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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탈출, 걸림 없는 나로 살기

달라이라마, “내 마음 보리심에 물들다”

32상과 80종호를 갖추신 석가모니 붓다.
이타 중생을 이롭게 하신 대자비로써 모든 견해 끊으신 분.
바른 견해로써 왜곡된 근본 번뇌 끊으신 분.
윤회의 인과 그 수순을 살펴 중생이 가야할 바를 보이셨네.


업과 번뇌는 윤회를 하게 합니다. 원인은 결과를 발생시킵니다.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눈이 먼 자, 다시 말해 무명에 휩싸인 범부를 위해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또한 법을 등불로 삼아 선과 불선을 깨우치는 12연기를 논하였습니다. 범부의 이해를 돕고자 도상으로써 돼지와 닭 뱀이 서로의 입과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집착과 성냄이 무지에서 발생되는 것임을 쉽게 일깨웠습니다.
번뇌의 근원은 실집이며 윤회의 뿌리는 분별하는 의식입니다. 무명은 모든 번뇌에 자리해 있습니다. 잘못된 논리의 명제는 실제 한다 또는 존재한다고 여기는 오류에서 기인하였습니다. 내 의식에 본래 여기 자리에 고유하게 있었다고 인식하는 것을 실집이라 일컬으며 다른 말로 법집이라고 합니다.
과연 대상이 나에게 보이는 바대로 실제 존재할까요? 한 예로 우리는 화를 일으키는 대상을 볼 때 부정적으로 일방적인 평가를 합니다. 그 평가는 매우 부정적인 편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왜곡된 견해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용수보살의 중론 18장에서는 법집으로 인한 윤회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를 논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깊이 뿌리박힌 중생의 근본적 괴로움이라는 바를 누군가 뛰어난 이 혹은 창조주와 같은 이가 따로 있어 마치 물로 씻어 주듯 죄 값을 대신 사해 줄 수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중생으로 하여금 수행으로써 스스로 파악케 하여 본래의 실상을 알아차리도록 하고 또한 스스로 일깨우도록 함으로써 무지의 무명이 근본적으로 멸할 수 있는 자연의 진면목을 깨우쳐 궁극적으로 나의 보호자는 나 자신이며 또한 내가 안내자가 되도록 일깨웁니다.
불교도의 의지처는 삼보입니다. 붓다께서는 인간이 괴로움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법보를 제시하셨습니다. 붓다께서 설하신 가르침 가운데 도제에 입각한 분들을 승보라고 칭합니다. 허물을 여의고 법에 귀의한 수행 공동체입니다. 타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 하느님 그리고 알라와 같은 귀의처와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저는 한때 무슬림과의 만남에서 알라신에게 경배를 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신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알라신에게 의지하여 자신을 속박하는 괴로움을 여의고 그 종교 안에서 행복하다면 충분합니다. 사랑과 연민으로써 자족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바람직합니다.
불교는 본성을 직접적으로 자각하도록 합니다. 용수보살의 저서를 통해 사유하면서 서서히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근기를 강화시킵니다. 이러한 견성을 바탕으로 끊을 바와 깨달아야 하는 바를 명확히 하여 실행합니다. 한 생에 부처를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만, 오늘 법을 설하는 본인 또한 이생에서 공성과 보리심을 사유한 자량이 있기에 스스로의 사마타만 좀 더 갖춘다면 대승의 가행도까지 이를 수 있겠다는 서원을 가져봅니다. 경전에서 이르는 도제와 별제는 단순한 용어가 아닙니다. 법으로써 내면의 번뇌를 줄이고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실천해야겠습니다.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대로 들어야합니다. 때문에 일반 불자들에게 추천하는 논서가 입보리행론입니다. 직접적으로 실천 가능한 논리가 체계적으로 풀어져 있어 초발심자의 필독서입니다. 행자는 모든 허물을 여의고 공덕을 얻고자 하지만 이는 순간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초발심자는 보시 지계 인용 선정 지혜의 바라밀로 자신을 바르게 증장시켜갑니다.
사소한 것에도 마음을 허투로 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큰일에 장애가 되는 까닭입니다. 보리심과 공성을 보물과 같이 여겨 귀의심을 근간으로 큰 뜻을 세워야 합니다. 항시 남을 이롭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러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위해 정법을 이루고저 이 몸을 써야 합니다. 자신의 발원이 이타 행을 위해 성숙해질 때까지 이 육신에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살펴 깨달음의 씨앗으로 여겨야 합니다.
잠들기 이전에 반드시 알아차림 명상을 하십시오. 하루의 행적을 돌이켜 참회를 하는 값진 시간입니다. 이 또한 공성의 지혜가 근간이 되어야 합니다. 실상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잠시 잠깐 자성이 있다 여겼던 부분을 바로 잡아 보다 낳은 내일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리심을 일으킵니다. 일체 중생을 나의 귀빈으로 여깁니다. 깊은 내면에 보리심을 일으켜 이타 중생을 위한 실천을 사유합니다. 이러한 자량과 공덕을 바로 세우는데 선지식의 법이 중요합니다. 스승이란 공덕을 두루 갖추어 연민심으로 제자를 대함에 법의 구전을 바로 세운 분을 일컫습니다.
참된 스승이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림에 삼학과 삼장을 바로 갖춘 분입니다. 제자 또한 바른 소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본인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이 스승이어야만 제자는 바른 가르침을 구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신심의 뿌리가 바른 법임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입보리행론의 저본이 집학론입니다. 입보리행론을 간추린 것이 집경론입니다. 보살은 알아차림을 잘 지켜야 합니다. 몸 말 마음의 변화가 생김을 알아차림으로 알아차린다면 법과 더불어 항시 걸림이 없습니다. 한 순간 분노하면 그동안 쌓은 선업이 무너지고 맙니다. 일시적으로 일으킨 화가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화는 궁극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 없음을 숙지해야합니다. 화를 내서 행복한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화를 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화로 인해 마음이 번거롭거나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부디 선이 시들지 않도록 하십시오.
행복의 원인은 드뭅니다. 그렇지만 괴로움 역시 항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이 있기에 우리 수행자는 출리심을 일으켜 불행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해탈을 하고자 한다면 두려움과 맞서야 합니다. 한 예로 저는 유년기 당시 글씨를 배우고 경전을 대하는 것이 무척 고되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익숙해지니 전혀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릇 보리심도 그러합니다. 익숙하지 않을 뿐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