 미래 역시 무한한 희망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미래의 성과를 위해 지금의 고생과 노력을 기꺼워하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피와 땀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자녀가 장래에 성공하기를 염원하고, 가정의 평안과 즐거움을 바란다. 장차 받을 퇴직금을 위해 지금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 미래의 수확을 위해 지금은 열심히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한다. 미래에 좋은 명성을 얻기 위해 지금은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 장차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지금 열심히 입공立功, 입덕立德, 입언立言해야 한다.
세간에 사는 우리가 희망을 갖고 생활해 나가면 내일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내일 우리가 희망을 갖고 생활해 나가면 내일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내일 우리는 또 많은 일을 해야 하므로 오늘은 편안히 쉬어야 한다. 다음 생에서도 또 수확해야 할 수많은 날들이 있으므로 이번 생에서는 열심히 경작해야 한다. 사람은 희망 속에서 살아야 한다. 과거의 기억 속에 묻혀 살아서는 안 된다. 미래는 지금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고, 미래가 있어야 무한한 희망도 있다.
불교의 삼세인과관에서는 생명을 한 세대로 끝난다고 보지 않는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현재가 있기에 미래가 있으며, 미래가 있기에 삼세가 있고, 삼세가 있기에 희망이 있다. 삼세란 과거, 현재, 미래를 이른다. 인류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사회과학을 연구함은 물론, 눈은 이미 미래를 주시하고 있다. 그래서 ‘미래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났다.
미래학은 참 생소한 학문이다. 지금 사회와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만, 미래는 아직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연구하겠다는 것일까? 과거 일류의 역사적 경험 및 생활 속 체험, 그리고 사상과 과학을 통해 각 학문의 척독(尺牘 : 짤막한 편지)을 살펴 미래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가늠하는 것이 미래학이다.
지구의 미래, 인류의 미래, 미래의 전쟁, 미래의 경제, 미래의 생물, 미래의 우주 등 온 세상이 모두 미래를 꿰뚫어보고 연구하고 있다. 온 세상의 학자가 모두 미래를 향해 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는 이미 미래 우주를 점령할 준비를 시작했고, 생물학자는 이미 1,000살 이상 살 수 있는 미래 인류의 생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지리학자는 인류가 황량한 들판과 사막을 개발하게끔 만들었다. 심지어 미래에는 홍수를 석유로 바꾸고 좋지 않은 유전자를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기를 희망하는 사람도 있다.
미래 세계에는 로켓을 타고 달, 화성, 목성까지 바로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의 세계는 공기를 먹어도 배부를 수 있고, 나뭇잎으로 허기를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의 세계에는 돌멩이도 과학의 제련과정을 거치면 빵이 될 수 있고, 목재로도 삼겹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세계는 인류가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살 수 있고, 침대에 누워 자면서도 세계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쓸데없는 상상이라고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사용하는 인터넷, 팩스, 이메일, 정보 등이 인류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인간 사이의 거리도 좁혀놓지 않았던가. 또한 유전자의 발견, 생명의 비밀 등은 불교 업력론의 우수성과 정교함을 여실히 증명했다.
불법에 자주 나오는 천안통은 어떠한 장애물이 있어도 멀리 있는 것까지 똑똑히 볼 수 있고, 천이통은 아무리 먼 곳의 소리도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옛날 누군가가 “그것은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반문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 아무리 먼 곳이라도 TV위성전파 등을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천안통 아닌가? 아무리 먼 사람의 말소리도 라디오방송이나 전화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천이통 아닌가?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위에 사람이 앉아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고, 수정구슬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여 준다. 이것이 신화 아닌가? 그렇지만 지금 비행기가 그 양탄자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지금 비행기가 그 양탄자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TV는 수정구슬과 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들을 때는 신화 같지만, 그 수많은 신화는 사실 불경에서 이미 구체적인 사실이 되었다.
우리가 『아미타경』에서 보듯이 극락정토는 땅이 황금으로 덮여 있고, 흐르는 물은 시원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며, 새 울음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 모두 진리의 법음이다. 극락세계에는 교통사고도 없고 남녀의 음욕도 없다. 모든 이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보고 생각하는 것마다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마음과 생각에서 내는 대로 모두 치취하고 얻는 것이 이것이다. 불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처럼 아름다운 미래 세계를 설계해 놓았다.
불교의 이상적인 미래사회는 ‘불광佛光이 두루 비추는 사회’이다. 불광이 두루 비추는 사회관 생권정치生權政治, 진리종교眞理宗敎가 모두 실현된 인간정토의 사회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는 십만 억 불국토 밖의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세계, 약사불의 동방유리세계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의 정토는 인간세계에서도 실현 가능하며, 현대에서도 실현 가능하다. 『유마힐경』에서는 “내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가 청정하다”고 말했다. 사바세계는 무척 더럽고, 어두우며, 불안하고 번뇌가 쌓이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건전하고 아름답게 만들면 장차 우리 사회는 부처님의 보살핌 아래, 더 이상 사회 계급 사이의 다툼도 없소, 남녀 상관없이 모든 중생은 평등하게 될 것이다. 경제적 소유도 없고, 물질적 결핍도 없어 국민 생활이 여유로워질 것이며, 악인으로 인한 피해도 없고 정치적 박해도 없어 사회가 안정되고 화목할 것이다. 결국 극락세계의 모든 것이 우리 눈앞에 실현될 것이니, 이 세상이 바로 인간정토가 된다.
‘인간정토’는 미래의 이상적 사회이다. 이 이상에 도달하고 이 목표를 원만히 이루려면 사람들이 저마다 오계를 지니고 지켜야 한다. 오계는 불교의 근본 계율이다. 오계란 ‘살생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정한 부부 관계 이외에 음사淫事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이다. 오계를 나눠보며 다섯 가지 조항이지만, 사실 그 근본을 따져보면 중생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다툼, 소란, 불안은 주로 서로에게 피해를 주며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인간은 저마다 오계를 받들어 행해야 한다. 즉 함부로 살생하지 않음은 타인의 생존권을 존중하고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도적질 하지 않음은 타인의 소유물을 존중하고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음사하지 않음은 타인의 신체와 정조를 존중하고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거짓말하지 않음은 타인의 명예와 신용을 존중하고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술을 먹지 않음은 자신의 신체, 건강, 지혜를 존중하고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세간의 모든 이가 오계를 엄격히 지키고, 나아가 사섭四攝 육도六度를 실천하고 인과업보를 이해하며 팔정도를 받들어 행한다면 인간정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는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