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8년

      2018년 01월호
      2018년 02월호
      2018년 03월호
      2018년 04월호
      2018년 05월호
      2018년 06월호
      2018년 07월호
      2018년 08월호
      2018년 09월호
      2018년 10월호
      2018년 11월호
      2018년 12월호

2017년

      2017년 01월호
      2017년 02월호
      2017년 03월호
      2017년 04월호
      2017년 05월호
      2017년 06월호
      2017년 07월호
      2017년 08월호
      2017년 09월호
      2017년 10월호
      2017년 11월호
      2017년 12월호

2016년

      2016년 01월호
      2016년 02월호
      2016년 03월호
      2016년 04월호
      2016년 05월호
      2016년 06월호
      2016년 07월호
      2016년 08월호
      2016년 09월호
      2016년 10월호
      2016년 11월호
      2016년 12월호

2015년

      2015년 01월호
      2015년 02월호
      2015년 03월호
      2015년 04월호
      2015년 05월호
      2015년 06월호
      2015년 07월호
      2015년 08월호
      2015년 09월호
      2015년 10월호
      2015년 11월호
      2015년 12월호

2014년

      2014년 01월호
      2014년 02월호
      2014년 03월호
      2014년 04월호
      2014년 05월호
      2014년 06월호
      2014년 07월호
      2014년 08월호
      2014년 09월호
      2014년 10월호
      2014년 11월호
      2014년 12월호

2013년

      2013년 01월호
      2013년 02월호
      2013년 03월호
      2013년 04월호
      2013년 05월호
      2013년 06월호
      2013년 07월호
      2013년 08월호
      2013년 09월호
      2013년 10월호
      2013년 11월호
      2013년 12월호

2012년

      2012년 01월호
      2012년 02월호
      2012년 03월호
      2012년 04월호
      2012년 05월호
      2012년 06월호
      2012년 07월호
      2012년 08월호
      2012년 09월호
      2012년 10월호
      2012년 11월호
      2012년 12월호

2011년

      2011년 01월호
      2011년 02월호
      2011년 03월호
      2011년 04월호
      2011년 05월호
      2011년 06월호
      2011년 07월호
      2011년 08월호
      2011년 09월호
      2011년 10월호
      2011년 11월호
      2011년 12월호

2010년

      2010년 01월호
      2010년 02월호
      2010년 03월호
      2010년 04월호
      2010년 05월호
      2010년 06월호
      2010년 07월호
      2010년 08월호
      2010년 09월호
      2010년 10월호
      2010년 11월호
      2010년 12월호

2009년

      2009년 01월호
      2009년 02월호
      2009년 03월호
      2009년 04월호
      2009년 05월호
      2009년 06월호
      2009년 07월호
      2009년 08월호
      2009년 09월호
      2009년 10월호
      2009년 11월호
      2009년 12월호

2008년

      2008년 01월호
      2008년 02월호
      2008년 03월호
      2008년 04월호
      2008년 05월호
      2008년 06월호
      2008년 07월호
      2008년 08월호

2007년

      2007년 09월호
      2007년 10월호
      2007년 11월호
      2007년 12월호
삼귀오계의 인간불교적 의미

 


성운星雲 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본 장은 초발심 불자들에 맞추어 인간불교 삼귀오계三歸五戒의 의미를 쉽고 편한 말로 설명한 것으로, 풀이된 내용상 인간불교의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삼귀오계를 받아 지닌 신도 여러분, 모두 평안하십시오!
우선 축하드립니다. 부처님께서 오늘 여러분을 당신의 앞으로 이끌어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발심하여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지닌다니, 이것은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가지며 크게 기뻐할 일입니다.
보통 사람은 부귀와 공명, 그리고 재물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이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세가의 모든 이익을 합해도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 지니는 가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삼보에 귀의함은 불학을 배우는 첫 관문입니다. 불·법·승 삼보는 불교신도의 믿음의 중심이자 세간을 초월하는 데 필요한 성재聖財입니다. 빛처럼 중생을 두루 따뜻하게 비춰주시는 부처님은 세간의 교주이십니다. 물처럼 중생을 촉촉이 적셔주는 가르침은 인생의 진리입니다. 밭에 신도의 공덕이 자라나도록 해주는 스님은 불법을 이끌고 지탱하는 선지식입니다.
삼보의 중요성은 태양, 빗물, 대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없어서는 안 됩니다. 삼보에 귀의해야만 법신혜명法身慧命이 자라고, 마음을 한층 더 승화시키며, 삶의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오계를 받아 지님은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 계의 본질입니다. 타인을 침범하지 않는 가운데 삼업三業이 청정하게 됩니다. 오계를 받아 지니면 다음과 같은 일이 생깁니다. 신심이 두터워지고, 공덕이 자라며, 역량이 생겨나고, 몸이 편안하며, 불도를 구하는 마음이 더해가고, 악행을 멈추며, 마음에서 지혜가 생기고, 존경을 받으며, 모두가 화목할 수 있습니다.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지니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넓습니다. 귀의하지 않고 계를 받지 않으면 받아 쓸 인연도 없습니다. 삼귀오계를 받으라고 권하면 어떤 사람은 항상 망설이거나 “내가 삼보에 귀의할 자격이 있을까?” 또는 “내가 오계를 지킬 수 있을까?”라며 의심을 품습니다. 사실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삼귀의와 오계를 받는 것은 이로움만 있을 뿐, 해로움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그저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는 것 뿐입니다. 만약 어떤 인연으로 처음의 생각이 바뀌어 불교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타 종교로 바꾼다 해도 인격적으로나 신용상 문제가 조금 있을 뿐, 그로 인해 죄업을 짓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계를 받아 지니는 것에 대해 모두들 수계 후에 지키지 못할 것을 걱정합니다. 범하기 쉽지 않은 엄중한 계인 바라이와 가벼운 행위로 쉽게 짓는 계인 돌길라는 모두 단번에 끊어내기 어렵지만 참회하고 개선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수계 뒤에 계율을 범한다 해도 심각한 문제는 아닙니다. 수계한다는 것이 절대 다시는 계를 범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참회하고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현이 아닌데 뉘라서 잘못이 없겠는가. 잘못을 알고 고치면 그보다 잘한 일이 없다”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곧 ‘삼귀오계’를 받겠지만 이 순간 모두의 마음에 분명 의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의와 수계 전에 먼저 모두를 위해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1. 삼귀오계三歸五戒 풀이
먼저 ‘귀의삼보歸依三寶’와 관련된 질문 몇 가지를 설명하겠다.
① 불교를 믿으면 반드시 귀의해야 하나?
“저는 원래 불교신자입니다. 평소 향도 자주 올리고 예불도 자주 드리는데, 꼭 귀의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만약 당신이 어느 정치적 정당에 가입할 때도 선서 없이 그 당의 당원이 되지는 않는다. 대통령 등도 취임 선서를 한 다음을 정식 취임으로 보고 업무를 시작한다. 남녀의 결혼도 먼저 결혼식을 올리며 대중의 인정을 받은 뒤에야 법률적으로 효력이 생긴다.
불교신자라면 마땅히 삼보에 귀의하는 순서를 가져야 한다. 귀의할 때는 자기의 지극히 정성된 마음으로 부처님과 마음을 이으면 부처님은 다시 자비와 위덕을 당신의 몸과 마음에 부어줄 것이다. 이렇게 감응도교感應道交한 뒤에야 비로소 불교신자가 될 수 있다. 만약 귀의라는 이 의식 없이 절하고 향만 피워서는 단지 불교를 존경하는 사람일 뿐, 진정한 불교신도라고 할 수는 없다.
 
② 삼보에 귀의하면 반드시 채식해야 하나?
“나는 삼보에 귀의할 수는 있는데 채식만 할 수는 없어서 관심만 갖고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삼보에 귀의한 뒤 반드시 채식만 해야 할까? 사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채식은 생활습관이자 도덕적 문제이다. 삼보에 귀의함은 채식과 아무 상관이 없는 믿음의 확인이다. 귀의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는 건강, 도덕, 습관 등의 이율 채식을 할 수 있고, 발심하여 귀의한 사람도 반드시 채식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삼보에 귀의함은 불교를 믿고 불교신자가 되어 다른 종교를 믿지 않겠다는 표시이다. 그러므로 귀의한 뒤에는 ‘성性은 바꿔도 종교는 바꾸지 않는다’는 실천이 필요하다. 즉 좋지 않은 성격은 고쳐야 하지만 다른 종교로 바꾸는 것은 안 된다. 귀의한 후 반드시 채식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살생을 적게 하는 것은 역시 중요한 수행이다.


③ 삼보에 귀의한 뒤 다른 종교를 믿으면 천벌을 받을까?
앞으로 어떤 인연에 의해 불교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면, 심지어 다른 종교로 개종한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벼락에 맞아 죽거나 재앙을 입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불교는 신들의 힘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조종하지는 않는다. 불교는 믿음의 자유를 존중하는 종교이다. 역사에서도 수많은 이교도가 불교로 개종한 사례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배움의 단계가 높아진 것으로 본다. 불교로 귀의했다가 결국 더 이상 불교를 믿지 못하게 되면 기껏해야 자신의 신용과 약속에 손상이 갈 뿐, 벼락을 맞는 경우는 없다. ‘천벌을 받는다’는 말은 사이비종교에서 신의 힘으로 인간을 제어하려는 수단이다. 불교는 절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불교 신앙은 스스로 간절히 원하고 발심하여 원을 세우는 데서 시작된다. 불보살은 절대로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
현재 세계 곳곳에는 두 종류의 종교 사례가 무척 많다. 물론 불교적 신앙은 ‘한마음으로 염불하고, 한마음으로 명호를 지니며, 한마음으로 귀의한다’처럼 깨끗함과 전념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마음 한뜻으로 한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지만, 부득이할 경우 편한 대로 실천하면 된다.


④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스승을 모신다는 것인가?
불교에서는 종종 신도를 자신의 개인 소유로 보는 경향이 있어 “누구누구 신도는 누구누구 스님의 제자다”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삼보에 귀의할 때 귀의를 주재하는 스님은 우리가 삼보의 제자이며 불교신도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귀의한다고 은사로 섬긴다는 것은 아니다.
귀의는 믿음의 표시이다. 믿음이란 얼마나 신성한 것인가! 은사로 섬김은 세간의 예의일 뿐이다. 오늘 내가 여기서 삼귀오계의 의식을 집전하지만, 나는 다만 증명해주는 스승일 뿐이다. 나 역시 불·법·승 삼보의 제자 중 하나이며, 여러분보다 좀 더 일찍 입도入道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삼보에 귀의함은 ‘나는 불교를 믿고, 불법을 인생의 지표로 삼길 원하며, 불교의 진리를 따른다’는 것일 뿐, 누군가를 은사로 섬긴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⑤ 삼보에 귀의한 뒤 신명에게 제사지내도 되는가?
어떤 사람은 “저는 전에 마조.祖, 성황城隍, 왕야王爺 등의 신들에게 절도 하곤 했는데, 지금 삼보에 귀의했으니 이젠 그들한테 절하면 안 되나요?”라고 질문을 한다.
물론 해도 된다!
우리는 평소 웃어른, 선생님, 성현을 만났을 때 항상 예를 갖추고 공경하며, 심지어 타종교의 사람들에게도 악수하고 고개도 끄덕여주는 등의 에티켓을 지킨다. 사람 사이에서는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갖춰 공경해야 마땅한데, 신명神明이라고 존경하고 절을 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절을 하고 공경하는 것과 귀의하고 믿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절은 한순간이지만 귀의는 한 평생이다. 존경하는 것과 신앙은 같지 않다. 그러므로 귀의한 뒤 신에게 좌우되지 않도록 신명에 대한 믿음을 초월하는 것이 중요하다.


⑥ 귀의한 뒤 조상에게 계속 제사지내도 되는가?
중국인은 늘 효도를 중요하게 여기며, 부모의 장례를 엄숙히 하고 조상의 제사를 정성스레 올리는 것을 권장해 왔으며, 해마다 조상의 기일에는 항상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삼보에 귀의하면 후손으로서 조상에게 제를 지내지 못할까 짐짓 걱정을 한다.
물론 지내도 된다!
삼보에 귀의한 뒤에도 사도邪道가 아닌 정도正道의 신이라면 예를 올려도 된다. 더구나 불교는 효를 제창하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선조와 종친을 계속 존경하고 제사를 받드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다.


⑦ 귀의한 뒤 다른 도량에 가서 예불해도 되는가?
오늘 여러분은 불광산 도량에서 귀의하겠다고 선서를 하였다. 불광산은 여러분 법신혜명의 도량이 되었는데, 앞으로 다른 사찰에 가서 예불을 드려도 될까?
대답은 의심할 여지없이 “예불해도 된다!”
비록 사찰과 도량은 달라도 부처님은 같기 때문이다. 어디에 모셔진 부처님이든 함부로 분별할 필요가 없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