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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로 만든 꽃향기를 맡으며

신규탁
한국선학회 회장


1.
성철 선사의 법문집으로 『本地風光』(1982년)이라는 책이 있다. 한자의 음은 ‘본지풍광’인데, 뜻으로 풀어보면 ‘본 모습’ 정도가 된다. 이 법문집에는 1967~1982년(총16년) 사이에 실시한 상당법어를 100꼭지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다. 물론 당시 해인사의 전문 선승들을 대상으로 한 상당법어이다. 문장은 고대 한어와 구어를 일부 포함시켜 한글 번역문을 나란히 실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참으로 묘한 감동을 받는다. 나의 이런 감정을 한마디로 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상대에게 허점을 찔리는 그런 감정이다.
나 자신은 뭔가를 아는 줄 알고 지껄이다가 듣고 있던 사람의 한마디 질문에 나가떨어지는 그런 허점 말이다. 『본지풍광』의 다섯 번째에 이런 법문이 실려 있다. 성철 선사는 당시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는 도적이고, 역대의 조사들도 도적인데, 저들이 훔친 장물은 어디에 있는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선사들은 그저 내치는 말씀들을 잘 하신다. “마음이 괴롭습니다.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상담을 하는 제자에게, “그 아픈 마음을 가져와 봐라. 그러면 내가 편안하게 해 줄게.” 그러자 제자는 “마음을 어떻게 가져옵니까?”, “마음을 못 찾겠습니다.”,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좀 알려주세요.”하는 제자에게 “부처가 어디 있느냐? 무슨 말라비틀어진 이야기냐!”
“경전이란 똥 닦는 종이와 같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저간의 배경이 깔려있다. 성철 선사의 위의 법문도 그렇다. 필자 나름 그 배경을 구성하여 읽어보겠다.
“부처와 조사가 모두 도둑놈들이다.”라는 이야기를 선사들은 심심찮게 한다. 그것도 밝은 대낮에 그런 짓 하는 놈들이다. “부처도 죽이고 달마조사도 죽여라.”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이런 것을 다 아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 선 수행승들! 그런 도둑놈들 말 들으려 하는가? 사실 나 성철도 그런 도둑놈이다. 내 말 들으려는가?
그건 그렇고, 그런데 그 놈들이 무엇을 훔쳤지? 말해보아라! 도둑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입버릇처럼 떠들어 대는 네놈들! 그런 말을 하고들 다녔으니, 어서 말해 봐라. 훔친 물건 어디 있느냐? 뭘 훔쳤는가? 성철 선사는 이렇게 당시 청중들에게 다그치는 것이다. 부처와 조사를 꾸짖을 줄만 알았지. 그것도 남의 흉내를 내어. 정착 왜 그들이 꾸짖음을 당해야 되는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허점을 찌르는 질문이다. 무얼 훔쳤지? 강력한 의심을 촉발시키는 질문이다. 성철 선사 상당법어의 매력이다.


2.
이 법어의 핵심은 “도적질한 장물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보라.”이다. 선승들이 그저 부처를 욕하고 조사를 욕하는 남의 흉내는 잘 낸다. 그래, 요 흉내 잘 내는 선승님들아, 남의 소리나 외워서 지껄이는데, 그래, 훔친 물건 어디 있는지 말해봐라! 성철 선사의 내심 의도는 그러지 않았을까? “여러분 실참실수을 해야지, 말로 되는 것이 아닐세!”
이렇게 상대의 의심을 잔뜩 불러일으킨 다음, 성철의 법어는 깊이를 더해간다. 다음 대목에서는 옛 선사들의 화두와 그 화두에 대한 평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도둑놈’이다. ‘도둑’이 법문의 열쇠이다. 여기에는 『임제록』에 종종 등장하는 보화 스님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하루는 보화 선사가 후원에서 생채를 (말이나 소 같은 짐승처럼) 먹고 있었다. 임제 선사가 이것을 보고는 “이놈, 꼭 한 마리의 나귀 닮았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보화는 당나귀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임제가 말했다. “도둑이로다.” 보화 선사가 말했다. “도둑이로다. 도둑이로다.” 그러고는 바로 가버렸다. 이상의 내용에 대해 성철 선사는 짧은 평가를 한다. “두 선사는 서로가 원수지간이니 저렇게 머리를 맞대어 말을 섞지!”
과연, 임제가 도적인가? 아니면 보화가 도적인가? 이 화두에는 여러 선사들의 평가가 있다. 이 대화에서 보화 선사는 비판적 입장에서 제자들의 안목을 열어주는 형식을 취했고, 임제 선사는 수용적 입장에서 제자들의 안목을 열어준 것이다.
둘 모두 제자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말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화니합수和泥合水”라는 말이 있다. 이런 용어는 “타니대수拖泥帶水”로도 쓰인다. 뜻은 동일하다.
진리는 체험해야 하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닌데, 제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체면을 돌보지 않고 보화와 임제가 저렇게 장군 멍군 말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저들의 언행 너머의 저간의 소식을 알아차리라는 성철의 요청을 그는 짧은 평가로 드러낸 것이다. “두 선사는 서로가 원수지간이니 저렇게 머리를 맞대어 말을 섞지!”라고 말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거기에 들러붙지 말라는 것이 선사들의 주문이다. 이런 내심을 이렇게 표현한다. “만당형향철수화滿堂馨香鐵樹花”이다. 그냥 나무가 아니다.
무쇠로 만든 꽃나무이다. 향기 없는 향기, 말 없는 말, 그걸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철저하게 무심해야 한다. 성철 선사의 법어집을 읽노라면 이런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소위 흔적을 지운다. 허공을 나는 새가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 바람결로 남기지 않는다.


3.
『본지풍광』의 상당법어는 그 형식이 『벽암록』과는 많이 다르다. 오히려 『설두송고』와는 유사한 점이 있다. 현대 한국 선승들의 상당법어에는 『벽암록』에 등장하는 ‘평창’ 부분이 없다. 그 결과 화두가 생성되던 배경을 모르는 청중들은 문답의 쟁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현재 한국의 선사들 중에는 고대한어를 해독하거나 자신의 사상을 한문으로 작문 가능한 인물은 극소수이다. 성철 당시의 대중들도 그랬을 것이다. 이 시대의 문제를 이 시대의 언어로 설명해 내야 한다. 그렇다고 ‘생활법문’ 운운하면 민주주의 운운하거나 정치를 운운하거나, 문학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 결국은 인간을 속박하는 번뇌 해결을 위한 법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공덕을 삼보에 회향하는 불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대 우리를 얽어매는 속박이란 무엇인가?
그것들을 직시하고 그것을 풀어주는 그런 설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출가자에게는 출가자의 속박을, 재가자에게는 재가자들의 속박을 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진지해지면서 제대로 된 출가, 제대로 된 재가로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추구하려는 그런 자세들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삶에 대한 자신의 목표와 가치를 가지고, 그런 목적이 이끄는 그런 삶 말이다. 주어진 대로도 좋지만 자신이 가꾸어가는 자신만의 자신의 인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파트 값이 억 소리 나게 오르는 이런 세상에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온전하게 살기가 쉽지는 않다. 비교를 안 할 수 없고,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을 수 없다. 나라의 경제와 행복을 고민하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얽어매는 것이 무언가를 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평범하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을 얽어매는 세상의 부정적인 현상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해소시켜 가야 할 것이다. 말잔치가 아니라 무쇠 꽃향기처럼 흔적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